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재주가 없어서 아마 스압이 될 겁니다. 양해부탁드려요.
심심할 때 힐링하러 오는 오유이고, 몇일 전까지는 조금 소란스럽거니 했는데 점점 논쟁이 극단이 되어가는 모양새네요.
평소에 콜로세움은 구경만 하고, 관심있는 주제인 경우에는 가끔씩 댓글만 달던 성격인데, 요번건은 이래저래 신경쓰여서 조금 적어봅니다.
저는 일단 여자고, 동시에 성평등을 지향하면서 자칭 안티페미니스트라고 슬슬 지칭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페미니즘은 단언컨대 성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데에는 실패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평등을 지향하면서 이름은 여성주의라고 쭉 불러나간다는 점에서 그런 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뭐 래디컬페미니즘이니 뭐니 생긴것이라고도 보고 말이죠. 메갈4가 메갈의 이름을 안버린건 메갈의 정체성을 공고히 품고 있어서죠. 페미니즘이 성평등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여성이라는 이름을 안버린건 결국 여성만을 위한 본성을 못버리기 때문에.)
하나 더 짚고 가면 지금 핫한 화제인 군 복무에 관해서는, 군가산점은 반대하고(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사람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고, 다녀온 사람들끼리도 어느 업종으로 진출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혜택이 있고 누구는 혜택이 없고...동시에 여자는 집안일하고 남자는 돈 벌어오고 하는 구시대적 관념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징집은 지금 당장이라도 단계적으로 차차 시행하겠다 하면 그 첫세대에 기꺼이 지원하고 싶을 정도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군장병들이 겪는 부조리...당사자들 만큼은 모르겠지만, 그 심각성도 잔인성도 알고 있고, 민간인들보다 훨씬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만큼, 더 많은 혜택이(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량의 금전적 보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전 메갈을 굉장히 싫어해요. 요새는 히스테리가 될 정도로; 그리고 그 이유는 몇년 전 일베에 데였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기억하는 일베는요, 은근히 인듯 아닌듯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다가,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혹은 어딘가에서 들어서 과연 그런가? 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끼워넣어서 실은 그리 악의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도 굉장한 악의를 품은 발언들을 자연스레 하도록 만드는 집단이었어요.
여자애들이 솔직히, 그리고 확실히 남자들에 비해 더 일상의 힘든 일들에서 몸 사리는 경향이 강하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몸 사리는 여자애들이 여성스럽다고 칭찬?받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몸 안사리고 일하는 여자애가 있으면 반쪽짜리 여자 취급받는 일도 흔하죠. 이상한 편견이 사회 전체에 부조리를 만드는 한 사례예요. 그리고 그걸 걍 이런저런거 다 제끼고 보면 남자애들이 그런 편견 덕에 손해보는 줄도 모르고 손해보는게 맞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회에서 성평등의 가치가 주목받게 되면서, 아직 소수의 의견일 뿐이었지만 많은 남자들이 그것이 불평등하다는걸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느꼈다고 생각해요.
일베는 그런 종류의, 누구나 조금씩은 공감할만한 부분을 과장하고, 일반화하고, 확대시켜서, 실은 그리 악의를 품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큰 악의를 심어서, 다른 사람들을 상처입히는데 특화한 인간상을 양산했고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부분이 조금씩은 있었으니까, 초창기 일베는 언론이나 주류사회에서도 나름 긍정적으로 자주 이야기 되었던 걸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네요. 온라인 속 청년보수의 등장, 남성인권과 역차별에 대한 발언의 시작 등등 하면서.
그리고 메갈은, 그리고 지금의 초기 메갈은 그 당시 일베랑 똑같은 루트로 진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언론이나 주류사회는 그들의 해악을 모르고 긍정적인 묘사를 하고 있고, 그들의 해악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메갈을 적대하고, 메갈의 증오와 악의로 가득찬 언어들은 그런 누구나 공감할 만한 부분을 붙잡고 그리 큰 악의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번져나가서 그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을 상처입히는데 특화된 인간상으로 만들고 있고요.
일베도 초기에 사람들이 그랬었어요. 근데 쟤네가 나쁜 건 맞지만 쟤네가 하는 말도 맞는 말이 있기는 해. 메갈도 지금 같거든요. 근데 쟤네가 나쁜 건 맞지만 여성이 많이 차별받는 편인 것도 맞긴 하잖아. 하면서. 다들 힘든 부분 있었고, 그런 면에서 공감되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요.
실제로 한국 사회는 여성에 대한 차별, 남성에 대한 차별 모두 존재해요. 그러니까 일베나 메갈에서 말하는 심각하게 뒤틀렸지만 공감가는 이야기들에 많은 사람들이 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문제를 벗어나려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양측에 모두 부조리가 있단걸 이해하고, 그 부조리가 생긴 원인을 찾아야 할 거 아녜요?
일베나 메갈처럼 문제에 단세포적으로 이기적인 여성/이기적인 남성의 프레임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들이 만들어진 원인을 해결하는게 진짜 중요한 문제잖아요.
결국은 근본적으로 있는 강한 남성/약한 여성에 대한 여러가지 고정관념들이 남성의 약함을 허가하지 않고, 여성이 강해지는 길을 차단해버리는게 모든 문제가 아니던가요?
저는 진정한 성평등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여성은 사회적 관념들에 비해 훨씬 강하다는 것과 모든 남성은 사회적 관념들에 비해 훨씬 약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확실히 알아야 할 거구요.
힘든 일에서 여자니까 약해서 이런 거 못해~ 하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핑계로 스스로의 성별들 들이댔고, 그래서 그 성별은 강해야만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받아들여진겁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회의 중요한 요직들에서 많이 밀려나는거고, 힘들지만 중요한 다른 여러 일들도 안시키는 거잖습니까?
반대로 남자니까 이 정도는 거뜬하잖아? 하고 무거운 책임과 고생들을 늘 떠맡기지만, 그 책임과 고생들을 해낼수 있는 성별이라고 여겨지니까, 더 힘들더라도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일들이 있다면 남자를 올려두길 더 좋아하는거 아닙니까?
다른 예시를 들어볼까요, 저는 어릴 적에 못생겼다고 괴롭힘받은 적이 있어요. 사실 그렇게 많이 막 흉한 얼굴은 아니었는데, 못생긴 여자였으니 더더욱 표적이 된 게 있었죠. 욕설이나 성희롱 위주의 괴롭힘이었는데, 내가 남자였다면 외모를 이유로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을텐데 하고 남자가 되고 싶다고 한참 생각하던 때가 있었죠.
그러다 나이를 먹고서 만난 남자인 친구 하나도 알고보니 어린 시절에 저처럼 괴롭힘 당한 적이 있다고 해서 같이 신세풀이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저랑 비슷한 상황에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더라구요. 여자라면 괴롭혀도 상대적으로 때리는 일은 훨씬 적으니...
뭐 새삼 여자들이 이기적이다 남자들이 잔인하다 뭐다 해도 결국 원인은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 자기 상처 말고도 저쪽의 상처까지도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들은 훨씬 적은 것도 다들 알고 계시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해도 마음 깊이에서는 어딘가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도 많다는 것도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 더 하면, 몇세대에 걸쳐서 박힌 선입관들이 사라지려면, 얼마나 길고 힘든 시간들이 필요할지도 다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도 다들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일베나 메갈처럼 왜곡시키고 일반화하면서 해악 뿌리는 것들에 대해서 꾸준히 알리고, 반면으론 그런 해충같은 존재들에 휘둘리지 말고, 서로 당장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 하나 노력해가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또 살아가는 것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이기적인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에게 등쳐먹히고, 괴롭힘 당하고 하더라도 말이예요.
철없이 보일테니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 성선설을 믿어요. 그래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간간히 주위에 이런 이야기들을 피력하죠.(뭐, 기껏해야 어쩌다 한번씩 주위에 떠드는 것 뿐이지만, 직접 시민운동에 나설 여력까지는 없는 안티페미니스트이자 성평등주의자로서는 이런 정도가 최선이라^^;...) 관심있는 성차별문제가 대화 중 어쩌다 나오거나 하면요. 여성을 보호하고 배려하기만 할 뿐인 여성정책들은 장기적으론 여성을 약자의 위치로만 고착시켜서 여성차별을 더 강화시킬뿐이라고 말입니다. 반대로, 남성이 스스로의 피해를 인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 중에 하나고, 남자니까~로 시작하는 편견들을, 뭐 사회생활은 해야하니 아예 잊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 속 한켠에 자신의 약한 모습 역시 인정하고 인지하고, 가능한한 선이라면 조금씩 덜어내라고요. 자주 나오는 생수통이야기 같은거, 사실 남녀 할 것 없이 기운 좋은 사람이 가는게 제일 효율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회사에서의 승진이 남녀 할 것 없이 업무 능력과 의욕을 기준으로 진행되는게 사회적으로 제일 효율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렇게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하는 문제에 어느 한 쪽 갈라서 일반화하는거 아무 도움 안되는거 알잖습니까. 상대가 이해를 못하면 이해할때까지 계속 대화하고 서로 설득하고 배려하고 하는거죠. 그래도 오유를 베이스캠프 삼아서 노는 분들이라면 메갈이나 일베처럼 상대에게 무조건 자기 입장만 강요하면서 위에 서고, 짓밟고 하는거 긍정적으로 보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설마 오유에 메갈이나 일베식 마인드를 좋아하는 분은...없으시겠죠. 뭐...어느 정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애초에 걔네 피해서 오유 온거라ㅋㅋㅋ)
개인적으로 논쟁 초반에, 모두가 알지만 새삼스레 묻어두고 있던 군복무의 불평등이 화제로 떠오른 걸 굉장히 긍정적으로 봤어요. 좋은 논의죠. 사실 굉장히 중요한 사안 중에 하나인데 어째서인지 많이들 외면하고 있었고,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평등을 지향한다면 꼭 짚고 가야할 문제이기도 하고요. 근데 점점 일반화하는 자극적인 글들이 늘고 정작 자정의 소리나 건설적인 토의를 논하는 글들은 점점 주는 것 같아서...중간에 이런 글도 한번 또 있어야지 하고 적어봅니다.
이 글 다 쓸 즈음이면 슬슬 정리되고 자정도 다 끝나서 괜히 어글 끌지 말라고 반대나 받으면 좋겠네요.
요약
1. 남성이기에 받는 차별과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이 있고, 남성이기에 받는 혜택과 여성이기에 받는 혜택이 있습니다. 전부 같은 원인에서 기인한, 종이의 양면 같은 겁니다. 그리고 그런 구조는 사회 전체의 효율을 낮추고,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2.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베/메갈식 일반화와 성별 프레임은 오히려 문제가 풀기 더 어려워지도록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3. 우리의 목소리는 작고,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세상은 그대로 받아들여주지는 않을 겁니다. 잘못된 일들이 이토록 깊게 뿌리내려있고, 대다수는 그것에 무관심하다는 일이 슬프고 절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4. 그러니까 더더욱 개인은 개인의 자리에서 미시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화는 가라앉히되, 부조리는 인식하고, 힘들더라도 배려하며 꾸준히 대화를 해나가는게, 비록 느리더라도 실은 가장 빠른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5. 4에 이어, 미시적인 변화에서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 시민운동을 추진하는 분들이 나타나시면, 저는 개인으로서 지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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