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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577318
    작성자 : 익명aGZqa
    추천 : 102
    조회수 : 7721
    IP : aGZqa (변조아이피)
    댓글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04 16:19:23
    원글작성시간 : 2012/12/04 13:22:56
    http://todayhumor.com/?humorbest_577318 모바일
    돈걱정 안하고 살고싶다

    나는 철들었을 때부터 항상 돈걱정을 했다


    집에 뭐 사달라고 말하기가 항상 미안했고

    초등학교 때는 친척들 옷을 물려 입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복말고 다른 옷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교복도 맞춰입는 곳에서 산거라 브랜드가 없어서 사실 부끄러웠지만 

    아빠한테는 그런 거 신경안쓰는 착한 딸인척 했다

    몇십만원짜리 패딩을 입고 십몇만원짜리 신발을 신고 5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방을 매고 다니는 애들이 

    한심하다고 아빠한테 말했지만 사실은 부러웠다


    친구들한테 엄마 없는거나 영구임대아파트 사는 건 처음에는 항상 숨겨 말했다

    처지가 비슷한 친구한테만 말하곤 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내 자신이 더 부끄럽지만 왜인지 지금도 숨기게 된다


    아빠랑 1년을 싸우고 미술학원에 다니게 됐다

    학원측과 협의해서 학원비 할인을 받았다

    그래도 한달에 40만원이나 들게 해서 아빠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이 괜찮았던 나는 학원의 기대주가 됐다


    학원에 가면 밥시간이 항상 문제였다

    나는 바쁘게 학원을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우곤 했다


    수능끝나고 하는 특강은 300만원이라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안한다고 했는데 학원에서 꼭 해야 한다고 했다 학원비는 조금 싸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한다고 했는데 일단은 다니랜다

    나는 학교갔다가 학원에 갔다 내멋대로 점심때쯤 가기도 하고 주말엔 대충대충 나가거나 안나가곤 했다

    학원 애들이 아니꼽게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학교별 입시를 진행할때쯤에는 무시하던 애들이 대단하게 쳐다봤다 웃겼다


    학원 측에서 디자인과가 잘나가는 대학을 몇 군데 권했다

    하지만 나는 사립대는 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국공립대로만 3군데를 지원했고 다 합격했다

    그 중에서도 기숙사 문제가 해결된 곳에 입학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나는 엊그제 장보러 간 마트에서 천원짜리 과자를 카트에 담을까 말까 몇번이나 고민했다

    아빠가 맨날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옷좀 사입으라 해서 고른 3만 7천원짜리 옷도 일주일은 환불할까 고민했다

    재료값 많이 드는 과목은 수강취소할까 고민하다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재료값이 생각보다도 더 많이 들어서 후회하고 있다

    손이 추워서 다이소에서 천원짜리 장갑을 사면서도 고민했다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다니는데 사실 몸에 걸친걸 모두 합쳐도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데다 다 오픈마켓에서 산거다

    백화점은 알바하느라 구경만 해봤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는 갈 엄두도 못낸다

    반지하 자취방은 공기가 차지만 보일러는 차마 틀지 못한다

    국가장학금 혜택받으며 학교 다니지만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해결해야 하는데 자취하는데는 뭔 돈이 그리 많이 드는지 

    주중에는 학교다니고 과제하고 주말에는 알바하고 못다한 과제를 하려면 결국 밤새기 일쑤다



    그런데 동기는 아빠카드로 3만원짜리 장갑을 샀다고 하고
    다른 동기는 홍콩에 여행갈거라고 한다
    오늘 수업에서 한 여자애는 부츠가 7만원이면 싸다며 살거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니며 둘러보면 비싼 가방을 맨 여자애들이 많이 보인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누가 용돈 얼마씩들 받냐고 글을 올렸는데
    등록금도 자취방 월세도 부모님이 내주시면서 용돈도 평균 50만원씩은 받는다고 한다
    백화점 키즈카페에서 알바하고 있는데
    부부가 아이 데리고 백화점에 정말 많이들 온다
    토요일에 오고 일요일에 또 오기도 한다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은 다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다
    알바 마치고 집에 가면서 슬쩍 보니 애들 옷이 내옷보다 열배는 비싸고 장난감도 엄청 비싸다


    비교하면 안되는데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 누가 쓰다버린 쥬쥬 인형을 가지고 놀았고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다녀서 놀림감이 되었다

    4평짜리 단칸방이 부끄러워서 친구도 데려올 수 없었다

    그때 아빠는 항상 술을 마셨고 나는 밥을 제대로 먹는 날이 드물었다


    지금도 이쁘게 꾸며 다니고 싶지만

    돌출입에 작은 눈을 가진 얼굴에다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는 이쁠 수가 없다

    라식수술도 교정도 그림의 떡이다

    생활비 쓰기도 바빠 옷이나 화장품은 사지도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동기들하고 같이 어울리지도 않게 됐다

    같이 밥을 먹는 것도 돈이고 술을 마시는 것도 돈이고 엠티도 돈이고

    같이 쇼핑이라도 하러 가면 3만원짜리 티셔츠, 5만원짜리 신발을 척척 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왜 너는 안사냐는 질문에 돈없다고 하기도 부끄럽고 

    브랜드 이야기를 하면 할 말이 없다


    아무도 나를 부끄러워 한 적이 없는데

    내가 내 스스로 못내 부끄러워 수업이 끝나면 도망치듯 집에 오게 됐다



    아빠는 공부잘해 서울가서 이쁘게 학교다니는 자랑스러운 딸로 알고 있는데

    힘들게 온 학교에서 성적도 엉망이고 꾸미지도 않고 친구도 없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이 싫고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게 되는 스스로가 싫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나보다 잘난 사람과만 비교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다

    이런걸 어디 말할수 없어서 익명으로 남기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다

    하지만 당장 돈걱정부터 해야 하는 현실도 싫다




    나는 이 학교에 왜 왔을까

    뭐하러 돈 많이 들게 서울까지 왔을까

    그냥 가까운 아무 대학 아무 과나 다니면서 아무 곳에나 취직이나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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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4 13:24:01  121.161.***.181  초록빛고양이  30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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