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사 훈련소 이야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을 때만 해도 카투사의 경우 전/후반 교육이 나뉘어져 있었다. 전반 교육의 경우 논산훈련소에서 여타 군인들과 다를 바 없는 훈련을 받으나, 후반 교육의 경우 캠프 잭슨이라 불리는 의정부의 미군 캠프에서 미군처럼 교육을 받았다. 이 캠프 잭슨의 하이라이트라면 단연 디팩(DFAC, dining facility - 군대 구내식당 혹은 취사장)이었다. 이곳을 처음 들린 카투사들은 천조국의 기상 앞에 문화충격을 받고 서울에 첫 상경한 시골놈들마냥 오오 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하긴, 모든 면에서 한국군과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났었다.
일단 취사병부터 취사병이 아니었는데, 이 곳에 일하고 음식을 퍼 주던 사람들은 전부 민간인이었다.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당시 대부분 20대 초중반이었던 우리와 나이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귀여운 외모로 우리의 시선을 모두 사로잡았었다. 동기들은 앞다투어 그 여자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눈은 고정시킨 채 얼굴만 이리저리 돌리는 쓸데없는 짓을 하며 메뉴를 고르는 척 했고 밥을 먹고 나오면서 저 누나는 몇살일까, 저 누나랑 데이트하고 싶다, 그래도 사회에 자주 나올 카투사고 나 정도 외모에 스펙이면 가능하지 않겠냐, 사실 내가 아깝다 등의 얘기하면 할수록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개념도 멀리 가버린 듯한 얘기를 하며 식당에서 나오곤 했다. 듣기로는 실제로 대쉬를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며 번호를 땄다고는 하는데 그 후 어떻게 됬는지는 모르겠다.
누나도 누나였지만, 단연 최고는 잭슨 버거를 위시한 음식의 차이였다. 잭슨 버거는 캠프 잭슨 디팩에서만 나오는 햄버거였는데, 이것이야말로 캠프 잭슨의 상징이요, 미국의 쇼미더머니 파워를 보여주는 음식 중의 음식, 햄버거 중의 햄버거였다. 단언컨데 한국, 미국이나 다른 서양국가를 포함해서 어느 지역에 내놔도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는 물론이요 웬만한 수제버거도 양과 질에서 압도해버리는 그 버거는 한 입 무슨 순간 난 살아있다고 개자식들아를 외치며 두 손을 들 만한 맛이었다. 아쉽게도 PT테스트(미군 체력검정)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잭슨 버거를 먹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버거를 먹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사랑하는 애인을 뺏겨버린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캠프 잭슨 카투사들에게는 특이한 룰이 있었는데, 디팩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기 부대의 명칭과 구호를 외치며 한 명씩 뛰어들어가야 했다. 내가 있었던 시절에는 4소대까지 있었는데, 각각 구호와 명칭이 다 달랐다. 예를 들어 1소대의 명칭은 "Snipers" 구호는 "One shot one kill" 이었는데, 한사람이 스나이퍼를 외치며 뛰어들어가면 바로 뒷사람이 원샷원킬을 외치고, 뒤는 스나이퍼를 또 외치고.. 이런 식이었다. 다만 구호의 수정이 가능했는데, 이 부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소대라면 단연 3소대 스파르탄(Spartan)이었다. 이들은 300의 대사들을 전부 가져와서 아예 영화를 한 편 찍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아예 뛰어들어가기 전 정렬한 상태에서부터 소대장(Platoon leader)이 스뽜르탄즈으! 하면 소대원들이 전부 아우! 아우! 아우! 하면서 땅을 구르고 투나잇 위다이 인 헬이니 어쩌니 연설을 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디팩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가 얼마나 이뻤든지 잭슨버거가 얼마나 맛있든지 지옥에 갈 정도까지는 아닌 게 분명했지만, 내심 저렇게 뭉쳐서 마초이즘의 절정에 다다른 대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병신같았지만 정말 부러웠다. 특히나 더 부러웠던 것은 내가 속한 부대는 4소대였는데, 우리는 이름이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였고, 구호는 지금도 기억이 안 난다. 우리들 사이에서도 나이트 스토커라니, 여자나 쫓아다니는 변태 범죄자가 된 기분이라고 한숨쉬었는데 당연히 패기에서 다른 소대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하필 300형님들의 패기를 이어받은 3소대 바로 뒤에서 시작하니, 우리는 매 번 시작하기도 전에 페르시아 군사들처럼 학살당하는 기분을 느끼며 초라하게 뛰어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우리편 애들은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새로은 구호를 만들기에 이른다. 카투사의 후반 훈련에는 미군 용어를 비롯한 각종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을 위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 수업을 가르치던 선생님 중 하나는 말에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동기들에게 너네들은 용산을 가고 싶냐고 했고, 당연히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낙원 용투사가 되길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자기를 따라하라며 "I go to yongsan!"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다수의 병사들이 최면술에 걸린 것이냥 아이고 투 용산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옆에서 아이고같은 개소리한다고 삐딱대던 몇몇 애들도 뭔가 따라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곧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난 사람의 심리를 절묘하게 이용하는 선생님을 보며 사이비종교 교주나 다단계를 해도 흥할 사람이었다며 진로를 잘못 고른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하여튼, 같은 소대 동기 말로는, 어차피 우리 구호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구호에 차라리 I go to 뒤에 자기가 가고 싶은 지역을 외치며 뛰어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즉시 그 의견을 받아들였고 다음날 디팩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변태나 학살당하던 페르시안 엑스트라 1이 아니라 선택받은 용투사요, 300명의 스파르탄을 결국 무너뜨린 크세르크세스 1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후 여느때처럼 우리는 아이고투 용산을 외치며 입장하고 있었는데, 그걸 지켜보단 미군 하사 한 명이 갑자기 용투사가 될려던 병사를 손으로 가리키며 2ID(2nd Infantry Division - 미군 동투천 전투부대, 카투사가 갈 수 있는 가장 빡센 곳 중 하나)를 외쳤다. 그걸 보더니 평소에 10대 여자아이들처럼 질투심에 사로잡혀 우릴 째려보던 다른 소대원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더니 다들 우리에게 삿대질을 시전했고, 우리는 그리스 연합군마냥 뭉쳐서 외쳐대는 그들의 동두천 러쉬에 GG를 치고 말았다. 웃긴 것은 아이고투 용산을 외치지 않고 다른 지역을 외쳤던 나에게는 동두천 러브콜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말에는 힘이 있다던 그 선생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우리 소대원의 다수는 동두천에 떨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