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일 1982.11
읽은날 1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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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루돌프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민중이 자주적인 사고와 책임 의식보다는 명령에 대한 복종과 책임 면제 쪽을 택한다는, 역사상 흔히 있는 예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민주정치에 있어 잘못된 정치는 부적격한 위정자를 선출한 민중 자신의 책임이지만, 전제정치의 경우엔 그렇지만은 않다. 민중은 자기 반성보다, 무책임하게 위정자를 매도하는 쪽을 즐기는 경향이 짙다.'
2권
양은 신념이란 말을 혐오했다. '필승의 신념'이란 단어는 스포츠나 군대에서 가장 많이 쓰이지만 군인의 몸이면서도 양은 그 소리만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곤 했다.
"신념으로 이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누구든지 이길 것이다."
양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입을 빌려 말한다면, 신념이란 어떤 바람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어휘에 불과할 뿐, 어떤 객관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강요하면 할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정확한 판단이나 통찰은 불가능해진다. 대체로 신념이란 허점이 많은 자가 자기의 전매 특허처럼 외우는 말로서, 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지 입에 올릴 가치는 없는 것이다.
3권
얼마 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된 미터마이어는 전선에 배치되었다. 임지로 떠나는 날, 양친과 에반제린이 배웅해 주면서 장도를 기원했다. 그 명민하고 용감한 젊은이에게 있어 군인은 타고난 천직이었다. 극히 짧은 기간에 그는 크고 작은 많은 무공을 세워 계급을 높여 갔으나, 만사에 과단속행하는 그로서도 그 소녀에게 구혼하기까지엔 장장 7년의 세월이 걸려야 했다.
그날, 휴가를 얻어 거리로 나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색한 몸짓으로 난생 처음 꽃집의 문을 밀었다. 갑자기 뛰어들어온 군복차림의 청년을 보고 꽃집 여주인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아 놀라움에 졸도할 뻔했다. 상기된 얼굴의 군인이 황급하게 뛰어들어왔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꽃, 꽃을 주시오."
"...."
"꽃 말예요. 아무 꽃이나 좋아요. 여자가 받아서 좋아할 수 있는 꽃이면 아무 거라도 좋아요."
무슨 강제수색도, 탄압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꽃집 여주인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노란 장미를 권했다.
루빈스키는 혀끝으로 포도주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자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네. 확실히 해 두었어야 됐을 녀석이긴 하네. 하지만 코네프라는 그 녀석 말야, 현재는 쓸모 없는 것 같아 보여도 훗날 유용하게 쓸 만한 녀석이네. 현금이든 증권이든 오래 두면 둘 수록 이자가 늘어난다는 걸 염두에 두게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석유가 지층에 형성되면서부터 사람이 사용하게 되기까지엔 몇억 년의 세월이 걸리지. 그에 비하면 인간은 아무리 늦게 되어도 50년이면 결산을 할 수가 있거든. 그러니 조금도 서두를 필요가 없네."
"...우리들은 귀관을 규탄하고자 이 자리에 부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귀관의 입장을 세워 주기 위해 사문회를 개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귀관의 협력이 필요하고 우리들도 귀관에게 협력을 아껴선 안 된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모범답안이 있다면 그걸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사문관 여러분들께서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지 미리 알아둬야 서로가 편하지 않겠습니까?"
'에드워즈 위원회'란 '경기장의 대학살'때에 희생된 제시카 에드워즈 여사를 기념하여 반전파의 인물들이 결집한 조직이다. 이 위원회가 한 가지 문제, 즉 징병의 불공정성을 들고 나와 규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계, 재계, 관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징병 적령기에 이른 아들을 가진 24만 6000명을 대상으로 하여 여론조사를 했더니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 가운데 자식이 군대에 들어간 경우는 15퍼센트에도 이르지 못하였고, 전선에 배치된 수는 더욱 적어 1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 지배층이 입버릇처럼 말하듯, 이 길고 긴 전쟁이 정의의 실현을 위한 불가결한 것이라고 한다면 왜 그들은 자기의 아들들을 거기에 참여시키지 않는가? 왜 특권을 이용하여 징병을 기피하는가? 그것은 이 전쟁이 목숨까지 바칠 값어치가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우리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드워즈 위원회는 그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그 요구는 트류니히트 정권에 의해 일언지하에 묵살되고 말았다. 정부의 대변인을 겸하고 있는 정보통신 위원장 보네는 '회답의 필요가 없음'이라는 한 마디로써 이를 무시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없었다. 현재의 정부 구성 성분으로 미루어보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즈 위원들을 분노케 하고 모골을 송연케 했던 것은 언론의 태도였다. 모든 매스컴들이 이 중대한 문제를 1단기사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전자신문도, 입체 텔레비전도 정치권력과 관계없는 범죄나 스캔들 등은 크게 다루면서 진짜 중요한 에드워즈 위원회의 활동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 정치권력과 언론이 결탁하면 민주주의는 비판과 자정 능력을 잃고 죽음의 병을 앓기 시작한다. 그런 위기가 지금 이 나라에 퍼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4권
역사의 변천과 승패의 귀추는 일순간에 결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그 일순간의 뒷모습을 머언 과거에 비추어 조금쯤 알 수가 있다. 현재가 바로 그 순간임을 아는 자는 얼마 되지 않으며, 스스로의 손으로 그 일순간을 미래로 삼는 자는 훨씬 더 그 숫자가 적다. 더욱이 가슴 아픈 일은, 악의를 가진 자일수록 보다 강한 의지를 내새워 미래를 좌우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직접 체험하며, 과거를 간접 체험한다는 것, 이 세가지는 어느 것이든 각각 색다른 스릴을 동반하고 있다. 기쁨이 가득 찬 스릴, 분노가 가득한 스릴 등이 그것이다. 그 중 마지막 것이 아마도 최대의 스릴일 것이다. 이를 '후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부패한 민주정치와 청렴한 독재정치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인류 사회에 있어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명제일 것이다. 은하제국의 국민들은 그런 점에서 행복할는지도 모른다. 부패한 전제정치, 즉 논의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서서히 구출되고 있었으니까.
절대적인 선과 완전한 악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은,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인간의 정신을 끝없이 황폐화시킬 것이다. 자기만이 선이고 대립되는 상대는 모두 악이라고 본다면 거기에는 협조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오로지 상대를 패배시켜 지배하겠다는 욕망만이 정당화될 뿐이다.
"총참모장 각하! 어떠한 의상으로 감싼다 해도 정치의 참모습은 단 하나일 뿐입니다."
랭은 자기의 의견을 사실대로 제시했다. 오벨슈타인은 아무 반응없이 눈과 두뇌만으로 랭의 발언을 평가하고 있었다.
"이유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제는 자유의지에 의한 다수하의 지배를 구가하고 있는데, 그 점에 대한 귀하의 의견도 듣고 싶소."
"전체를 100으로 보고 그 중 51을 차지한다면 다수에 의한 주장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수파가 다시 몇 개의 그룹으로 분열되어 있따면 51 가운데 26만 점유해도 전체인 100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즉 4분의 1이라는 소수만으로도 다수를 지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예는 양식화하고 단순화시킨 것입니다만 다수파 지배라는 공화제의 원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는 명석하신 각하께서 소인보다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베개머리의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습관은 무서운 것, 예전과 달리 이곳에선 한 시간쯤 더 자도 되겠지만 소년이 깨어나는 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사령관님, 7시예요. 7시. 제발 일어나세요. 식사가 식으면 맛이 없잖아요."
"제발은 내가 할 말이다. 제발 5분만, 아니 4분 30초, 그것도 안 된다면 4분 15초, 제발 좀 보채지 마라."
"사령관이 늦으시면 어떻게 해요?"
"사령관이 없어도 병사는 잘한다."
"적이 쳐들어와도요? 늦잠 자다 기습당한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적도 지금은 잠자고 있을 시간이야. 후세의 역사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좀 더 자게 내버려 둬. 제발, 꿈속에서나마 평화를 맛보게 말야."
5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류니히트를 정계의 유일한 희망이자 떠오르는 별로서 칭송함으로써 시민들을 우롱해 온 상업저널리즘은 이제 다시 '의장 한 분만의 책임이 아니다. 전시민의 책임과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논법으로 최고권력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책임을 분산시킴으로써 그 책임 소재를 흐리게 하고 있었다. 비판의 화살은 오히려 정부에 대하여 협력의 자세를 멀리하면서 권리만을 주장하는 시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양 웬리의 견해였다.
'테러리즘과 신비주의가 역사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쳐다보는 깃발의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증오감을 품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아가 그런 일로 해서 자기의 입장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람은 광기 없이도 전쟁이라는 분화구에 자기와 타인을 밀어넣을 수가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는 뒷맛이 씁쓸했다.
최고 지도자가 주장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 신념을 만족시킬 때까지 무수한 병사가 산 채로 바베큐가 되고 팔뚝과 다리가 잘리는 병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온 몸으로 실감했던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정의나 신념을 포기한다면 병사들은 자기 몸 속에서 비어져 나온 피묻은 내장을 바라보며 공포와 고통 속에서 죽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즉 안전한 장소에 머물고 있는 한 권력자들은 정의와 신념이 인명보다 훨씬 귀중한 것이라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을 것이다.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