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고베신문사에 또 한통의 도전장이 날아들었습니다.
도전장의 내용은 흰색 편지지에 붉은색 펜으로 쓴 것이었으며
그 내용은
전에 내가 밖에서 우연히 TV를 보았는데 아나운서가 내 이름(酒鬼薔薇)을 잘못 읽어서
술(酒, 사케) 귀신(鬼, 오니) 장미(薔薇, 바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엄연히 나의 이름인데 이걸 잘못 부르는 것은 나를 우롱하는 행위이다.
내 이름은 암호도 수수께끼도 아닌 나의 본명이다.
그러나 나는 슬프게도 본명으로 불려본 적이 없다.
슬프게도 나는 국가가 없다. 만약 내가 태어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나로서 온전히 있었다면,
일부러 절단한 머리를 중학교 정문에 방치하는 짓 따윈 하지 않았겠지.
하려고만 마음먹었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살인도 할 수 있었을테지.
내가 일부러 그런 짓을 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투명한 존재로 지속될 내가,
적어도 당신들의 공상속에서라도 실제의 인간으로서 인식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과 동시에, 투명한 존재인 나를 만들어 낸 의무교육과, 의무교육을 탄생시킨 사회에 대한 복수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복수하는 것 뿐이라면 단지 지금까지 등에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뿐이기에,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단 한명 나와 같은 투명한 존재인 벗에게 상담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움직여서 이번의 살인 게임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도 나는 왜 내가 살인을 좋아하는가를 알지 못한다.
가지고 태어난 자연의 천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살인을 하고 싶을 때만큼은 일상의 증오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안함을 얻을 수가 있다.
다른 이의 고통만이 나의 고통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한 명의 인간을 두 번 죽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라는 자기푸념과 설명이 섞인 내용이 대담하게도 신문사로 보낸 편지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입 안에 있던 성명서가 비에 젖어 알아보기 힘들다며 다시 한 통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봉투에는
내 이름은 사카키바라 세이토. 밤하늘을 볼 때 생각하면 좋겠지.
라고 적혀 있었다.
<첫번째 사건>
하세 쥰의 살인사건이 그의 첫 번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밝혀진 첫 번째는 1997년 2월 10일 오후4시경,
고베시의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여아 2명이 망치로 맞는 사건.
뒤에서 접근하여 머리를 노리고 차례차례로 내려친 것.
그 중 한명은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전치 2주의 중상.
피해자 중 한명이 범인은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학생가방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증언.
그래서 그녀의 부친은 아즈마가 당시 다니고 있던 중학교에 연락해
학생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했고,
후에 "학교가 범인을 감싸고 있었다"라고 해당 학교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습니다.
그 때 잡았더라면 후에 벌어질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기에...
아즈마는
망치로 때린 순간, 이성이나 양심을 잃어버렸다,
이 선을 넘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라고 합니다.
<두번째 사건>
1997년 3월 16일 오후 0시 25분 고베시 스마구 류우가다이에서
길거리를 걷고 있던 초등학교 4학년 "야마시타 아야카"의 머리를 해머로 내리칩니다.
피해자는 뇌좌상으로 1주일 후에 사망.
아즈마는 아야카양의 머리를 내려친 후 이동하여 10분 후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의 복부를 나이프로 찔러서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습니다.
아즈마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하여 한번 "사람을 죽여야만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 1단계로서 인간을 죽이기 쉬운 급소를 찾기 위한 실험을 하기로 하였다..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하여 반격할 수 없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였다. 피해자에게는 어떤 원한 및 감정도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번째 사건>
5월 24일 오후, 적당한 사람을 찾던 중 하세 쥰을 발견.
쥰이라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작기 때문에 쉽게 죽일 수 있으리라 판단.
하세 쥰에게 "저쪽으로 가면 푸른 색 거북이가 있다"고 하여 인적이 없는
케이블 안테나 기지국 펜스 밖의 풀숲으로 끌어들여,
손과 구두끈을 사용하여 그 자리에서 교살하고 사체를 숨겼습니다.
5월 25일 아즈마는 전날의 살해 현장을 찾아와
"영혼의 의식"의 일환으로 나이프로 피해자의 얼굴에 길게 상처를 내었고,
그 후 쥰 사체의 목 부분을 쇠톱으로 절단,
이 때 목 아래에 비닐봉지로 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고,
그런 다음 배낭에 절단한 머리를 넣고 연못에 가 머리부분을 한동안 들여다본 뒤
만족하고 연못 뒤 나무뿌리구멍에 비닐봉투를 숨기고 돌아갔습니다.
(절단한 머리를 한동안 들여다 보며 성적 쾌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5월 26일 오후 연못에 가 전날에 숨겨 둔 비닐봉투를 꺼내어 다시 머리를 5분정도 관찰.
그 다음 연못에 범행에 사용한 쇠톱을 버리고 집에 머리를 가지고 돌아가 물로 씻었고,
돌아가는 중 경찰관에게 검문을 받았지만,
이름과 주소를 정확하게 대답하는 등 수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사건에 대하여 보도된 것보다 더욱 더 많이 알고 있는 등(당연하지)
여하튼 대답을 야무지게 잘 해서 경찰도 별 의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5월 27일 오전 1시 다시 배낭에 넣어 자전거로 도모가오카 중학교까지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중학교 정문 담 위에 머리 부분을 두어보았으나
금방 떨어져버려 하는 수 없이 정문 중앙에 두기로 하고 쪽지를 입에 물린 뒤 집으로 돌아옴.
그 후 오전 6시 40분, 출근하던 수위가 머리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6월 4일 고베 신문사 앞으로 범인의 도전장이 도착하였습니다.
1997년 6월 28일 수마 경찰서는 사건의 범인으로 아즈마를 검거.
아즈마는 다음 날 구속되어 28일에 걸친 수사 끝에 7월 25일 고베 지방 재판소에 송치되었고,
10월 17일 고베 가정 재판소에서 소년원 송치를 판결.
그가 B급 고어 호러무비에 빠져있었던 점, 작은 벌레나 동물을 살해하는 것을 즐기고
기괴한 언동을 보인 점과 청소년인 점을 들어 법원은 극형 대신 선도 및 정신치료에 중점을 두어 판결.
10월 20일 간토 의료 소년원에 수감.
그의 가족들은 준의 가족들에게 약 8천만엔을 위자료로 지급.
2001년 치료가 순조롭다고 판단되어 토호구 중등 소년원으로 이감되었으나
2002년 고베 재판소는 그에게 더욱 면밀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수용 연장을 결정.
2004년 가퇴원 되어 사회복귀과정이 시작되었으며 2005년 1월 1일 퇴원 허가를 받아 8여년간의 수감생활을 끝냅니다.
그는 2005년 5월 24일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 가족에게 헌화하겠다고 하나 거절당합니다.
2007년에는 자신에게 살해당한 소녀 아야카의 부모에게 사죄 편지를 보냈으나
피해자 가족은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며 배상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현재 아즈마와 가족들은 이름을 바꾸고 일본 모처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즈마의 사진이 유출되었기 때문에 "성장한 그를 봤다"라는 증언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모양.
이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 음모론이 존재합니다.
먼저 고베 신문사로 보내진 장문의 편지를 과연 14살의 소년인 아즈마가 썼다기엔
큰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는 점.
또한 준의 머리가 처음 발견 되었던 5월 27일 학교 정문 앞에
검은 색 닛산 블루버드가 정차하고 있었다는 트럭 운전 기사의 증언이 있었으며,
검은 색 비닐봉투를 들고 서성이던 20~40대 남성을 목격했다는 노부인과 신문 배달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또한 준의 머리를 놓아둔 상황에서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는데
처음 경찰에 신고한 중학교 수위에 의하면 머리는 학교 정문 중앙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1시간 전 머리를 목격한 노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명이 쓰여진 금속 플레이트 아래에 놓여 있었으며,
6시 30분경에 목격한 신문 배달부는 머리가 플레이트와 반대로 정문으로 향하고 좌측에 놓여 있었다고 증언.
아즈마는 머리를 맨 처음 학교 담 위에 올려 놓았다가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해 교문 앞에 놓았다고 진술.
하지만 담의 높이는 2m로 160cm의 소년인 아즈마가
무게 4kg인 머리를 올려 놓는 다는 건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무런 물증도 범행 증인도 없이
오로지 아즈마의 자백만으로 범행이 인정.
흉기의 종류와 칼날의 길이에 대해 자백과 실제가 달랐으며,
또한 사체에서 나타난 분홍색 시반이 나타났는 데 이는 주로 독살이나,
가스중독, 혹은 사체가 추운 곳에 있었을 때 나타나는 형상입니다.
하지만 준은 질식사이므로 독살, 가스중독으로 분홍색 시반이 나타날 수 없으므로
사체가 추운 곳에 있었다는 소리.
하지만 범행은 5월 달에 일어났으므로 사체를 냉동시켰다는 소리인데
아즈마가 냉동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으므로 자기집 냉동고에 보관했다는 소리가 된다.......는데..?
어? 또한 자백에 따르면 준과 심한 격투 끝에 살해했다고 했으나
준의 사체 어디에도 격투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아즈마는 자신의 집안에서 사체를 절단 했다고 했지만
집안의 루미놀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검결과 범인은 왼손잡이로 추정되나 아즈마는 오른손잡이,
협박장의 필적도 아즈마와는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모두 싸그리 무시.
또한 범인의 도전장에 뒷장이 있다는 음모론.
여담으로 일본내에서 이 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낮은 형량이 선고되자 많은 비판이 크게 일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수로 신일본문학상 수상자인 나가야마 노리오가
이 사건 직후 사형에 처해졌는데 이러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