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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있었을까.
다리에 감각이 없어질때쯤,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쓸어주었다.
내가 사랑했던 적당히 도톰했던 볼과 입술은 사라지고, 은하수처럼 빛나던 눈은
지금 감겨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그녀였다.
희미하게 움직이는 가슴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멍하니 그녀의 지그시 감은 눈을 보고 있자니,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던 때가 떠올랐다.
빨간 핏줄이 빽빽히 들어선, 나를 저주하는듯한 눈빛이었다.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말..
그 말을 듣고선 드라마에서처럼 의사 멱살을 잡고선, 소리를 지르고, 오열했다.
그녀가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질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지불해도 괜찮았다.
결국 병원을 나와 용하다는 약을 수소문해서 구해도 보고, 종교등을 다니기 시작했다.
날이갈수록 심해지는 고통을 호소하는 그녀를 나는 억지로 데리고 다니며
치료를 받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결국 종착역은 다시 병원이었다.
밖에 있는 사이에 병은 더 심각해지고, 그녀의 고통은 극으로 달하고 있었다.
난 죄인처럼 서있다가 그녀의 눈빛을 보고는, 그날 통각 제거 수술 허가서에 사인을 하였다.
도저히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 치는 모습을 더 지켜볼수가 없었고,
그것이 나로 인해 가중 되었다는것이 참을 수 없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그녀는 수술후에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의사가 진땀을 흘리며 뭐라고 설명할때에도, 내 귀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 고통없이 보내주자.'
이 생각만이 나를 지배할 뿐이었다.
결국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을 24시간 내내 함께 보내기 위해
그녀를 집으로 옮겼다.
그 후에는 이렇게 멍하니 않아서 그녀를 쳐다보다가, 거실로 내려가서
술을 먹고 오열하다가 지쳐 잠들고..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너무 고통스러워 할때는 내 가슴이 찢어지는듯 했지만,
막상 편안히 보내자니 이대론 가슴이 도려질것만 같았다.
그녀는 나의 전부였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고 벌떡 일어서서는 찬장으로 향했다.
더 이상 보고 있다가는 그녀를 잃을 슬픔과 고통에 내가 먼저 죽어버릴것 같았으니까.
찬장 구석에서 오래된듯한 술병을 하나 꺼내어 식탁위에 있던 빈병들을
적당히 치운뒤 글라스에 술을 다르기 시작했다.
'꼴꼴꼴...'
이 양주는 오래되서 변색이 됬는지, 아니면 원래 이런건지 특이하게도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사고를 멈춘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참 술잔을 기울이던 도중, 나는 용수철 처럼 튀어올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 붉은책..!!'
오래전에 보았던 붉은책, 그것이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엔 수염이 더부룩한 남루한 남자가 하나 서있었다.
술기운이 어느정도 빠져나갈때까지, 나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갔다.
술기운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차키를 챙겼다.
어찌되었던 간에, 의사가 선고했던 그녀의 생존 한계일은
일주일앞으로 다가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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