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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달에 일어난 일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두달 남짓 지난 어느날 친구 A에게 전화가 왔다.
B와 C가 놀러왔으니 집으로 놀러오라는 것이었다.
벌써 시간이 9시도 지난데다가 A네 집은 우리집에서 학교를 중간에 끼고 완전 반대방향에 있어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도 상당히 멀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기도 했지만 딱히 할것도 없고 토요일 밤이기도 한 관계로 나는 A의 집에 가기로 했다.
환승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역 안에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안은 텅텅 비어 술 주정뱅이 2인조가 타고있을 뿐이었다.
일단은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술 취한 2인조가 다음 역에서 내림과 동시에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탑승해서 내 바로 건너편 좌석에 앉았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말고 고개를 들자 보이는 그 여자아이는 너무나도 귀여운 외모였다.
까만 세미 롱 헤어스타일을 한 약간은 어른스러운 분위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다.
여자랑 이야기 해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태 솔로인 나로서는 말을 걸 용기가 있을리 없었다.
잘 될리가 없지 하면서도 무의식중에 그 아이를 쳐다보고 말았다.
그러나 그순간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헐. 변태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서둘러 눈을 피해 원래부터 창밖을 보고 있던 시늉을 했지만, 누가봐도 내 연기는 어설펐을 것이다.
목적지까지 아직 5 정거장이나 남았다.
놀라서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보니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있었다.
이름은 아케미쨩이며 학과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케미쨩의 언동은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갑자기 몇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고, 시사에 밝은가 싶다가도 바로 얼마 전의 지진 이야기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반응이 없기도 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무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등 이상했다.
하지만 귀여운 여자 아이와 친해져서 우쭐해졌던 그때 당시의 나로서는 그 사실을 몰랐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녀의 언동은 스스로 보고들었다기 보다는 어디서 하는 이야기를 주워듣고 온 느낌이랄까.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어색함과 위화감이 있었다.
귀여운 여자아이랑 알게되어 잔뜩 신이 났던 그 당시의 나에게도 한가지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다.
전차가 달리면서 흔들릴때마다 '딱...딱...'하고 플라스틱같이 가볍고 딱딱한 물체가 부딪치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났던 것이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근원지를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소리의 정체는 파악되지 않았다.
아케미쨩이 그 모습을 보고 왜그러냐며 의아해 했지만, 나는 소리의 출처도 알수 없었고 별일이겠냐 싶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물론 이 소리의 정체는 후에 알게되었지만...
그보다 일상적으로 이런걸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
너무나도 이상했다.
나는 겨우 내 자신을 추스리고 냉정히 상황을 분석해보았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눈 마주친거 가지고 바로 말을 걸어온다는 자체가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런 솔깃한 일이 세상에 어디있어. 얘 좀 이상한 애 아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의문이라기보다 이건 확신에 가까웠다.
이대로 목적한 곳에서 내리면 위험할수도 있다.
나는 그녀를 따돌리기 위해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릴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말하고 내리면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되면 변명의 여지가 없고 쓸데없이 더 위험해질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전차가 역에 정차한 뒤 출발하기 바로 직전. 문이 닫히려는 그 순간 뛰어 내리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전차가 역에 도착했다.
아케미쨩은 아직 전화 통화츨 하면서 이쪽을 힐끔힐끔 보면서 수시로 체크하고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칠때마다 등골에 한기가 들었지만 예의상 웃는 얼굴로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엿보았다.
그렇다고 전차를 탔을 경우 다음역에서 아케미쨩이 기다리고 있다면?
B가 웃으며 농담식으로 말했다.
아니,모두들 그 말을 듣고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을 굳은 채 쳐다보았다고 해야할까.
A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단 도어스코프로 누가 온건지 확인하러 다녀오겠다며 발소리를 죽이고 현관쪽으로 향했다.
"진짜 귀여운 애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문앞에 서있는데...?"
A는 말했다.
이 사이에도 초인종은 쉴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너 진짜였던거냐.....뒤는 왜 쫒아오게 둔거야!!"
C가 책망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떻게 날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인지 나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정말 아케미쨩인지 보고올게."
나는 A와 마찬가지로 발소리를 죽이고 현관으로 가서 도어 스코프를 들여다보았다.
문 앞에는 곤란한 표정의 아케미쨩이 있었다.
진짜 따라온거야? 아니 왜 따라온건데? 우리 그런 사이 아니지 않나? 전차안에서 잠깐 이야기 한거 뿐이잖아. 왜 이러는 건데?
일단 나는 방으로 가서 친구들에게 밖에 있는 사람은 아케미라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없는척을 한다.
하지만 이미 형광둥도 켜져있고, 아까까지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으니 집 안에 누가 있는 것은 이미 들켰을 것이다.
일단 내가 옷장 안에 숨고 A가 나가서 나를 찾거든 그런 사람 모른다고 잡아 뗀다.
하지만 상대는 말 그대로 미친 사람이기때문에 애시당초 잡아 뗀다고 납득할지도 미지수고,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A가 문을 여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의논이 지속되는 와중에 밖에서 아케미쨩의 목소리가 들렸다.
"OO군~ 여기 있는거 맞지? 아까 들어가는거 나 봤어~ 왜 도망가는거야? 너무해. 제대로 설명해줘."
"야 너 이름까지 알려준거야?"
A는 소리를 죽이고 다급하게 말했다.
전 역에서 내려서 여기까지 택시까지 잡아타고 왔는데 어떻게 따라온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한들 소용없었다.
소곤소곤 대화가 대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문에서 어떤소리가 들려왔다.
옆집사람의 비명소리와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기기기기기기기기익!!!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금속의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옆집사람은 무사한건지 상황이 악화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우리들은 계속 이런 저런 대책을 세워보았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뚝딱 어찌 될것같지도 않아 안절부절하고 있었는데, 창 밖으로 순찰차의 불빛이 보였다.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해준 것 같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마음을 놓은 차에 밖에서는 거기서!!!하는 소리와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가 난 후 조용해졌다.
조금후 초인종이 울리더니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일단락 된듯 했다.
문을 열고 우리는 사정을 설명했다.
아케미쨩은 경찰관이 쫒아가자 아파트 구석까지 달려가서 담장을 뛰어넘어 도망갔다고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이름은 아케미이고 같은 대학 학생임을 설명했고, 경찰은 타겟이 나라는 점을 감안하여 한동안 우리집 주변을 순찰해줄것을 약속하고 긴급상황시 전화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주고는 돌아갔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옆집사람이었다고 한다.
옆집 사람 말로는 소리를 지르자마자 아케미쨩이 식칼을 휘두르며 다가와서 놀라서 문을 닫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다친데는 없다고 했다.
알고보니 우리학교에 아케미쨩이라는 학생은 없었으며 아직까지도 그녀는 붙잡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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