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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 옆에 조성된 조선인 코무덤.
봉분 위에 세워진 돌비석이 임진왜란 때 희생된 선조들의 원혼을 짓누르고 있다.
<나라사랑연구회 제공>
사진.기사: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829.010020754090001
임진왜란 후 일본에 조성된 조선인 코무덤(鼻塚)이 한국인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어 속히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기중 나라사랑연구회 이사장(경일대 교수)은 ‘글로벌시대 나라사랑을 위한 방안 모색’을 주제로 30일 영남대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에서 ‘일본에 조성된 조선인 코무덤에 대한 대책’에 관해 주제발표를 한다.
성 이사장은 28일 미리 배포한 자료를 통해 “임진왜란 때 희생당한 선조들의 코무덤이 우리 국민의 무관심속에서 400여년간
일본에 방치되고 있다”면서 “세계역사상 가장 잔인한 한국인의 코무덤 문제에 대해 민간은 물론 한·일 정부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이사장에 따르면 조선인 코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전공(전리품)의
기준으로 삼은 데서 비롯됐으며, 지금까지 교토시, 쓰야마시, 비젠시 등 일본내 3곳에서 발견됐다.
일본은 코무덤을 원혼들의 공양을 위해 조성했다고 주장하면서 지방문화재로 등록했으며,
심지어 관광지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조차 잘 안하고 있다는 증언이 함정
http://blog.daum.net/jeon015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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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 칼럼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72
일본의 옛서울 교토(京都)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임진왜란 당시 베어간 조선사람의 귀와 코를 묻은 귀무덤이 있었다.
안내판에는 왜장 도요토미 히데요시(風臣秀吉)가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그 귀를 베어 만든 무덤이라고 버젓이
적어 놓고 있다.
<풍신수길보>란 책자에는 왜란 전후 15통(桶)의 귀와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보내졌다고 기술돼 있다.
실제는 전사한 조선인 코를 12만 6000개 이상 소금상자에 절여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나 코를 자르는 행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수에게 가하는 최고의 형벌에 속한다.
그런데 생사를 가릴 것 없이 조선인의 코를 십여만개나 베어 전리품으로 가져갔으니 이런 엽기적 소행은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더욱이 400여년 간 참다운 진실규명과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없었다는 것은 역사인식의 빈곤이요, 주체의식의 무지가 빚은
소치가 아니고 그 무엇인가 싶다.
이 귀무덤을 말할 것 같으면 교토시 히가시야마(東山)의 구 나야(菜屋) 정마을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무덤 지근거리에 도요토미가 지은 방광사(方廣寺)가 있다.
이 절은 도요토미가 조선정벌의 야욕을 불태우며 기도한 곳이다.
그가 죽은 후 영혼을 모신 신사(神社)를 절 옆에 지어놓았으니 유명하게 되고 말았다.
1598년 8월 도요토미가 사망하기 1년전 조선에서 승전한 전과의 과시용으로 조성한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묻힌 귀숫자는 왜장 오카와치 히데모토의 기록에는 18만개로 명시해 놓았고 역사학자인 호시노 하사시는
코만 12만개라 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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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무덤에서 20미터 거리에 있는 히데요시 신사.
사진:http://cafe.daum.net/michuholcom/Rgy/10199?q=%C0%CF%BA%BB%B1%CD%B9%AB%B4%FD%C4%DA%B9%AB%B4%FD%BC%BC%B0%E8%B9%AE%C8%AD%C0%AF%BB%EA
코무덤의 안내문:
"이 귀무덤(耳塚)은 .... 도요토미의 가신과 무장이
고래(古來)의 전공(戰功) 정신으로 머리 대신에 조선국민 남녀의
귀와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일본에 가지고 와서 도요토미의 명에 따라
이곳에 묻고 공양을 드렸는데 이것이 귀무덤이다..."
사진출처는 윗사진과 같습니다.
일본식 공양은 봉분에 돌 눌러놓는건가 보네요.
이런 귀무덤 바로 옆에 있는 이총어린이 공원.
사진:http://cafe.daum.net/99otugi/6Dp0/138?q=%C0%CF%BA%BB%B1%CD%B9%AB%B4%FD%C4%DA%B9%AB%B4%FD%BC%BC%B0%E8%B9%AE%C8%AD%C0%AF%BB%EA&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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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또의 귀무덤 안내판에는 "임진.정유재란 7년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왜병들이 전사자들의
귀를 잘라서 모아 매장한 곳"이라고 써놓고 끝부분에 "이것은 전설이다"라고 부기, 역사적 기록이
아님을 분명히했는가하면 그들이 편찬한 "교또의 역사" 책에는 "귀무덤이 아니고 코무덤이다"고
명기했으며 귀무덤 옆의 옛날 비석에는 "원래 코무덤이였는데 후에 잘못 알려져 귀무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새겨져 있다고 소개했다.
-연합뉴스 기사. "일본의 한국인 귀무덤은 코무덤 주장'
1993년도 기사.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30630134800640
사진들은 검색으로 카페에서 가져왔는데 전 손님이라 감사댓글마저 못쓰는군요;;;; 출처 주소나마 붙이는걸로 양해를....
그리고 또다른 코무덤 이야기.
◆ 호벌치에 안치된 코무덤
1993년 11월 26일 정유재란 때 조선의병 3천여 명이 왜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격전지로 알려진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벌치(胡伐峙)에서는 환국안장 추모대회를 갖고 코무덤 봉안식이 거행됐다.
1984년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부산외대 일어과 김문길 교수가 일본 오카야마현 비젠시(備前市)에 또 다른
코무덤 천인비총(千人鼻塚)을 발견하였다.
▲오카야마현에 있던 천인비총
이 무덤은 당시 비젠의 성주로서 임진왜란에 참가한 우키타 히데이(宇喜多秀家)가 베어간 코로 만든 무덤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접한 당시 자비사 박삼중 스님은 '임진왜란 비총 환국안장 추모사업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 비젠시(備前市)와
교섭하였다.
이에 일본은 임진왜란과 한반도 불법 침략 때 가져간 한반도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보급 유물은 돌려줄 생각을
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잔혹한 역사를 간직한 이 코무덤은 기꺼이 한국으로 송환하는데 합의하였다.
이 코 유해는 1992년 11월 24일 현해탄을 건너와 부산 동래 자비사에 잠시 안치시켰다가 호벌치에 영면하게 되었다.
이날 대회는 각계에서 2천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기독교. 천주교. 유교. 불교의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비젠시의 관계자와 코무덤을 만들고 해마다 두 차례씩 제사를 지내왔다는 로고스게(임진왜란 당시 일본병사) 후손 등
일본인 1백 10여 명도 참석하여 과거 선조들의 잘못을 사죄하기도 했다.
출처:http://blog.naver.com/nada5582/10100290083
출처 : Daum루리웹
작성자 : 고양이렌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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