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1.언어는 불연속성을 갖는다. 마치 액자 안에 있는 회화작품처럼 연속성을 잠식시키고 불연속의 환상을 통해 아우라를 얻는다.
2.언어의 번복은, 쉽게 말해 앞의 말과 뒤에 말이 달라지면 거짓이다. 연속성을 띈 언어는 거짓과 진실이라는 양자택일에 놓이게 된다.
3.언어는 '진리'라는 고명한 목표가 잠재되어 있다. 역사상 '진리'라고 여겨지는 언어들은 '동어반복'이거나 '동어반복'의 구조가 낳은 환상에 경도된 '인간'의 언명이다. '진리는 진리다.'라는 방식의 동어반복은 '짐은 곧 왕이다.' 혹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생각하는 나의 주체가 성립될 수 없다면 생각이라는 행위 역시 성립될 수 없음으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식의 언어적 환상을 낳는다.
4.언어는 구조가 있다. 그리고 언어는 그 구조의 틀 속에 요소(단어)들의 결합에 의해 의미를 만든다. 이는 언어가 변함없는 구조를 전제함을 의미한다. 언어에 있어 변함없는 구조의 존재는 의미를 만드는데 필수조건이다. 때문에 구조 밖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요소들이 배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언어사용자는 구조의 밖에 있는 언어, 비선형적 언어요소는 '비문법적 표현'으로서 구조의 밖에 둔다. 마치 우리가 '사회구조'를 갖고 구조 안에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요소로서 인간'를 '반사회적 인간'으로서 구조의 밖에 두는 것처럼 말이다.
5.모던(현대)은 언어의 사용이 보편화 됨과 동시에 발전한다.
6.언어는 사용자에 따라 양면, 양극을 넘나든다. 역사상 '학살'과 '혁명'은 항상 같은 사건에 붙여질 수 있었다. 사상의 종점이 '인간의 행복'인 서로 상이한 방식의 사상이 존재 할 수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언어는 동전과 같아 천사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악마를 볼 수 없지만, 이 둘은 원래 하나이다.
7.언어가 연속성을 띌 수 있는 상황은 복제매체에 의해 존재할 때 이다. 가령 글이나 동영상처럼 불연속적인 언어를 박제한 체 시간을 두고 응시할 수 있도록 '대상화'할 때 이다. 하지만 이 조차 불연속의 환상은 매체를 지배한다. 왜냐하면 언어가 복제될 '최초의 순간'을 우리는 매 순간 복제된 언어를 접할 때 마다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어는 '나쁘다, 좋다.' '선하다, 악하다.'라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언어는 앞서도 언급했 듯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동전의 양면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언어는 언제나 인간의 '삶', 그리고 '행위'의 연장에서 생산되는 '일시성'을 갖는 매체이다.
*행위
1.행위는 삶, 실천, 현장, 동적인 것, 일시적인 것 등등과 같은 수 많은 동의어를 통해 변이 될 수 있는 개념이다. 한 마디로 고정된 행위는 있을 수 없다.
2.행위의 의미는 고정 된 틀로 의미화 할 수 없다. 가령 무엇을 통해 지각하느냐, 가령 눈으로 보느냐, 귀로 듣느냐, 혀로 맛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상황에서 지각하느냐, 내 입장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의미화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밖에 어떤 맥락을 대입하든 의미는 항상 새로워진다.
3.행위는 주어진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신의 섭리'라든지 '정해진 운명'과 같이 행위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언어적 환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카오스는 행위의 비선형성과 일시성에 대해 언어가 규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괄호'와 같은 것이다.
4.한 사건 뒤에 일어난 사건과, 한 사건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다른 것 처럼 행위는 인간/언어에 의해 연속성 속에 불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
5.행위는 주어진 틀이 없는 것 처럼, 각 요소의 구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의 각 요소가 갖는 구분은 '인간'적이며 '인간'없는 행위 조차 인간의 응시를 통해 '인간적 구분'을 갖게 된다. 가령 꿀벌의 날개짓과 인간의 발레는 인간을 통해 구분된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행위이며 삶이며 순간이다.
6.행위와 언어역시 구분되지 않는다. 가령 언어와 행위를 같은 층위로서 보는 이 글 역시 행위를 언어적 구분으로서 의미화 하고자 하는 시도에 불과하다. 언어는 행위의 연장이며 행위 중 하나이다. 때문에 언어행위 역시 행위와 같은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다.
-종합한다면, 언어와 행위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삶의, 그리고 현장의 연속성이라는 점에서 하나이며 때문에 언어를 독립적인 무엇으로 인식하는 것은 '언어적 환상'을 생산하는 길이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위를 일치하라는 도덕적 요청으로 볼 수 있지만, 나는 언어와 행위는 하나라는 존재적 일치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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