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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조금 야한 것을 다루는 사이트에 제가 올렸던 글을 오유 수위에 맞도록 편집, 수정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여담이지만 그곳에서 엄청난 토론이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_-;;; 그 토론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지요...
뜬금없이 어제 샤워를 하다가 왜 나체가 부끄러운 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참신함페티쉬'입니다.
사실 수많은 동물들이 알몸으로 싸돌아댕기는데 비해 유독 인간만 옷을 입으며 심지어 나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문화탓이라고 설명합니다. 나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하지요.
하지만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오지 원주민들조차 치부는 가리고 다니며 이를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워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나뭇잎 등을 이용한 원시적인 옷이나마 입고 다니지요.
(물론 아주아주 극소수의 원주민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안입기도 합니다.)
또한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원초적일 정도로 부끄러움이나 분노 등의 감정, 심지어는 공포에 질리는 경향이 있으며 강한 반사적 행동을 보입니다. 비명이라던가 갑작스런 공격성은 단순 교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론 상대방 혹은 자신이 부끄러운 혹은 치욕스런 일을 하게 될지라도 비명을 지르진 않지 않습니까?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교육받은 일이 일어날지라도
보통은 이불을 차지 저런 원초적인 반응이 나오진 않습니다.
아르테미스의 목욕을 훔쳐보는 악타이온
신화 속에서도 나신을 드러내는 것은 치욕이자 동시에 성적 유혹,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여신을 비롯해 타인의 목욕을 엿보는 것은 흔히 묘사되는 일이자 클리셰기도 하죠. (우리나라의 관음증 환자의 주요 예시론 나무꾼을 들 수 있지요.)
가장 유명한 '목욕탕 염탐'으로는 '악타이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신의 알몸을 훔쳐본 만큼 처벌 수준도 신급이라 최후가 매우 비참하다는 점. -_-;;
"어디 여신의 나신을 훔쳐보았다고 남들에게 말해보아라!"라며 아르테미스가 내린 저주를 받곤 사슴이 되어 자기 동료들에게 사냥당해버립니다.
온갖 하렘물, 러브 코미디 작품의 여등장인물들이 이정도의 반만 했어도 주인공을 가장한 변태들은 전부 멸종당했을텐데 말이지요.. 흠흠..
(보통은 100% 물리데미지로 자비로운 편(?)이며 심한 경우는 불태우거나 폭발시키거나 하며 제일은 역시 죽여버리는 것... 곧 부활시켜주지만.)
삐삐루 삐루삐루 삐삐루 삐
나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과연 배우는 것만으로 가능해지는 걸까?
이렇듯 의외로 옷을 입는다는 것, 그리고 벗은 몸은 에로하다는 건 무언가 인류의 본성에 가까운 듯한 모습을 몇몇 보입니다.
일단 옷을 입기 시작하게 되고 그것이 습관이 된 것은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능이 늘어나며 추위를 비롯한 환경에 적응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죠.
그렇게 옷을 입기 시작하며 이것이 습관화되고 문화화되며 옷을 입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오게되는 흐름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도대체 어째서? 그리고 언제?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는가' 입니다.
심지어 남자의 알몸을 보는 것도 매우 부끄럽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죠. 옷을 입고 다니는게 당연해지는 세상에선 옷을 벗게 되는 상황이란 어떠한 상황인가?
웬만해서는 옷을 벗을 일이 없습니다. 특히 실외라면요. 하지만 인간이 옷을 벗는 상황 중 가장 흥미로운 상황이 하나있죠.
바로 성관계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관계에는 정상적으로 서로간 합의하에 하는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어느쪽이던 간에 알몸이 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합의하의 성관계일지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2세대를 만드는 행위이니 마지막까지 신중한 것이 좋은 것은 물론이며
강제적으로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게 되었을 상황에선 반항하고 저항해야 하며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 강제적으로 옷을 벗기려든다면 가장 큰 가능성은 후자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배때지에 장수풍뎅이를 올려 놓을려는 괴짜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심지어는 그저 단순히 옷을 벗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지간하면 그리 좋은 상황은 절때 아니지요.
옷이 없기에 위험에 취약해지는 것은 물론 위험자체를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알몸은 매우 강력한 성적 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 생각엔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알몸은 특히나 강한 성적 신호를 가지게 되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자신의 나신이 목격당하게 되자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마치 하렘물의 여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 버린 겁니다.
따라서 옷이 없는 나신의 상태에 처했을 때의 적절한 행동과 반응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공포와 이로인한 '비명'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주변의 인물들에게 자신의 위험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가 되니까요.
특히 가족이나 씨족/마을 단위로 지내던 때 외지인에게 알몸 상태가 되거나, 혹은 이를 보이게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을게 뻔합니다.
성관계를 맺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나신인 상태는 목욕이나 배변 등의 생리 활동 중일테며 보통은 집 안일텐데
이런 곳으로 외지인이 쳐들어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의도는 아니겠지요.
(특히 그 외지인이 알몸인 상태로 오고 있었다면 말이지요. -_-;;;)
마치 '기절'과 비슷합니다. 왜 쓸모없어 보이는 기절이 진화했는가를 분석해보니 빈번한 전쟁, 약탈 상황에서 기절한 사람은 적에게도 전투원 취급에서 제외됩니다. 따라서 무시당하거나 적어도 포로로 잡힘으로써 목숨 자체는 부지할 수 있게 되지요. '비명'처럼 부끄러움도 일종의 방어기제였던 겁니다.
그 외에 원초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공격성이라던가 격한 반응들을 이런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간범의 선호 대상 1위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여성으로 한마디로 무력한 대상을 선호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한 공격성은 무력함을 지워버리고 위협을 주기까지 합니다.
또한 이러한 반응에서 제일 재밌는 점이 하나 더 있는데요. 그건 바로 대상을 구별한다는 점!
낙제 기사 영웅담의 주인공과 히로인의 첫대면 장면 -_-;;;
보통 알몸을 보였을 때 저런 조건반사적 행동이 나오는 경우는 상대가 전혀 알지못하는 타인일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일단 타인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이루어지고나서 무의식적 반응이 나오는 것이지요. 인식이 느리거나 불가능할 경우에는 그 타인이 부모님이라도 똑같은 반응이 나오지요.)
아는 지인일 경우에는 점점 친근한, 가까운 사이로 갈수록 반응이 저조해지더니 결국 연인을 비롯한 친근한 관계일 경우에는
예 반응자체가 나오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아니.. 오히려 알몸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위의 히로인('스텔라 버밀리온')만해도 저거가지고 주인공을 죽이려 들었다가 (그 희귀한 경우 중 하나인 불태우기를 시전하려 했으나...)
결국 뿅가서는 오히려 노출 면적을 점점 늘려가기 시작! 요망한 핑챙!
(뭐 이건 일본 애니메이션 상업성등을 비롯한 특성때문에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긴 했지만!!)
한마디로 이러한 부끄러움조차 성적 적응에 의한 진화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인간의 반응과 심리적 대응기제 등이 진화로 설명된다면 어째서 부끄러움만은 예외겠습니까?)
알몸인 상태에서도 아무 반응없이 무력하게 대응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른 외지인들에게 노려지기 쉬웠으며
이렇게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배게된 경우에는 본래의 가족들은 물론 남편에게도조차 보호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를 배척하지 못하는 여성의 경우에도 자손을 널리 퍼트리기 힘들었을겁니다.
한마디로 알몸에 대한 부끄러움 또한 우리의 본성이자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기제인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인간다운 일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부끄러움이 우리의 일부이듯 이에 이끌리며 유혹당하는 것도, 유혹하는 것 또한 우리의 것입니다.
아래의 이미지들처럼 말이지요....
...라고 하지만은 그 모든 이미지에 적절한 수준의 모자이크를 할 수도 없으며 오유의 기준을 지키기위해 이미지 시리즈는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알몸에 부끄러워하고 동시에 알몸에 끌린다.
생리적, 신체적 변화외 에도 사고방식이나 이상형, 취향 같은 정신적 요소들 또한 진화적 산물들에 의해 구성되고 발달되어 왔으며
우리의 행동패턴이나 반응 또한 생각보다 학습이나 이성이 아닌 본능에서 나오는 경우도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움 자체는 물론 나체가 되었을 때의 반응이 더욱 민감하고 둔감함에 대해 선택압이 가해질 수 있다면
이 역시 진화에 영향을 받아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발달되었던 하나의 반응이 이제는 모에요소 등으로 쓰이며 문화 활동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문화에서 행동이 아닌 행동에서 문화로!
"앙, 본질의 아름다움 띠!~"
뭐 여기까지가 '왜 알몸이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제 의견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출처 | 나의 어딘가 맛이 가버린 뇌의 어딘가 한쪽 구석에서 샤워의 각성효과로 자극된 갑작스런 시냅스 스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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