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이 쟁점 되면? - 이슈독털
국정화 의제의 바람이 빠지는 걸까요? 새정치연합이 지난 6일 국회 농성을 접은 데 이어서 어제는 문재인 대표가 민생 4대 개혁방안을 내놓으면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요, 언론도 국정화 뉴스를 후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의제 설정자와 의제 증폭자가 풀무질은 고사하고 오히려 찬물을 끼얹고 있는 판이지만 그래도 바람이 쉬 빠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맥락은 같으면서도 표면은 다른 사안이 급부상하고 있기때문인데요.
서울시교육청이 다음 달부터 이미 비치한 학교와 자율형사립고를 제외한 551개 중·고등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한질씩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이 같은 배포사업은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말 의결한 사안으로 이미 관련 예산 1억 7550만원 배정까지 마친 상태였으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미뤄지다가 한해의 끝에 다다라 집행에 들어가는 것인데요. 그런데 보수세력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조선일보’는 ‘친일인명사전’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를 ‘좌편향 단체’ 또는 ‘반대한민국 단체’로 규정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배포사업을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보수단체는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할 경우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형사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요.
상황이 이렇다면 충돌은 불가피한데요. 어떻게 될까요?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이 충돌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논란과 공방이 당연히 이루어 질것인데요 . 논란과 공방은 크게 두 경로로 이뤄질 것입니다. 하나는 친일문제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정말 객관적이고도 엄정한 기준에 입각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선별해 등재한 것인지를 놓고 논란과 공방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 논란과 공방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조선일보’가 오늘자 신문에서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688명, 광복회가 2002년에 내놓은 친일인사 명단이 692명인 반면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이 올라있다며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를 제기했고, 그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던 언론인 장지연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경우를 꼽았습니다(‘그런데 조선일보 기사를 봤더니 기사 어디에서도 방응모가 등재된 사실은 거론하지 않았더군요).
이렇게 논란과 공방이 전개되면 ‘친일 프레임’이 짜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과서에서 배웠던 사람들의 친일반민족행위가 논란이 되면서 그 자체에 국민의 관심이 쏠릴 뿐만 아니라 역사 교과서 역시 ‘친일 프레임’에 빨려들어가 재평가됩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어디까지, 어느 정도로 기술했는지를 놓고 제2라운드 공방이 벌어질 것이고, 이 공방은 국정교과서 집필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정성 문제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하는 게 정치적 중립성 의무 위반에 해당하느냐는 논란과 공방이 전개될 것입니다. 보수단체가 이를 명분 삼아 피켓을 들면 들수록 논란과 공방은 격화될 것입니다.
논란과 공방의 시발점은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의 의결이 될 텐데요. ‘조선일보’는 서울시의회 재적 의원의 4분의3이 새정치연합 소속인 점을 부각시켰지만 당시 다른 정당, 특히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까지 모두 참여해 만장일치로 의결한 점이 맞부각 될 것입니다. 보수단체는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하면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나 이미 100여개가 넘는 중·고등학교가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점이 반대로 조명될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황교안 총리는 국정화 선언 담화에서 검정체제 실패 판단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교학사 교과서 채택 불발 사례를 들면서 “특정 집단의 인신공격, 협박 등 집요한 외압”을 비난하면서 이를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현장이 반민주적, 반사회적 행위에 무릎을 꿇은” 경우로 규정한 바 있는데요. 황 총리의 이런 주장이 교과서도 아닌 도서관 비치 자료의 배포를 막아서겠다고 나선 보수단체의 정당성을 갉아먹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습니다.
사정이 이와 같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배포사업은 서울시의회의 지난해 말 의결에 따른 사업으로, 국정화 논란과는 별개로 기획·의결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문제와 접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정화 논란을 빨리 끝내는 것을 바라는 보수세력의 ‘싸움걸기’로 ‘친일인명사전’ 배포사업이 국정화 논란과 접합돼 제2라운드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 태생의 문제가 자신들을 악무한의 상태로 끌고가는 것이죠
<< 시사통 김종배 입니다 >>
악무한이 무슨뜻인지 몰라 찾아봤더니 - 악무한(惡無限) 끝없이진행하는운동과정으로, 궁극에끝없이접근하려하지만끝내접근하지못하는진행을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