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작인 <프로메테우스, 2012>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이 아닌 신화를 토대로 한다. 감독인 리들리 스콧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불가지론자다. 쉽게 설명하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의 사고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가치를 추구한다. 초기 <에일리언, 1979>나 <블레이드 러너, 1982>에서 잘 투영되는 그의 불가지론적 가치관에 후기 <킹덤 오브 헤븐, 2005>나 <엑소더스, 2014>처럼 기독교 소재가 합쳐진 결정체가 이번에 개봉한 영화 <에일리언 : 커버넌트>이다.
첫번째 약속,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지고.
15명의 선원과 2000명의 개척민 그리고 1000여개의 태아는 거대한 배를 타고 우주를 부유한다. 배의 이름은 커버넌트 covenant, 약속이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7번째 벨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선장 브랜슨의 죽음, 즉 원래 따라야할 목자의 상실로 인해 크리스토퍼 오람은 선원13명을 이끄는 선지자를 강요받는다. 선지자와 13명의 추종자. 익숙한 구성이다. 크리스토퍼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와 φέρειν(페레인)이 합쳐진 것으로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지고 간다' 라는 뜻이다. 그 공허한 우주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구인의 노래가 사고지점 근처에서 울려퍼진다. 선원을 홀린다는 사이렌의 노래. 부선장이자 선장의 애인이었던 다니엘스는 공식적 입장까지 표명하며 사건의 우연성을 의심한다. 그녀는 오람을 말리지만 결국 선발대와 함께 미지의 행성에 착륙한다. 동물은 하나도 없이 거대한 밀이 자란 그 행성은 그들의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심지어는 주인공 다니엘스가 꿈꾸던 호숫가의 오두막도 실현가능해 보인다. 오람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인 다니엘스에게 (예수천당불신지옥) 신념을 들먹인다. 전편 결말에 인조인간 데이비드가 통역한 엔지니어의 단어가 떠오른다. 파라다이스.
두번째 약속,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도 처음은 아니었다.
영어단어 ‘covenant’는 약속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성경에서 그 단어는 <신과 아브라함의 약속>에 쓰여진다. 여호와는 불임인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면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편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등장한 남성의 형상 데이비드는 번식이 불가능한 인조인간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쇼 박사 또한 설정상 불임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감독이 재구성한 세계에서 신은 남성보다 여성을 더 사랑했다. 파라다이스 에덴의 동산에서 무생명, 즉 흙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브가 아닌 아담, 데이비드인 것이다. 데이비드는 성경의 다윗(David)과 마찬가지로 상대적 거인 골리앗 (엔지니어)을 무찌르고 왕이 된다. 가짜가 진짜를 이기는 현상은 예술사의 포스트모던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와 똑같이 생긴 인조인간의 이름은 월터(Walter)이다. 독일의 현상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복제기술로 인한 진품성의 가치충돌을 경고했다. 결국 복제품 월터는 완제품 데이비드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데이비드는 크리스토퍼 오람 선장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페이스허거를 붙이지만 이는 남성인 오람 선장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생물학적 인간 여성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에일리언 성체와 페이스허거의 외관이 남녀성기를 본 뜰 정도로 성별 상징에 예민한 감독이라면 결코 ‘엄마’라는 대사를 허투루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번째 약속, 제3인류를 실은 노아의 방주.
데이비드가 오람을 데려간 그 암실의 알은 누가 나은 것일까. 에일리언은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이라는 점에서 분명 남녀 성별이 구분되고 이 사실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퀸의 존재로 증명된다. 혹자는 알에서부터 퀸과 일반 에일리언이 구별된다고 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에일리언이 숙주의 DNA정보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남자에게서 난 에일리언은 수컷. 여자에게서 난 에일리언은 암컷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오리지날 시리즈의 히로인 리플리가 퀸을 가지게 된 것도 쉽게 납득이 된다. 리플리 외의 여자는 모두 잡아먹혔거나 사이보그이다. 다니엘스가 발견한 쇼 박사의 해부도로 미루어 보아 데이비드는 전편의 히로인 엘리자베스 쇼 박사를 숙주로 삼아 몇 개의 알을 얻어낸 것이 분명하다. 결말에 데이비드가 토해낸 두 개의 배아는 결국 암컷 수컷으로 탄생될 에일리언의 배아, 아담과 이브인 것이다. 등장 시대 순으로 첫번째 인류 엔지니어가 생물학적으로 재현한 첫번째 인조인간은 지구인이다. 엔지니어의 인조인간이 만든 두번째 인조인간은 기계 데이비드이다. 데이비드가 아버지 엔지니어의 씨로 어머니 지구인의 배를 빌려 탄생시킨 에일리언은 세번째 인조인간이다. 번식이 불가능한 로봇을 인류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면 기계 데이비드는 세번째 인류를 배에 싣고 세번째 약속의 땅으로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주 커버넌트는 전편에 이어 데이비드가 탑승한 세번째 배가 된다. 주인공 다니엘스의 이름은 성경에 나온 다니엘에서 따온 것이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바로 그 다니엘.
꿈보다 해몽
거장이라 불리는 리들리 스콧에게 기대했던 것은 <프로메테우스2>였다. 전작에서 그가 던진 질문인 인류 탄생의 목적이 밝혀지길 바랬다. 구지 이번 개봉작이 아니라 시리즈를 통해 천천히 대답해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에일리언 : 커버넌트>를 선보이며 그 답은 <에일리언>이라고 대답해버린다. 미래로 가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간 감독에게 실망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선보인 멋진 슈트와 스캔 장비들은 그 이후의 세대 <에일리언 : 커버넌트>에선 감독의 안일한 연출과 함께 실종되어 버렸다. 애초에 엔지니어의 도시나 우주선까지 셔틀이 저공비행하지 못한 점, 미지의 행성에 진입하는데 슈트나 마스크도 없는 점, 미지의 적이 공격하는데도 밀밭에서 탈출하지 않은 점, 사이렌 노래의 주체 쇼 박사의 실종과 데이비드의 정체에 의심을 품지 않은 점…이 외에도 SF호러로 회귀하기 위해 캐릭터들을 작위적으로 죽음의 상황에 격리시킨 점 등 <프로메테우스>의 치밀함 반만이라도 이어갔더라면 이정도로 실망하지는 않았으리라. 리들리 스콧 감독이 본문에 언급한 성경의 플롯과 이름 놀이에 집착하지 말고 감성과 철학적 질문에 정공법으로 접근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937년생 거장 감독이 통찰력 있는 엔딩으로 퇴장하길 바래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