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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65081
    작성자 : 환상괴담
    추천 : 55
    조회수 : 6309
    IP : 210.90.***.248
    댓글 : 16개
    등록시간 : 2014/03/02 05:02:41
    http://todayhumor.com/?panic_65081 모바일
    [환상괴담 시리즈 시즌2] 가짜꽃
     " 오랜만이야, 한 번 보는게 쉬운 일이 아니야 정말. "
    " 그러게. 좀 자주 얼굴 보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 우리 나이는 이제 가족한테 매달려야지. "
     
    동창 여럿이 모여 그간의 길었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모였을 때와 하는 이야기도 비슷하고 모인 사람도 비슷하지만,
    어느새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모습은 지난 세월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술잔이 여러 번 오가자 처음의 들뜬 분위기는 조금 덜해졌지만 대신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던 저마다의 이야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 참 얘기 들어보니 또 배우게 되네. 진작에 알았다면 좋았을걸. "
    " 모이니까 좋다. 그나저나.. 혜리는 어떻게 지낼까? "
     
    오고가는 말 속에 누군가 툭하니 내뱉은 말이 분위기를 순간 차갑게 얼렸다.
     
    " 혜리..? "
    " 다 지난 이야기를 왜.. "
     
    " 니들은 안 궁금하냐. 난 가끔 생각나더라. "
     
    " 물론 어쩌다 한 번씩 떠올리곤 하지만.. 뭐 누구 아는 사람 있어? "
     
    모두 시선을 주고 받으며 '나는 모른다'는 식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모두가 그러면서 마음 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겠지.
     
     
    " 바보야, 남들은 연락 잘만 하더라. "
    " 아냐,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뒤로 뺄 수가 없더라.
    내가 너무했지? 혜미야. 앞으로 더 잘할게. 화 풀어. "
    " 정말 잘 할거야? 현준이 너 요즘 너무 마음에 안 드는데-.. "
    " 내가 잘 한다는게 뭔지 정말 보여줄게. "
     
    흔한 동갑내기 연인들의 사랑 싸움.
    남들이 걱정해줄 필요도 없는 남녀의 사소한 다툼이 혜미의 방에서 작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다가, 흔히 그렇듯 남자 쪽에서 용기를 내어 고백해 이루어진 연인으로
    두 쪽 모두 마음 속에 아무런 흑심없이 순수하게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고 아끼는 보기 좋은 사이였다.
    그러나 남들은 모두 훈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혜미와 현준을 불과 몇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거실에서
    시기와 질투의 눈초리로 따갑게 쏘아보는 여자가 있는데, 혜미의 동생인 혜리였다.
     
    ' 또 아무런 말소리가 안 나오는 걸 보니 입을 맞춘 모양이야. 도둑 같은 기집애.. '
     
    혜리는 몹시 분했다.
    외모로 봐도 조금 촌스럽게 생기고 몸매도 자기보다 빼어난 구석이 없는데다,
    인간 관계로보나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보나 자신보다 나을 게 하나 없는 혜미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온 현준을 옆에 차고 다니는 게 짜증이 났다.
    저 방 안에서 지금 숨소리도 잦아든 채 입술을 부비댈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장 문을 열고
    혜미 년의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지만, 현준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현준 오빠를 불여우 같이 꼬셔서, 첫 여자를 배신하지 못 하는 착한 남자의 마음을
    이용해서 오빠와 나 사이를 갈라놓는 망할 년, 사람 생간을 꺼내먹어도 이상하지 않을거야,
    저 년이 생글생글 웃는 것만 봐도 토악질이 나와.. 혜미의 증오가 거실에서 점차 커졌다.
     
    끼익,
    문이 조용히 열리고 살짝 상기된 표정의 혜미와 현준이 외투를 걸쳐입은 채로 나왔다.
     
    " 아, 혜리 집에 있었구나. 안녕. "
    " 오빠. 오셨어요. 아- 잠시만요 잠시만요. "
    " 왜.. "
     
    혜리는 현준이 걸쳐입은 외투 어깨 쪽에 먼지가 살짝 묻어있는 걸 발견하곤 다가가서 직접 털어주었다.
     
    " 헤헤.. 됐어요. "
    " 혜리야 고마워. "
     
    혜리야, 하고 나즈막이 불러주는 낮은 목소리가 어쩜 그리 좋을까?
    혜리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 혜리야, 나 현준이하고 나갔다올거야. 저녁 먹고 들어올거니까 엄마한테는 10시 전에 들어올거라고 말해줘. "
     
    가증스러운 년, 10시까지 오빠랑 같이 있겠다고?
    팔짱 끼지마 개년아.
     
    " 언니는 참 그래. 현준 오빠 외투에 이렇게 먼지가 있으면 미리 미리 신경 써서 좀 털어주고 그래야지.
    남자 하고 다니는 건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봐. 언니는 늘 같이 있으면서도 신경을 못 써주고.. "
     
    " 혜리야! 버스 시간이라서.. 미안, 다음에 언니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사올게. 다음에 보자. "
     
    " 아... "
     
    " 혜리야 엄마한테 좀 말해줘~ "
     
    혜미의 목소리가 멀어지며 현관문이 닫혔다.
    혜리는 사랑하게 된 남자를 바라보던 두근거리는 마음과, 그 남자를 빼앗아간 혜미가 남자와 사랑하는 꼴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봐야하는 마음, 그리고 그런 남자가 혜미에게 주는 사랑의 반의 반도 채 받지 못 하는 마음이
    한데 뒤섞이며 슬프고, 밉고, 서운하고, 짜증나고, 화가 나는 온갖 감정이 범벅이 된 채로 주저앉았다.
     
    혜미는 오빠 사랑한지 얼마 안 됐단 말이야,
    난 오빠가 우리 집에 처음 놀러왔던 그 날부터 좋아했단말야,
    내가 더 이쁘잖아, 내가 부족한 매력이 대체 뭐야,
    똑같은 집에, 똑같은 부모에, 그 외 조건은 내가 더 좋은데,
    심지어 사랑하는 것도 걔보다 내가 먼저 사랑했단말야,
    어릴 때부터 줄곧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는데 왜 혜미야?
    왜 내 마음은 몰라줬어 그럼.
     
    " 썅년.. 그래.. 그럼 그렇지.. "
     
    맞아, 오빠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착하고 순진한 오빠한테 먼저 접근해서,
    오빠랑 내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전에 자기가 일부러 꼬리를 쳐서,
    오빠 마음을 흔들어놓고, 오빠가 자기 감정을 제대로 모를 때
    자기를 건드리게끔 유도해서, 깔깔깔 그럼 그렇지,
    비겁한 년.
    오빠하고 이어질 인연도 아닌게..
    똑같이 놔두고 보면 나보다 나은 것 하나 없는게..
    그래.. 똑같이..
     
     
    " 혜리 때문에 걱정이야. "
     
    " 혜리가? 왜? "
     
    " 혜리 아무래도 현준이 너 좋아하는 거 같애. "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기다리던 중에 혜미는 동생 걱정을 현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혜미는 그간에도 동생이 현준을 바라볼 때 몹시 수줍어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현준과 혜미가 교제하기
    시작한 뒤로 행동거지나 말투가 몹시 변덕스러워진 걸 보면서 직감적으로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러나 혜미를 좋아하기 시작하다가 최근에야 혜미와 연인이 된, 친구와 친구 여동생으로 여기다가
    혜미만을 사랑하게 된 현준에게는 혜리는 기껏해야 아는 여동생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른 여자는 쳐다봐도 별 느낌없는 존재였다.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봐와서 남매같은 느낌마저 드는 동생이라면 더더욱.
     
    " 그냥 오빠로서 좋아하는거지. 우리가 한 해 두 해 보는 사이가 아니잖아. "
     
    " 그냥 오빠? 그냥 오빠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던데. 가끔 나보다 더 애틋하게 쳐다볼 때가 있다니까. "
     
    " 다른 여자도 아니고 혜리가 왜 그러겠어? 난 혜미 니가 걱정되는데- 내가 잘 한다니까.
    혹시 지금 나 시험하는거니? "
     
    " 미쳤어, 동생 가지고 무슨 시험이야. "
     
    - " 주문하신 요리 나왔습니다. "
     
    종업원이 요리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의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두 사람은 데이트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마음 속에 석연찮은 구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나고, 시내를 걷던 현준은 우연히 혜미의 뒷모습을 마주쳤다.
    반갑게 불러볼까, 웃으며 돌아봐주려나, 그러나 왠지 깜짝 놀래키는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유치해지기 마련이니 현준은 후자를 택했다.
    걸어가는 혜미 뒤로 다가갈수록 확실히 혜미라는 확신이 들었다.
     
    " 혜미야! "
    어깨에 손을 올린 순간 화들짝 뒤를 돌아보는 여자,
    분명 혜미와 머리 모양도, 옷도 똑같았는데,
    아냐, 혜미 맞나? 혜미 맞는 거 같은데? 아니, 아닌데,
    그 찰나에 현준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혜미인지 아닌지 확신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 현준 오빠 ! "
     
    혜리? 혜리였어?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나았다고 안도하는 마음이 순간 들었지만
    자신의 앞에 생글생글 웃고 있는 혜리를 본 순간 현준은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혜리가 평소 입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혜미는 수수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반면 혜리는 예쁘장한 외모답게
    도시 여자 느낌이 물씬나는 옷을 차려입고 다니는데,
    혜미를 보며 옷 좀 세련되게 입으라고 몇 번 핀잔을 주는 걸 들어 알고 있었다.
    헌데 지금 혜리가 입고 있는 옷은 전혀 평소의 차림과는 다른,
    혜미와 똑같은 옷차림을 입고 있었다.
    머리 모양도 마찬가지였다.
    현준은 혜미를 빼닮은 혜리를 쳐다보며 정신이 아찔했다.
    혜미를 닮아서 심장이 두근거리는건지,
    생각에도 없던 혜리가 서있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건지,
    스스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 오빠 여기서 만날 줄 몰랐어요. 지금 바쁘신 거 아니죠? "
     
    " 으.. 응. "
     
    말할 때 발음을 살짝 흘리는 버릇마저 혜미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자
    현준은 더욱 어지러웠다. 원래 똑부러지게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우리 혜리는 아나운서하면 되겠네'하고
    얘기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쟤는 원래 저렇게 어눌한 말투가 아닌데.. 저건 혜미 버릇인데..
     
     
    현준이 꽃다발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익숙한 대문 앞이다. 아, 우리 집이구나.
    곧 내가 나오자 현준이 환한 미소와 함께 꽃다발을 안겨준다.
    아이, 보기 좋아..
    하지만 꽃향기를 들이마신 뒤 현준과 입을 맞추는 나..
    그 살짝 감은 눈이 순간 부릅 떠진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와 눈을 마주친다.
    순간 깨닫는다.
    그건 내가 아니라 혜리다.
    나와 머리도, 행동도, 습관도, 말투도, 외모도 거의 똑같은..
    현준을 불러보지만 답이 없다,
    이번엔 혜리가 주도적으로 끌어안고 입을 거세게 맞춘다.
    둘 사이에 틈이 생기질 않는다.
    내 마음에는 금이 가고 있다.
     
    " 히이익- ! "
     
    혜미는 질겁하며 눈을 떴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방안을 맴돌고 있다.
    다행히 꿈인 모양이지만, 생각해보면 꿈이나 현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혜리가 이상해졌다.
    이 세상 사람 누구보다도 자신과 오래 살며 서로의 모습을 공유해온 동생이 자신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목소리도 행동거지, 말투, 습관까지 하나 하나 전부.
    덜렁거리는 모습을 봐놓았다가 현준 앞에서 똑같은 실수를 그대로 한다.
    혜미 자신이 꼭 둘이 된 것처럼,
    소름끼치도록 닮았다.
     
    혜리가 그러는 이유가 혜미 자신을 사랑하는 현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도 혜미처럼 행동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혜미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혜미는 혜리처럼 독한 성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혜리가 현준을 좋아하는 줄 눈치채고 있었지만
    차마 혼내지도 못 하는 소심한 군데가 있었는데, 이렇게 혜리가 예상치도 못한 식으로 접근해오자
    혜미는 매일 현준이 혜리를 끝내 사랑하게 되는 악몽을 꾸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 현준아.. 어떡해.. "
     
    혜미가 현준과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건넛방 벽에 귀를 바짝 갖다붙인 혜리는 그 혼잣말 하나마저도 포착하기 위해
    벽에 몸을 납작하게 갖다붙인 채 그 터져나오는 울음마저도 듣고 있었다.
    더 똑같이, 내가 저 년보다 더 오빠가 원하는 여자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해,
    오빠 마음이 내게로 올거니깐. 히히!
     
     
    " 빙빙~ 비행기이- "
     
    " ... 혜미야.. "
     
    언제부턴가 혜미가 먼저 미쳐있었다.
     
    " 오빠. 언니 걱정은 마요. 제가 옆에서 간호하고 있으니까.. "
     
    또 혜리가 옆에 달라붙었다.
    생김새, 목소리, 말투, 모조리 혜미와 똑같다.
    순간 현준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치기 전의 혜미보다 더, 아니 원래 자신이 알고 있던 혜미보다 더 혜미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자신이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는 미쳐버린 혜미가 원래 혜미가 아니고,
    자기 옆에서 혜미인 척 똑같이 행동하는 혜리가 원래 혜미였던 것처럼.
     
    " 혜리야. 제발 그만해.. 혜미 충분히 고통받았잖아. 언제까지 그럴거야. "
     
    " 오빠 무슨 말씀하시는거에요. 혜미 언니는 상관없어요. 저는 저에요, 저를 봐주세요. "
     
    " 지금 넌 너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잖아! "
     
    " 저라구요? 세상에 나같은 나는 없어요, 오빠가 보고싶은 나만 있어요. 아시겠어요?
    오빠가 좋다면 그렇게 살거라구요. 어느 쪽이에요, 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에요,
    아니면 오빠가 좋아하던 모든 걸 다 가진 저에요? "
     
    그 말을 하자마자 결국 참지 못한 현준이 혜리의 뺨을 때렸다.
     
    " 혜리야. 제발 정신차려.. 언니가 미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아무리 그런다고 해서 내가 널 좋아할거란 착각은 하지마.
    난 어디까지나 혜미를 좋아해. 넌 왜 그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 왜 공감을 못 해?
    똑같이 행동하면 사람이 똑같이 사랑해줄거라고 생각했어? 미쳤어?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거야, 그 사람이 미치든 말든,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거라고. "
     
    " 공감을 못 하는 건 오빠잖아요! 사람 마음을 모르는 것두요! "
     
    혜리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주 앙칼지고 똑똑한, 원래 혜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말투였다.
     
    " 전 오빠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단 말이에요,
    언니는 그런 마음도 없었단 말이에요, 왜 제 마음이 그런 줄 몰라줘요,
    공감 못 해준 쪽이 어느 쪽이냐구요! 내가 더 사랑한다구요,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걸 넘어서서,
    그 사람을 위해서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내 마음을 더 알아줘야하는 거잖아요! "
     
    " 헤헤헤헤, 혜리 운다, 울지마, 울지마아 "
     
    혜미가 실실 웃으며 혜리 옆을 맴돌았다.
    혜리는 눈물을 흘리며 얼마간 혜미를 쳐다보다가,
    눈은 그대로 울고 있으면서 또 버릇처럼 혜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 헤헤헤헤, 사랑해달라구요 "
    " 헤헤헤, 혜리 사랑해, 히히히 "
    " 헤헤헤헤 "
    " 헤헤헤 "
     
    히히히,헤헤헤, 방 안에 광기가 나갈 곳을 못 찾고 맴돌았다.
    그 날로 현준도 끝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뤄진 사랑은,
    없었다.
     
     
    그 날 이후 현준과 혜미, 혜리는 나란히 미쳐버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질투받고, 그 사랑을 뺏길거라는 망상 속에 미쳐버린 혜미와,
    그렇게 미쳐버린 혜미를 여전히 사랑하려다 점차 자신도 미쳐버린 현준과,
    현준이 미쳐도, 미치지 않아도, 그런 현준이 사랑해준다면 미치는 것조차 마다않는 혜리.
    두 여자와 한 남자.
     
    어떻게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현준과 두 자매 모두 우리와 함께 학교를 다니며 자라난 한 동네 사람인데..
    모두의 회상은 아마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어느 날 저녁 식사 밥상 앞에서 된장찌개를 올리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 오늘 뒷산에 물뜨러가는데 혜미가 나비 한 마리를 따라가는거라,
    정신없이 웃으면서 가는데, 현준이하고 혜리하고 좋다고 따라웃으면서 뒤에 따라가는데
    지금은 몰라. 어디 갔는지. 아까 보니까 집에 안 들어온 거 같던데 길이나 잃은 거 아닐까 몰라.
     
    그 뒤로 본 적이 없으니 이 이야기는 이제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 이야기 자체가 별로 달가운 주제는 아니었고,
    그렇게 마을을 떠나버린 옛 친구들을 회상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 노동을 필요로 했다.
     
    " 흠흠. "
    누군가 어색함을 깨고 고기 몇 점을 불판에 얹자,
    다들 홀려버린듯 멍한 표정으로 따라서 고기를 불판에 얹어댔다.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기엔 너무 평범한 우리들이었다.
     
    " 살아는.. 있을까. "
     
    그 말에 애써 고기를 굽던 우리가 표정을 찡그리는데,
    그 말을 꺼낸 동창 한 놈의 표정이 얼이 빠진듯 멍해졌다.
     
    " ...? "
     
    " 빨리 들어오라고! "
     
    " 알았어. "
     
    앙칼진 여자 하나의 목소리와, 멍청하게 대답하며 끌려들어오는 남자 하나.
    세월이 많이 흘러 한 눈에 알아보긴 쉽지 않았지만..
     
    ' 걔 맞지? 걔 맞지? '
     
    동창들 모두가 소리 없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틀림없었다.
     
    왠 유골단지 하나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남자,
    그리고 그 단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여자.
    현준과 혜리였다.
     
    혜리는 고기 메뉴판을 보다 말고 씩씩거리며 현준의 단지를 빼앗으려 들었다.
     
    " 언니를 왜 자꾸 끌어안아! 씩씩, 이제 나 하나만 바라봐줄 때도 됬잖아! 멍청이! "
     
    " 으으으, 안 돼, 안 돼, 이건 내꺼, 내꺼.. "
     
    어딘가 나사가 빠져도 단단히 빠져있는 두 사람의 비상식적인 모습에,
    우리들 모두는 방금 올려놓은 고기가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른채,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근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상괴담 시리즈 시즌 II.
    '가짜꽃' 끝
    괴담의 중심, The Epitaph
    환상괴담의 꼬릿말입니다
    혜리도 혜미도 현준도 안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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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02 05:23:15  58.231.***.38  둘이서  389368
    [2] 2014/03/02 05:29:55  182.225.***.6  강냉강냉강냉  370251
    [3] 2014/03/02 05:49:17  124.51.***.27  blue1111  526626
    [4] 2014/03/02 06:53:31  115.136.***.239  센트럴퍼크  8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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