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유게에서만 놀다가 공게에 글쓰는 건 처음이네요.
어릴 적 있었던 일이라 자세히 기억이 안나는 부분도 있지만 열심히 써보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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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외가는 경기도 하남시 외곽에 있었어요. 지금의 서울시 강동구 경계와
만나는 곳이었죠. 예전엔 초일리였고 지금은 동으로 승격했네요.
초일리는 이성산이라고 남한산성 도립공원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해발 210m
짜리 야트막한 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낮은 산이긴 하지만 삼국시대에
여러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라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심심치 않게 유골도 나오던
산이였죠. 9차례에 걸친 발굴작업도 진행했던 곳이고요.
아무튼 초일리는 광산 김씨 집성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집 건너면
다 친척인 그런 동네였어요. 그러 동네에서 외할아버지는 이장님이셨드랬죠.
외조부님은 당시엔 흔치 않았던 6척 장신에 바짝 마른 몸, 꼬장꼬장한 비쥬얼의
소유자셨어요. 보기엔 그래도 평판은 아주 좋았다고 외숙모들이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외할머니와의 금슬도 아주 좋으셔서 9남매를..저희 어머니가 셋째라능..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낳고 살았다지만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여하간 그런 9남매가 요즘은 북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오래된 한옥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았었죠. 물론 저도 국민학교 시절을 거기서 보냈고요.
그러다가 제가 국민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즈음 외조부께서
편찮으시기 시작했어요. 간암이셨드랬죠. 잘 아시다시피 간암 같은 경우는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울 만큼 증상이 뚜렸하지 않아요. 그래서 외조부께서
그렇게 아프신 줄 본인도, 주변 가족들도 눈치채지 못했었죠. 하지만 이미
손쓰기 어려울 만큼 진행이 된 상태였고 결국 외조부께서는 병원을 나와
집에서 요양을 시작하셨어요.
집에 식구들은 많지만 병간호라는게 영 쉽지 않다는 건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거에요. 그래서 외할머니는 외조부의 병간호를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셨었어요. 항상 당신께서 대소변을 다 치우셨고 몸을 닦이고 하셨었죠.
물론 두분의 금슬이 그만큼 좋으셨고요.
그러던 어느날 초겨울이었어요. 아마 5학년 쯤 이었을거에요.
저는 앞마당에서 개와 놀고 있었죠. 그러다가 손이 너무 시려워서 외조부가
누워계신 안방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엔 화로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뭐 아무것도 모를때니까요. 여튼 거기 있는 화로에서 손을 녹이고
있었는데 외조부가 옆으로 살짝 돌아누우시더니 저를 지긋이 바라보시는거에요.
뭐 저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잠시 그렇게 저를 바라보시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바로 누우시더군요. 그리고는 아무 기척이 없었었요.
저는 점점 무서워져서 할머니를 부르며 계속 소리쳤죠. 그때 전 분명히 봤어요.
뭔가 외조부님 몸위에서 어른어른 거리는것을요.
그걸 본 순간 저도 모르게 방끝까지 물러나 있었죠. 그러다가 문을 부수듯이
외할머니가 달려오셨고 잠시 외조부님을 살피시곤 그 위로 쓰러지셔서
오열하셨어요. 외할머니의 오열에 집안 식구들이 다 달려오셨고 모두가
그 방안에서 울었어요. 저역시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마냥 무서워서 울었고요.
그렇게 외조부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를 치루고 한 한달 쯤 지났나.
외할머니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셨어요. 3일에 이틀은 일어나시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시며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하셨었죠.
외삼촌과 이모들은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 따라가려나보다며 불안해들 하시고
장례를 또 치루기 생겼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죠.
그렇게 한 2주 쯤 앓으셨을거에요. 그러다 털고 일어나시긴 했었는데 어딘가
좀 이상하셨죠. 식사하시다말고 멍하니 앞마당을 쳐다보고 계신다거나 새벽에
자다말고 일어나셔서는 혼잣말을 몇분이고 하시거나 그러셨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다같이 식사를 하는 중에 갑자기 그러시는 거에요.
"어제 꿈에 느이 아부지가 왔다가셨다. 한참을 말도 없이 보고 계시더니
갑자기 눈물을 쏟으시면서 발이 시려워 죽겠다며 원망을 하시더라."
그리고 다시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시는거에요. 이모들이랑 삼촌들은
완전 멘붕이었죠. 식사가 끝난 뒤에 뒷뜰에 모이셔서는 엄마가 좀 이상한거
아니냐며 병원에 가보자는 둥 충격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는 둥 말들이 많았죠.
결론은 좀 지켜보자 였는데 하루건너 매일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러다가 일이 터졌죠.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어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구들끼리 마루에 화로를 놓고 고구마를 까먹고 있었는데
한참을 마당을 바라보시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뛰쳐나가시는거에요.
다들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당으로 뛰쳐나간 외할머니가
마당을 빙빙 돌며 한참을 두리번거리시더니 갑자기 마루 밑으로 뛰어 들어 가시는
거에요.
저희 외가집 대청마루가 요롷게 생겼었거든요. 한밤중에 갑자기 할머니가
저 마루 밑으로 뛰어들어갔으니 다들 얼마나 놀랬겠어요.
막 랜턴을 찾고 초를 찾고 막내삼촌은 막 따라 들어가고 이모들은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였죠.
결국 막내 삼촌이 기어들어가서 외할머니를 끌고 나왔는데 외할머니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어요. 바로 이거였죠.
그것도 한짝만..
그리고는 외할머니는 쓰러졌어요.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일단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가서 주무르고 청심환을 까오고 그랬죠.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리셔서 삼촌들이 거길 왜 들어갔냐고 막 소리치고 그러니까
외할머니께서는 아무말 없이
"신발 한짝 갖고 오너라" 그러시는 거에요.
그리고는 물끄러미 그 신발을 바라보시다가
"이 신발..느이 아부지 죽기전에 큰아들이 사다준 신발이다. 노상 그것만 신으시다가
어느날 개가 물어갔는지 한짝이 안보인다고 그렇게 역정을 내셨었는데.."
그러시는거에요. 그러더니
"내일 아침 일찍 산소에 가자. 묘를 좀 파야겠다."
난리가 났죠. 묘를 파자니.. 그래서 왜 그러냐고 여쭸더니
묘를 파서 이 신발을 같이 묻어드려야 겠다는거에요.
그래서 이튿날 아침 일찍 이모삼촌들이 간단히 음식을 해서 산소에 갔어요.
묘를 파고 신발을 묻고 제사를 지냈죠.
네. 물론 그 뒤로는 외할머니는 건강을 찾으셨고 아무일도 없이 장수하시다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가끔 제사때면 이모들끼리 그때 이야기를 하고 하는데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것들과 이모들 이야기를 맞춰보면 위에 내용이에요.
이모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가끔 저 이야기를 나눌때면 정말 영혼에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곤 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 신발이
거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았으며 또 외조부가 꿈에 나타나서 그렇게 발이 시렵다고
했던 것이 그 신발 때문일 줄은 또 누가 알았겠어요.
어쨌든 보잘것 없는 필력으로 기억도 잘 안나는 걸 쓰려니 ㅎㄷㄷ하네요.
재밌게 읽으셨다면 추천 좀 구걸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