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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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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글 출처: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29997&mobile&categoryId=200000427
용의 유래
용을 나타내는 한자 ‘용(龍)’은 일찍이 갑골문(甲骨文)에서도 발견되는데 뿔과 큰 입, 수염을 지닌 머리와 뱀을 닮은 긴 몸의 형상을 본뜨고 있다. 영어의 ‘드래곤(dragon)’이나 라틴어 ‘드라코(draco)’는 그리스어 ‘드라콘(δρακων)’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커다란 뱀이나 도마뱀ㆍ악어ㆍ고래 등 바다나 호수ㆍ하천 등의 물속에서 생활하는 큰 동물들을 뭉뚱그려서 드라콘이라고 불렀다.
용의 상징적 의미
상상의 동물인 용의 상징적 의미는 지역이나 문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거대한 뱀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이는 원시종교에서 부활과 재생의 힘을 지닌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숭배되던 뱀이 신격화하여 형상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1) 고대 인도
인도 신화에서 거대한 뱀의 형상을 지닌 ‘나가(Naga)’는 지하세계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용왕(龍王)으로 표현된다. 《법화경(法華經)》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난타(難陁), 발난타(跋難陁), 사가라(娑伽羅), 화수길(和修吉), 덕차가(德叉迦),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 마나사(摩那斯), 우발라(優鉢羅) 등 팔대용왕(八大龍王)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왕은 강과 호수ㆍ바다를 지키는 물의 신으로 겨울에는 지하 깊은 곳에서 살다가 봄에는 하늘로 오른다. 천기(天氣)를 다스리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용왕이 화가 나면 가뭄이 들고 그 화를 달래야만 비를 내려준다고 여겨졌다.
(2) 중국
중국에서도 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신이(神異)한 영수(靈獸)로 여겨졌다.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서는 용을 기린[麟]ㆍ봉황[鳳]ㆍ거북[亀]과 함께 ‘사령(四霊)’의 하나로 꼽고 있으며,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는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고 기록되어 있다. 용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하나로 ‘진(辰)’으로 표현되는데, 십이지에서는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 점성술에서는 용을 백호(白虎)ㆍ주작(朱雀)ㆍ현무(玄武)와 함께 성좌(星座)를 나타내는 동물로 신성시하여 동쪽의 7가지 별자리인 칠수(七宿)를 청룡(靑龍)이라 하였다. 용은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한 자연력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모든 동물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용은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비와 가뭄ㆍ홍수 등을 다스리는 존재로 숭배되어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용의 형상을 본떠 춤을 추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3) 한국
한국에서도 용은 고대부터 풍운(風雲)의 조화를 다스리는 수신(水神)ㆍ해신(海神)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일찍부터 민간과 국가 차원에서 국가의 수호신이자 왕실의 조상신으로, 그리고 농경을 보호하는 비의 신이자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로 풍년(豊年)과 풍어(豊漁)를 기원하기 위해 숭배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 명산(名山)ㆍ대천(大川)의 용신(龍神)을 섬기는 팔관회(八關會)가 국가 차원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이러한 풍습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용(龍)에 관한 다양한 설화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용은 호국(護國)ㆍ호법(護法)의 존재일 뿐 아니라 불살계(不殺戒)를 깨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사람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독룡(毒龍)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바다와 강, 연못 등에 살며 사람의 모습이나 웅신(熊神) 등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4세기 이후의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되는 사신도(四神圖)에서는 용의 상징성에 대한 중국 문화의 영향이 확인된다. 《훈몽자회(訓夢字會)》에는 용의 훈(訓)을 ‘미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용에 관한 고유어뿐 아니라 이무기에 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뱀이 500년을 되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물에서 500년을 지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이무기는 이시미, 영노, 꽝철이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용에 관해 중국이나 불교의 영향과는 무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4) 이집트와 유럽
지중해 지역과 유럽 신화에서 용은 동아시아와는 달리 수신(水神)이나 해신(海神)으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큰 뱀이 순환과 재생을 낳는 우주적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인간 세계와 대립되는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뱀의 형상을 닮은 히드라(Hydra)나 키마이라(Khimaera)와 같은 괴물의 존재가 상상되기도 했으며, 뱀과 용도 죽음과 파괴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페니키아 신화에서 비롯된 레비아단(Leviathan)은 《구약성서》의 <욥기>에서 뱀과 악어와 같은 형상으로 입과 코로 불과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바다 괴물로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에서도 나타나듯이 유대의 전통에서는 뱀은 인간을 유혹하는 죄악의 근원이자 간계가 깊은 동물로 인식되었는데,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서도 용은 천사들과 전쟁을 벌이는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기독교의 확산과 더불어 용은 신의 은총을 방해하는 악마와 이교(異敎)의 상징으로 여겨져 천사와 기사에게 퇴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백마를 타고 인간을 제물로 요구하는 용을 퇴치한 전설이 널리 유행하였다.
각 민족의 고유한 전승에서는 용의 모습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용은 지하세계에 살면서 보물을 수호하거나 인간에게 유익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용사에게 지혜와 능력을 전해주는 존재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기후를 다스리는 농경신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용은 기사와 성인(聖人) 이야기에 폭넓게 등장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용의 상징적 의미는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용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용은 농업과 어업에 영향을 끼치는 기후의 변화와 풍운의 조화를 다스리는 존재로 인식되면서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한 힘과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나아가 용은 그러한 자연적 원리가 실현된 인간 사회의 정치적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용은 우주 만물의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면서 제왕(帝王)의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금을 나타내는 말에는 용(龍)이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예컨대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임금이 앉는 자리는 용상(龍床), 임금이 타는 수레나 가마는 용여(龍輿)ㆍ용가(龍駕)라고 불렀다. 임금이 입는 옷은 용포(龍袍), 임금의 지위는 용위(龍位)라고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하고 건국 시조들을 찬양하기 위한 서사시를 지으면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고 불렀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稅難編)>에는 용의 목 밑에는 비늘이 거꾸로 나 있는 역린(逆鱗)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잘못 건드리면 용이 노하여 사람을 죽이게 된다고 하여 임금의 분노를 비유적으로 ‘역린’이라고 표현하였다.
용 가운데에서도 중앙을 나타내는 황룡(黃龍)이 제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였고, 왕실의 건물이나 의복, 용품 등에는 황룡이 그려졌다. 그런데 신분에 따라 발톱의 개수를 다르게 하기도 했는데, 제왕은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을, 태자나 제후왕은 발톱이 네 개인 사조룡(四爪龍)을, 세손(世孫)은 발톱이 세 개인 삼조룡(三爪龍)을 써서 구분하기도 했다. 용을 그릴 때에도 오조룡은 왕실에서만 그릴 수 있었으며, 민간에서는 사조룡이나 삼조룡만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때에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는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七爪龍)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강화된 왕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해석된다.
한편, 용이 동물의 왕으로 여겨지면서 뛰어난 사람이나 성취를 나타내는 데에도 용(龍)의 상징적 의미가 활용되었다. 날랜 준마(駿馬)를 용구(龍駒)라고 부르며, 입신출세하는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좋지 못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속담이 있으며, 어떤 사람의 용모나 처지가 좋아졌을 경우에 “용됐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용이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되어 용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는 믿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민화(民畵)에서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구름과 함께 표현하는 ‘운룡도(雲龍圖)’가 많이 그려졌으며, 용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몽룡도(夢龍圖)’도 전해진다.
또한 용의 신통한 능력은 용이 지니고 있는 여의주(如意珠)에서 비롯되어, 사람도 여의주를 얻으면 용처럼 온갖 신통력을 부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일이 뜻한 대로 잘되어 가는 것을 “여의주를 얻었다”는 것에 비유하여 나타내기도 한다.
민간에서 용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자 풍파와 물고기들을 다스리는 바다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마을마다 우물이나 샘에 용신이 거주한다고 여기고 용왕굿이나 용신제(龍神祭)를 지냈다. 물이 풍부한 연못이나 우물은 용못[龍沼]이나 용우물[龍井]이라고 불렸으며, 임신을 기원하며 음력 정월 보름에 새벽 일찍 남보다 먼저 우물의 물을 떠다 먹으려 하는 ‘용알뜨기’의 풍습도 있었다. 그리고 겨울에 연못의 얼음이 깨지는 방향으로 다음해 농사를 점치는 ‘용경(龍耕)’의 풍습도 있었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 용은 생명과 풍요를 주재하는 자연신으로 숭배되었다.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이나 항해를 하는 뱃사람들은 바다 밑의 용궁에 사는 용왕이 물고기와 파도를 다스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용왕이 어민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자연신으로 숭배되어 마을마다 정기적으로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용왕제를 지냈다. 용왕은 해신(海神)이자 바람을 다스리는 풍신(風神)으로 여겨졌고 배가 난파하는 것은 용왕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또한 용왕이 사는 용궁에는 온갖 보물이 가득하다고 상상되어 용왕의 가족을 구해주어 복을 받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또한 바다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라고 해서 ‘용오름’이라고 불렀다.
풍수지리설에서도 용의 상징적 의미가 쓰였다. 풍수지리설에서는 산의 줄기를 용이라고 했는데, 지형에 따라 용이 길룡(吉龍)ㆍ흉룡(凶龍)ㆍ생룡(生龍)ㆍ사룡(死龍)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형과 산세를 잘 살펴서 흉룡(凶龍)과 사룡(死龍)을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수신(水神)인 용은 건축물의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기와의 무늬나 용마루의 용두(龍頭) 등으로 표현되어 방화신(防火神)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용이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전투의 수호자로 여겨져 일찍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방패 등에 용의 문양이 쓰였다. 북유럽의 바이킹도 방패와 뱃머리에 용의 머리를 새겨 넣었다. 오늘날까지도 용은 왕실 등의 문장(紋章) 등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영국의 웨일즈에는 켈트족의 수호신인 적룡(赤龍)이 백룡(白龍)을 물리친 전설이 전해지며, 날개가 달린 적룡(赤龍)은 오늘날까지도 웨일즈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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