주제 : 싸이코패스
내용 :
압화 [押花, pressed flower]
조형예술의 일종으로 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꽃누르미 또는 누름꽃이라고 부르지만 보통 한자로 압화라고 부른다.
오늘도 허브티 한잔과 싱그러운 나의 꽃밭과 함께 조용한 시골의 아침을 맞이한다.
내가 이곳에 온지도 3년이 다 되가는 듯하다.
결혼 전부터 지병이 있던 남편의 급작스런 병세 악화로 인해 요양 차 이곳에 왔으나,
남편의 운명은 단지 거기까지였는지…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는지… 이곳에 온지 1년…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고아였던 나를 유일하게 사랑해주던 그였는데….
그가 떠난 뒤로 나는 조촐히 지인들과 남편의 장례를 지냈고, 그 뒤로도 쭉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시끄러운 도시생활 보단 심심하지만 조용하기에 예전부터 취미였던 압화를 다시 시작하였다.
남편과 결혼 전부터 작품 활동은 했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남편은 내게 다른 취미를 권하며 압화 하는 것을 말렸고,
난 그를 위해서 취미는 접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가 그토록 말리던 것 이였지만, 이젠 나를 말려줄 것은 없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압화는 예전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을 가던지 간에 다른 무엇보다 제일먼저 꽃이 내 눈에 들어오던 습관은 여전했다.
낮에 산책을 하노라면 날 맞이하는 길가의 작은 야생화들이 너무 귀여워서 당장 내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내것 네것이 분명했던 고아원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물건의 소유를 구분하는 것은 내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꽃 채집은 나의 꽃밭에서 하자는 것이 내 신조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꽃밭의 꽃은 한정 되어있기에, 이렇듯 야생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꽃을 보고만 있어도 어떤 작품을 만들지, 상상 만해도 행복해지는 나인데, 그이는 왜 나를 말렸을까?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블로그에 나의 작품들을 올리며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것들은 오직 우리 집 정원의 꽃밭의 꽃들로 만들어진 작품 들 뿐이다.
내가 좋아라하는 야생화들, 그리고 개인소장용 들은 절대 올리지 않고
나만이 볼 수 있도록 창고를 전시장으로 개조해, 그곳에 전시를 하고 매일 감상한다.
따분한 이곳에서의 생활에서 유일한 활력소이다.
어느 날 한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은 유치원 선생님인데, 나의 블로그를 보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압화 체험을 시켜주고 싶다고, 혹시 가능하겠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아마추어인데다가, 아이들에겐 다소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그녀는 체험이 안 되면 아이들의 학습을 위해 현장학습 겸, 굳이 구경만이라도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구경쯤이야, 흔쾌히 허락을 했고 얼마 후 약속한 날짜에,
그녀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를 한 아름 안고 우리 집에 방문하였다.
내가 야생화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지? 내가 블로그에 야생화가 좋다고 쓴 글을 읽었나?
나는 내 작업실로 데려가 압화 만드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고,
우리들은 정원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함께 하였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내가 야생화에 대해 감사를 표하자,
그녀는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꽤 겸손한 것 같았다.
그들이 떠난 뒤 나는 곧장 그녀가 가져온 야생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드라운것 하나만을 작품으로 남기고자했다.
일단 내가 사랑하는 야생화이기 때문에, 일반 압화와는 다르게 건조를 시킨다.
전용 건조기에 야생화를 넣었다.
단 하루면 싱그럽게 생생함을 머금었던 아름다운 야생화가 영원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건조가 완벽히 된다.
그러니 그 다음날 나는 완벽한 작품을 만드리라 생각했다고, 곧장 그 생각에 또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급한 전화벨소리에 곧 나의 흥은 깨져버렸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치원 선생님 이였다.
내가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 묻기도 전에 그녀는 목소리가 꽤 흥분한 상태 인 듯하였고,
돌아 올 때 아이들을 다 챙긴 줄 알았으나 도착해보니 한명이 사라졌다며 혹시 못 봤냐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목소리는커녕 보지 못하였고, 모두가 돌아간 즉시 작품을 만들었다고,
혹시 돌아가는 길 휴게소에서 아이가 낙오되었을 가능성을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찾으면 연락 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곤 전화를 끊었다.
정신없이 바쁜 목소리에 내가 다 어지러웠다. 그래도 신성한 작업시간이 끝나고 나서의 전화였기에 다행 이였다.
그 다음날 나는 어서 나의 야생화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아침 일찍 작업실로 내려갔고,
생각만큼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온 것 같아 나는 마치 어제의 그녀처럼 흥분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 건조화를 가지고 어떤 것을 만들까 행복한 고민 끝에,
굳이 다른 화려한 꾸밈없이도 그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리라 생각했고, 곧 나는 실천에 옮겼다.
하얀 캔버스위에 그것을 올리고, 전용 코팅용액을 그 위에 붓고,
이제 UV조사기로 말려주어 비로서 오랜만에 나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였다.
물론 나만의 야생화이기 때문에 혼자보기 아쉽지만 개인소장용이니 만큼,
전시장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캔버스를 들고 작업장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또 다시 다급한 전화벨소리가 울리다 끊겼고, 나는 번호를 확인해 보니 어제의 그녀다.
잠시 나의 새로운 작품을 소중히 내려놓고 또 무슨 일이지 의문을 가진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어마어마한 부재중통화들.
그때 나는 다시 전화를 걸려는 찰라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이번엔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
내용은 아직도 아이를 찾지 못하였는데 그곳에서는 아이를 본적이 없냐는 것 이였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작업을 하였고, 막 작업을 마쳤다고,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연락하겠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그녀를 그나마 진정시켜 주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듯했으나 알았다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난 다시 나의 소중한 캔버스를 안아들고 전시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러게 내가 오지 말라고 했을 때 안 왔으면 됐지 굳이 온다고 그 난리를 피워서 아이를 미아를 만들어?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 나는 몇 일간 전시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녀의 통화도 내 귀에 살다시피 항상 걸려왔다.
그런데 전화가 오면 올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변해만 갔다.
초반에는 아이를 걱정하는듯했으나, 점점 나를 추궁, 의심하는 듯 변해갔다.
가장 최근의 통화는 아이를 어디에 숨겼냐며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나도 자꾸만 나를 의심하는 것에 욱해서 나는 결백하니 전화로만 이러지 말고 와서 아이를 찾던지 말던지 하라고 하자,
그녀는 당장 갈 테니 그곳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다.
자기 잘못을 누구에게 덮어 씌을려고 들어?
결국 우리 집에 쫒아온 그녀는 한참을 흥분해서 동행한 사람들과,
실종된 아이의 부모와 수색하더니 아이가 나오질 않자 처음에는 어디로 빼돌렸냐,
어디에 팔아먹었냐는 둥 내게 소리치다가 이내 현실을 수긍하는 듯 망연자실하였고,
그 아이의 부모 또한 한참 악을 지르며 울다가 지쳤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머지 동행인들은 밖을 더 찾아본다며, 힘들 테니 여기 있으라고 당부한 채 마당과 정원, 뒤뜰, 마을로 각각 수색하러 나갔다.
저녁노을이 질 때쯤 동행인들은 하나둘씩 다시 모여 들었고, 그들도 기진맥진 해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내 전시장을 가리키며 저곳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나만의 개인작품들을 모아 전시장처럼 만든 창고라 답했더니 몇몇이 저곳도 봐야하는 것 아니냐며, 내게 따지듯이 사납게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저곳은 나만의 개인공간이니 좀 곤란하다고 답하자, 그곳의 모두가 또 다시 나를 의심해왔고,
또 욱한 나는 마지못해 그곳에 처음으로 나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러자 모두가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모두가 좋아하는걸 보면, 내 작품은 인정을 받나?
여보, 그곳에서 보고 있지? 나 어쩌면 정식으로 작품 활동 해볼까봐.
이렇게 사람들 반응이 좋잖아.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날 말렸어?
2011년 08월 26일 9시 뉴스, 인사드립니다.
10여일 전 압화를 체험하고자 OO읍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왔던 제일유치원 아이들 중 신 모양(7)이 실종 되었던 뉴스, 기억하십니까?
안타깝게도 그 작은 아이가 싸늘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최은미 기자 연결합니다.
네, 이곳은 아마추어 압화 작가로 블로그 활동중이였던 박지혜 작가의 자택입니다.
이곳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꽃밭을 가꾸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압화 현장학습을 왔던 제일유치원생 신혜림양(7)은 싸늘하지만 아름다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신양이 실종된 후 담당 선생님인 임씨가 박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아이의 실종 사실을 알리고 찾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으나,
다급했던 그 당시 박씨의 목소리가 다소 담담했다는 사실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탐색에도 불구, 아이를 찾지 못 하고 수상함을 느낀 임씨는
수시로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추궁을 하자 자신을 의심하는 것에 욱한 박씨는 자신은 결백 한다며 직접 와서 찾으라 했고,
임씨 일행이 직접 가서 박씨의 집을 수색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박씨만의 전시장을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마치 압화의 작품의 모습을 한 신양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신양말고도 다른 시신들로 전시장은 거의 채웠져 있었다고 당시 목격자들은 진술 합니다.
경찰은 전시장속 희생자말고도 또다른 희생자가 있을 가능성이 커, 앞으로 더 수색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박씨는 단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야생화를 개인소장용 작품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입니다.
이에 모든 이들이 박씨의 정신감정을 요구하였고, 전문가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싸이코 패스.
박씨는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지내며 유난히 꽃,
특히 야생화를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싸이코패스는 이글과 달리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만 공감능력이 떨어져 죄책감과 상대방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는 고딩때 과제로 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