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괴물의 죽음, 왜 하필 지금
2011.12.19.월요일
편집부국장 필독
김정일이 죽었다.
괴물의 죽음. 떡을 돌리고 싶은 심정이어야 마땅하나, 그럴 수가 없다. 거 참 잘죽었다는 말이 나오다 말고 되들어간다.
김정일은 현대사가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왕자로 태어나 왕으로 죽은 그는 한 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였던 적이 없다. 옥좌를 세습받으면서 자국민을 백성으로 강등시켰고, 김씨 왕조와 체제를 지키기 위해 백성을 핍박했다. 북한을 전근대적인 국가라고 부르는 건 한참 봐준 표현이다. 북한의 현실은 근대와 전근대의 문제를 아예 벗어나 있다. 우리 역사 어디에 그토록 잔혹한 왕조가 있었던가. 나라 전체가 병영이자 감옥이며, 정신병동인 나라가 언제 있었던가. 우리 동포들은 오늘도 거기서 피골이 상접한 채 사육당한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고 김정은의 호칭은 대장이다. 용어 자체가 원시적인 무력통치를 드러내고 있다. 허나 철권통치라는 말도 지나치게 관대하다. 세습이라는 혈통쿠데타에 의한 불법통치라 해야 옳다. 김정일은 한반도의 절반을 사적으로 소유했다. 37년 간 지속된 반민족범죄가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북한 인민들은 해방되지 않았고, 통일이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괴물이 죽었다.
그러나 괴물은 죽지 않았다.
김정일은 괴물을 담는 그릇이었을 뿐이다. 이 괴물은 3대 세습을 준비하는 김정은에게 온전히 담길 수 있을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매우 불안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잘못된 삶을 살아온 만큼이나, 잘못 죽었다.
왜 하필 지금.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참에 쳐들어가자는 바보천치들은 아이큐 검사부터 다시 받도록 하자. 지금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해도 그건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다.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차지했을 뿐, 6.25와 다를 바 없다.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강대국의 도박판 위에 올라간 칩이 될 뿐이다.
아이큐 검사 하기 귀찮으면 6.25 기록사진을 감상하는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포탄에 다리가 잘린 가족을 들쳐업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남자는 외국인노동자로, 여자는 가정부로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가서 외화 벌이하고 싶은 마음 없으리라 본다.
다행히도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을 주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극히 사사로운 가카와 그 수하들은 한 몫 챙기는 데만 관심 있는 사사로운 실용주의자들이다. 과장도 모함도 아니고 그냥 팩트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놓고 모험을 할 만한 이념가들이 못 된다. 그리고 전쟁을 감당할 자신도 능력도 없다. 강경한 척 했다가, 저쪽에서 반격하면 어쩔 줄 몰라 싹싹 비는,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 대북외교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럴때는 조갑제류의 낭만파 극우가 더 위험하다.
그러나 현 정권의 무능과 부패, 철학의 부재는 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가카는 유치하고 비열하게도 국내정치, 더 자세히 말하면 빨간 색안경 전략을 위해 북한을 고의적으로 자극했다. 이를 두고 본지 사회부장 '산하'는 칼럼을 통해 아무리 군사독재를 해도 적어도 남북의 평화와 통일이 중요한 줄은 알았던 전두환이 그리울 정도라고 밝혔다. 가카 집권 이후 남북관계는 병신같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악화됐다.
본 기자는 북한정권은 악이므로, 악과 함께하는 것 역시 악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원래 믿음이란 단순할 수록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고민이 없으면 인생이 행복해진다. 조갑제닷컴 들어가보라.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단 1g의 고민도 없이, 자기가 시뻘건 혹세무민에 빠진 국민들을 선도하고 교화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한 노기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말아톤 김영삼은 그 나이에도 아직 조깅하는 모양이다. 경하드린다. 오래들 사실 거다. 하지만 이 단세포적인 믿음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면 7천만 동포가 오래 못 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북한정권과 교감하는 것은 민족의 미래를 강대국들이 벌이는 위험한 도박판에서 끌어내리는 행위였다. 햇볕정책에 의해 우리는 칩이 아니라 동북아정세의 주도권자 중 하나가 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고려연방제는 먼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북한은 왕조국가다. 지도자 동지가 곧 국가인 나라이기 때문에, 국가적 계약은 곧 김정일 개인의 약속이나 다를 바가 없다. 고 김대중대통령도 고 노무현대통령도 김정일과 화합을 논했다. 평화통일을 향한 교류를 한 사람과 한 것이다. 따라서 10년의 햇볕이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바로 그 사람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의 적 김정일의 건강을 걱정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던 거다.
노무현대통령이 북한을 방문에서 김정일의 건강을 거듭 기원한 것을 두고 자신들이 보수라고 주장하는 기득권세력은 난리를 피웠지만 김정일의 만수무강은 정말로 중요했다. 기분 나빠도 일명 뽀글이로 통하는 그의 파마머리를 좀 더 오래 봤어야 했다.
하필 이 정권일 때, 남북관계가 가장 경색되었을 때 김정일이 죽었다. 이게 우리 민족의 앞날에 얼마나 큰 위험이 닥친 건지, 얼마나 큰 손실인지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제발 좀 깨달아야한다. 민족의 앞날 따위 상관 없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정권이 바뀌고 햇볕정책이 부활해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 성과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헌데 어찌하여 죽는 시기까지 이 불쌍한 민족에 민폐를 끼친단 말이냐.
북한정권은 절대 붕괴하면 안 된다. 민족의 미래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없는 세력이 남한의 정권을 잡고 있는 지금은, 절대 망하면 안 된다. 남한발 햇볕이 사라진 후, 빈사상태의 북한은 산소공급을 위해 중국에 경제주권을 닥치는 대로 팔아넘기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전쟁 이후 북한과 가장 사이가 멀어져 있다. 북한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은 평화유지와 원조를 핑계로 당장 군대를 파견하려 할 것이다. 그걸 중국이 가만 구경할 가능성? 한푼어치도 없다.
당연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북한의 소유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면 이 나라의 운명은 끝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카가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라는 것. 가카가 오바마와 말을 섞으면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한 지금, 한국이 미국의 전쟁비용을 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적국이 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시나리오다.
북한은 전제군주국이지만, 묘하게 봉건시대의 요소가 있다. 영주들이 한 명의 영주를 왕으로 인정하듯이, 북한의 군부 또한 각자의 성향이 따로 있으며 절대자의 권위를 암묵적으로 동의할 뿐이다. 김정일이 됐든 김정은이 됐든 결코 1인자에 조건 없이 절대복종하는 체제가 아니다.
북한 군부는 크게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강경파는 다시 말해 적화통일 전쟁파다. 메카시즘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처럼 북한 왕조도 외부의 적이 멀쩡히 살아있기 바란다. 김정은이 강경파의 충성을 받아낼 수 있을까? 받아내야 한다. 이건 당위의 문제다. 북한은 제발 일 년은 더 버텨야 한다. 다음 정권에 이르러 다시 우리가 평화와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때까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한 3세 김정은의 건투를 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선거로 뽑은 정권을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태에서 이미 겪었듯, 현 정권이 김정일의 사망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안정국으로 이용하려할 것이라는 데 내 이번 달 월급을 건다. 물타기의 핵심엔 당연히 10.26 부정선거가 있다. 김정일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위기마저 사익추구에 이용하려는 모습을 눈뜨고 보게 생겼다. 그 능멸을 감당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화가 난다.
분노해야 한다. BBK 김경준 기획입국 의혹부터 측근비리와 부정선거까지, 현 정권의 추악한 실상을 잊지 않고 떠들고 되씹어야 한다. 그래야만 보안정국 물타기에 휘둘리지 않고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김정일 사망이 야기할 위기는 점점 현실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우리 민족과 역사의 절반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국민주권국가다. 현재에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상실을 조장하고 방관한 죄를 짓고 무슨 낯으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쓰며, 충무공이 지킨 땅에서 살겠는가. 이 시대를 산 죄를 어떻게 갚아야 후손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난 죄스런 국민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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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http://www.ddanzi.com/news/399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