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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freeboard_655895
    작성자 : 김피요
    추천 : 117
    조회수 : 2469
    IP : 14.63.***.59
    댓글 : 38개
    등록시간 : 2013/01/28 22:42:19
    http://todayhumor.com/?freeboard_655895 모바일
    (BGM) 짬뽕국물 이야기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neGqk

    우리 동네에도 그런 바보가 하나 살았음.. 들리는 소문으로는 검정고시 붙고 며칠 있다가 아버지가 보증 선게 잘못돼서 집안이 망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하고싶어하던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어서 번개탄으로 자살기도했다가 그렇게 됐다고.. 사실인진 모르지만
    좀 불쌍한 이미지였음. 얼굴은 진짜 뻥안치고 거의 원빈급인데 맨날 더러운 옷을 입고 중얼거리면서 돌아다녀서 여자들이 질색을 함.
    더러운 옷은 하얀 셔츠에 갈색 얼룩이 덕지덕지 붙은거였는데 고시 준비할 때 잠깐 짱깨집 알바를 했었다는 소문도 있어서 동네 애들이
    이 바보를 짬뽕국물이라고 불렀음.. 그런데 내가 중3때인가 단골 만화가게 문 닫는거 도와주고 오밤중에 혼자 집에 가는데 뒤에서 여자
    울음소리 같은게 들리는거임.. 어린 마음에 겁도 없이 내가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달려가봤는데 키가 2미터는 되어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반쪽만한 여자를 아파트 담벼락에 몰아붙여놓고 분위기를 잡고 있었음. 여자 입술이 좀 터져있는 걸로 봐서 맞았을지도
    모르겠음. 아무튼 그 광경이 너무 무섭고 비현실적이라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는데, 남자가 한 10분쯤 그렇게 나지막히 욕을
    하다가 여자를 홱 밀치고 가버림. 나도 빨리 그 자리를 떠야겠다 싶어서 돌아서려는데 저쪽 담벼락 구석에 누가 쓰러져 있는거임..
    숨을 쌕쌕 쉬는걸로 봐서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팔 한 쪽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었음. 나는 너무 무서워서 막 달려서 집으로 왔음.
    그게 토요일이었고 월요일에 애들을 만나서 그 얘기를 했는데 한 놈이 어제 짬뽕국물이 팔에 부목을 대고 돌아다니는 걸 봤다는거임.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만화가게 앞에서 친구랑 떡볶이를 사먹다가 짬뽕국물하고 마주쳤는데 정말로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날 도망쳤던게 창피하고 미안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음. 그런데 짬뽕국물이 내 어깨를 잡는거임!

    한번도 짬뽕국물과 일대일로 대면해본 적 없었던 나는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그 초점 없는 눈에 그날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겨있을 것만 같아서 도저히 그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음. 나는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짬뽕국물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음.. 차라리 그냥 한바탕 욕이라도 먹으면 시원해질 것 같았음.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원망도, 욕지기도,
    늘상 중얼거리던 내 고양이 못봤냐느니 하는 헛소리도 아니었음. "친구, 싸인해줄래?" ... 황당함 반 안도감 반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붕대를 감은 팔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음. 같이 있었던 친구놈은 벌써 저만치 떨어져서 떡볶이를 입에 물고 겁먹은
    표정으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음. 나는 펜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뛰쳐나와서 친구와 함께 아파트 쪽으로 도망을 쳤음. 그 날 이후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짬뽕국물한테 떡볶이로 맞을 뻔 했다는 소문이 돌았음. 근데 소문이란게 계속 퍼지다 보면 점점 살이 붙어서 결국
    이상하게 변하잖음? 며칠 지나니까 짬뽕국물이 가래떡으로 중학생을 두들겨 팼다는 괴소문이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음.. 그 전에는
    그냥 불쌍한 동네 바보였는데 그 소문이 돌고 난 뒤로는 동네에 위험한 놈이 돌아다니니까 보면 피하고 어른에게 알리라는 가정통신문이
    학교에 뿌려질 정도로 나쁜 이미지로 전락함.. 내가 낸 소문은 아니었지만 나도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 사건이 잊혀질 때쯤, 놀이터에 앉아서 친구들과 졸업 전 마지막 방학을 야무지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상가 입구 쪽에서 우당탕 하면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음. 호기심에 친구들과 달려가보니, 예의 그 반쪽만한 여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주변에 옆구리 터진 김밥들이 나뒹굴고 있었음. 그리고 그때 그 남자.. 그 거구의 남자가 찌그러진 페트병을 들고 여자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었음. 남자는 트렌치코트 자락이 허벅지에서 끝날 정도로 키가 컸는데 낮에 보니 지난번보다 더 크고 무서워보였음.. 욕 내용을
    들어보니 늙은 애비한테 돈 몇 푼 못 쥐어주는 딸년이 어디 있냐느니 하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음. 친구들이 다 쫄아서 그냥 돌아가자고
    하는데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음.. 내 과오를 만회하고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는 멍청한 생각이 들었음.
    배가 아파오고 얼굴이 화끈화끈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아서 남자를 향해 그만하라고 소리를 빽 질렀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남자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정의의 사도 슈퍼맨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음.. 하지만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달랐음..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만취해서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고, 뒤를 돌아보니 친구놈들은 이미 어디로 내뺐는지 흔적도 없었음.. 쓰러져 있는
    여자 얼굴을 보니 남자가 들고 있는 페트병이 왜 찌그러졌는지 알 것 같았음. 남자가 나지막히 욕을 하면서 나한테 다가오는데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머리속에 슉슉 스쳐지나갔음..ㅋ 그 어린 나이에도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니까 모든 게
    허탈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헛웃음이 났음.. 지금도 그 날만 생각하면 배가 살살 아파옴. 아무튼 그래서 다 포기하고 무너지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갑자기 거짓말처럼 내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상가 안쪽으로 끌려들어갔음. 그 때 몸에 힘이 풀리면서 정신을
    놨던 것 같음.. 눈을 떠보니 만화방 아저씨가 난로에 물주전자를 올려놓고 내 팔을 주무르고 있었음. 어떻게 된거냐고 캐물어봐도 얘기를
    안해주는데, 사실 기절하기 직전에 나를 붙들고 있는 팔에서 희미하게 짱깨집 냄새가 났던 게 기억남..

    그 일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만화방 아저씨한테 짬뽕국물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졸랐음. 만화방 청소도 해주고 화이트보드에 신간 적는
    일도 도맡아서 했음. 처음에는 알 거 없다고 쓸데없는 데 신경 끄고 공부나 하라던 주인 아저씨도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조금씩 얘기를
    해주기 시작했음. 그 얘기는 이랬음. 짬뽕국물에 대한 소문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루머.. 집안이 폭삭 내려앉아서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자살기도를 한 적은 없다고 함. 바보가 된 것은 우리 동네 판자촌에 큰 불이 났을 때 집안에 갇힌
    어린 아이를 구하다가 머리를 다쳐서 그렇게 된거라고 함. 돌아다니면서 동네 사람들한테 고양이 못봤냐고 물어보는 것은 그때 구했던
    아이 별명이 검둥고양이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부모님은 보증 빚 때문에 서류 이혼을 했다가 나중에 정말 헤어져서 친구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짬뽕국물을 맡기고 잠적했는데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함. 만화방 아저씨가 그 중국집 사장 고향 후배라서 종종 만나는데
    짬뽕국물이 불을 무서워해서 주방일은 못 시키고 지금은 설거지나 시키면서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일급을 주고 사장님도 돈을 조금씩
    보태주고 있다고 함. 만화방 아저씨는 짬뽕국물한테 공짜로 만화책을 빌려주는데 하루도 늦게 가져온 적이 없다고.. 내가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이게 다였음. 어쨌든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과도 하고 감사 인사도 할 겸 그 중국집을 찾아가보기로 했음.

    그곳은 상가 3층에 있는 허름한 중국집이었는데, 사모님한테 짬뽕국물을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조금 놀라면서 수현이 친구니? 하고는
    창고에 가보라고 했음. 창고에 가니까 짬뽕국물이 포대더미 위에 앉아서 만화책을 읽고 있었음. 팔은 다 나은 것 같았는데 볼에 쓸린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또 한바탕 얻어 맞은 것 같았음. 내가 쭈볏쭈볏 들어가서 저기요.. 하니까 짬뽕국물이 나를 보면서 씨익 웃었음.
    "친구, 괜찮아?" 언제 봐도 잘생긴 얼굴..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아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 시작했음. 그날 도망쳐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나 때문에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 거인한테서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그런데 처음에는 해맑은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던
    짬뽕국물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음. 나는 역시 그 소문 때문인가 하고 재차 사과를 하려는데 짬뽕국물이 내 말을 자르더니 말했음.
    "친구, 사과 안하는거야." ...그 한 마디에 그동안 쌓여왔던 미안함과 자책감이 다시금 밀려오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음.. 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니까 짬뽕국물이 당황해서 지저분한 팔로 눈물을 닦아줬음. 거인으로부터 나를 구해줬던 사람에게 났던 그 냄새가 났음..

    그 뒤로 중국집 사장님하고도 안면을 트게 되어서 자주 친구들과 놀러갔음. 사모님도 짬뽕국물한테 친구가 생긴건 처음이라면서 매일
    공짜로 짜장면과 새우 만두를 먹을 수 있게 해주심. 그 때 살이 뒤룩뒤룩 쪄서 군대 갈 때까지 안빠졌음..ㅋ 아무튼 그렇게 짬뽕국물네
    중국집에 매일 놀러가서 짬뽕국물하고 같이 만화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지냄. 신기하게 짬뽕국물의 생일이 나랑 같다는 것도 알게 됨.
    그래서 겨울방학 막바지에 생일파티를 해주려고 짬뽕국물이 좋아하는 슈크림빵으로 케익을 만들어서 찾아가기로 함. 그동안 생일에는
    늘 중국집 가족들하고 저녁을 먹었다고 해서 식사가 끝날 때쯤 중국집에 찾아감. 그런데 문이 닫혀있고 안에 아무도 없는거임.. 아무리
    생일이라지만 중국집이 이 시간에 문을 닫고 외식을 하러 갔을 리는 없고.. 뭔가 안좋은 예감이 들었음.. 나는 3층을 단숨에 뛰어내려와
    공중전화에서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었음. 사장님이 전화를 받긴 받았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음.

    사장님이 사투리를 쓰시는데다 너무 흥분하셔서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음.. 대충 무슨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 같았음.. 좀 더 사정을 듣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전화를 끊고 만화방으로 내려갔는데,
    아저씨는 없고 만화방에서 자주 봤던 단골 누나가 앉아있었음. 아저씨 어디 계시냐고 물어보니까 무슨 전화를 받고 아까 나가셨다고..
    혹시 또 거인하고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걱정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돌아가기로 했음.. 집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페트병을 들고 시뻘건 눈으로 나에게 다가오던 거인의 모습과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짬뽕국물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어지럽고 헛구역질이 났음.. 집에 도착해서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저녁에 식구들과 먹다 남은 생일 케이크가 들어있었음.
    어째서인지 눈물이 막 나서 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새벽까지 펑펑 울었음.. 종교도 없었던 내가 생전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온갖 신에게 기도를 했음.. 제발 짬뽕국물한테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그러다 잠들었는데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벌써
    중국집 오픈 시간이 지나있었음. 나는 무슨 일이냐는 엄마의 걱정스런 물음에 대답도 없이 눅눅해진 슈크림 케익을 들고 달려나갔음.

    중국집에 도착하면 짬뽕국물이 언제나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친구, 밥 먹었어?" 라고 해줄 것만 같았음.. 슈크림 케익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만 같았음.. 하지만 혹시라도..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처럼 달려갈 용기가 나질 않았음..
    떨리는 마음으로 상가 앞에 도착했는데 만화방 아저씨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음.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방을 들락날락 했지만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 날 처음 본 것 같음.. 아저씨가 날 보시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끄고 만화방으로 데려가셨음.
    나는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음. 아저씨는 작은 사고가 나서 입원한 것 뿐이라고 하셨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은 짬뽕국물같은 바보도 알 수 있었음. 더 캐묻고 싶었지만 아저씨 얼굴을 보니 소용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병문안이라도
    가야겠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한참 계산대 모니터를 보면서 멍하니 계시다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아저씨랑 같이 가자고 하셨음.

    댓글로 계속 적을게요. 죄송합니다ㅠ


    김피요의 꼬릿말입니다
    게임 더럽게 못하는 게임방송
    http://afreeca.com/piyo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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