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이 못자고,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을 한지 어언 2년 다 되어가는 오늘,
내 방에 들어오니,
그윽한 라벤더 향이 방을 채우고 있어 깜짝 놀랐다.
처음엔 이게 무슨 향인가, 놀라다가
화장대 위에 있는 라벤더 디퓨저를 보고
문득...
떠올랐다. 나의 연애가.
4년이 넘는 연애였다. 행복하기만 했다.
연인간의 싸움? 그런건 없었다.
서로가 취향, 취미부터 잘 맞고,
서로의 시간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너무 행복하기만 했다. 이 이상은 없을 정도로.
다른 이들도 당연시 여기는 커플이었다.
아무도 부정하는 이도, 의심할 이도 없었다.
허나 큰 걸림돌이 있었다.
들었을 법한 대기업의 임원을 나오신 아버님과,
몇천만원 전세도 되지 않는 집을 사는 우리집.
그래도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 남자친구와,
아무것도 없던 나.
남자친구의 집에 큰 반대가 있다는 걸 들었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미래를 하고자 노력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의 아줌마가 물 끼얹으며 독설을 품어도 결혼에 성공하는 여주인공처럼,
혹은 우리끼리라도 잘 살아보자고 자수성가하여 시작하는 커플처럼 될 수도 있다고.
긴 연휴를 지난 다음 날,
데이트겸 만나자고 하면서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남자친구의 생일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
남자친구는 많은 걸 가진 사람이었기에,
비싼 옷, 신발, 시계... 이런건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백화점을 가는 길에 눈에 띈게
위에 꽃모양의 플라워 라벤더 디퓨져였다.
"1+1으로 해드려요. 선물용으로도 좋아요."
그 선물이, 생각해보니 지난 남자친구의 선물로 적합할까, 생각해보았지만,
사실 그 당시에 말 못할 느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디퓨져를 샀다.
그리고 그와 식사를 하며 선물이라며, 1+1 중 하나인 디퓨저를 건넸다.
그리고 참, 놀랍게도, 느낌대로,
남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했다.
이유는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부모님의 반대.
더 크게는, 수준이 안맞는 집안 차이.
그는 울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울며 배웅하는 그를 뒤로 지하철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왔다.
눈물이 엄청 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집까지 어떻게 온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이후, 1+1의 나머지 하나인 디퓨져를 방에 꽂았다.
방안에 향기가 퍼졌다.....
이 향기가 끝날 즈음,
나도 그에 대한 기억을 잊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이 향수의 절반이,
2년 정도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나 그도 나를 아직도 못잊는가 하여 놔두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그 절반 남은 라벤더를 보고
먼지를 터는 겸 하여 플라워 심지를 털면서 깊숙히 꽂아놓았다.
그런데,
술 없이 못자고,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을 한지 어언 2년 다 되어가는 오늘,
내 방에 들어오니,
그윽한 라벤더 향이 방을 채우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 라벤더 향이 다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심지를 깊이 안꽂았던 거구나.
아, 그동안, 내가 이미 떠나갈 것을 붙잡고 있었구나.
그 생각에, 갑자기 많은 생각과 시간과 울음이 넘쳐흘렀다.
그와 헤어진 2년간,
꿈도 꾸었다.
라벤더 향이 기적처럼 남아있으니,
그의 쌍둥이 라벤더도 그러할 것이니,
당연히 그와 만날 것이라고.....
그런데 어리석게도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다시 라벤더 플라워 심지를,
다시 뽑아놓고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어리석은 채로 남아있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