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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이따금씩 칼바람이 불어 그녀의 짧게 친 머리칼을 뒤흔들었다. 눈 온 뒤에는 거지가 빨래를 한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추운 날씨였다. 허나 그녀는 여전히 가을 코트에 싸구려 목도리조차도 하나 두르지 않은 차림이었다.
추위에 거칠어지다 못해 벌겋게 얼어 터진 뺨과, 새파랗게 질린 입술. 그녀가 느끼고 있을 추위의 강도는 사람이 견디기 힘든 수준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독했고 찌를 듯이 맹렬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쫓아갔다. 그 끝에는, 음산한 날씨 가운데서도 무거운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는 추모탑이 있었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지만 바람이 그것을 흩어 놓는 탓에 추모탑엔 눈이 거의 쌓여 있지 않았다. 금속으로 돋을새김된 《5·18 민중항쟁 추모탑》 열 자가 음산한 날씨 가운데서도 선명했다. 나는 추모탑을 한 번 바라보고, 또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마주본 얼굴은 작고 창백했지만 누구보다도 결연했다. 묘지로 오는 내내 한 마디 말도 없던 그녀는, 긴 숨을 내쉬며 입김을 풀어놓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빠는 여태껏 시체를 못 찾았어요.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에요. 그래도 우리 엄만 제사를 안 지내요. 아니 못 지내는 거지. 밤에도 대문을 절대 못 잠가요. 언제 오빠가 올지 모른다구 그러는 거야.”
담담한 말투였다. 일견 냉정해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녀가 오빠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고개만 주억거렸다.
“어찌 보면 오빠한테 못할 짓을 하는 건데……. 저승에 가서도 사잣밥 한 번 못 얻어먹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누구에게 말한다기보다는 속절없는 중얼거림에 더 가까웠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추위마저도 잊고 있던 그녀가 비로소 한기를 느낀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허겁지겁 목에 둘렀던 목도리를 풀어 그녀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피부가 훤히 드러난 목에 소름이 돋은 것이 눈에 보일 정도면서도.
“괜찮아요. 그래도 이렇게 학규 오빠라도 같이 와주니까 여길 온 거야. 이거 엄마가 알면 경을 쳐요. 어디 죽지도 않은 사람 죽었다고 한다고, 느 오빠 멀쩡히 살아있을 텐데 가긴 뭘 가냐고.”
“알았으니까 일단 이거라도 좀 둘러.”
자꾸만 뒷걸음치는 그녀를 붙잡고서 기어이 목도리를 둘러주자, 그녀는 끝내 내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까이서 마주친 그녀의 눈엔 설핏 눈물이 고인 듯도 했다. 그것이 추모탑을 오랫동안 지켜본 탓에 눈이 메말라서 그런 건지, 혹은 오빠 생각으로 인해 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 *
그녀의 오빠 이름은 윤도였다. 나와는 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 둘은 모두 전남의 촌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고등학교를 광주로 진학해서 갓 자취를 시작한 처지였다. 공통점이 있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게다가 그 놈은 장흥 유치면 출신이었다. 중학교는 외가가 있는 보성에서 다녔지만 본가는 같은 장흥이었던 나는 그 녀석과 더욱 죽이 맞아 서로의 본가에도 얼굴을 비추는 사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우리는 둘 다 전남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성적이 조금 모자랐다. 결국 같은 재단이었던 조선대학교에 입학했다. 학교가 바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갔다는 실감은 크게 나지 않았다. 그래도 입시에서 해방된 것은 좋았다. 우리는 기계공학과 신입생이 되었고, 거기서 승종이라는 놈을 알았다. 광주 토박이인 승종이 녀석은 이상하게 우리와 성격이 비슷하여, 금세 또 셋이서 잘 붙어다니게 되었다. 나쁠 것 없는 대학 생활이었다.
대학생으로서 맞는 첫 학기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 처음 맞는 토요일이었던 5월 17일, 나는 쌀과 김치를 가지러 집에 내려갔다 이튿날 다시 광주행 버스를 탔다. 전주에 이미 집에 다녀온 윤도 녀석이 다녀오면 승종이와 술이나 먹자고 해서 자취방에 들르자마자 짐만 부려놓고 다시 나갈 작정이었다. 거리 분위기가 그날따라 유난히 소란스러운 것 같았지만 크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나갔을 때, 나는 도시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달았다.
피투성이가 된 누군가를 업고 어딘가로 정신없이 줄달음질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식으로 짐작되는 이름을 부르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얼이 빠진 내가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가 내 팔을 세게 붙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낯모르는 여자였다. 그 여자가 내게 급박하게 말했다. 빨리 어디든 몸을 피하라고, 지금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다 끌고 가고 있다고.
근거 없는 소문과 무차별적인 폭력이 빚어낸 혼란 속에서 윤도와 승종이 녀석을 만난 것은 기적이었다. 거리로 나가라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내가 일단 자취방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내가 걱정된 녀석들이 내 자취방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들은 군인들이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막무가내로 구타하고 있다 했다. 하지만 정확히 왜 그러는지는 녀석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게 광주 민주화 운동, 이라고 뒤늦게야 이름지어진 일의 시작이었다.
재빨리 광주를 나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여기에 있어야 하나. 나는 막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결국 셋이서 시위에 끼어들게 된 것은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냐는 윤도 녀석의 일갈 때문이었다. 계엄군이 두려워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맨 앞에 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무리 속에 있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는 그 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시체를 보았다. 리어카에 실려 있던 두 명의 시체. 그리고 군이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를 했던 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과, 혈액이 없다며 헌혈을 하자고 호소하던 병원 관계자들의 확성기 댄 목소리. 하루 두 번 궐기대회가 열릴 때마다 독재 정권을 타도하자는 외침이 목청이 터져라 울렸다. 집에서 살림하던 아주머니들도 함지박에 주먹밥 등을 담아 시위하는 데까지 이고 온 다음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를 지키자며 총을 꺼내들었던 시민군들의 얼굴, 얼굴, 얼굴. 그렇게 닷새가 흘러 23일이 되었을 때 광주가 완전히 봉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교통이나 통신이 모두 끊기고, 광주로 통하는 도로도 차단되었다. 승종이 놈은 우리보다도 먼저 걱정을 내비치며 우리에게 광주를 탈출하라고 재촉했다. 자신은 광주 토박이라 죽든 살든 어차피 광주에서 끝을 보겠지만, 너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는 비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말을 받아들였다. 혹여나 개죽음이라도 당했다가 부모에게 소식도 닿지 않을까 불안했던 것이다.
그 날 밤이었다. 군인들이 도로 근처에 매복해 있다가 오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모두 쏘아 죽인다는 말을 듣고서 윤도와 나는 위험하더라도 산을 타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의견이 갈렸다. 나는 담양 방면으로 나가 광주를 반 바퀴 돌아서 아래로 내려가자고 했지만, 윤도는 그냥 바로 유치 쪽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윤도의 말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유치는 산세가 워낙 험해 과거에 빨치산들이 활동했던 곳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탈출이 쉽지 않을까 싶었지만, 빨치산들까지 돌아다녔던 곳에 군이 잠복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탈출 직전, 유치 방면으로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도 여럿 보았었다. 그것을 윤도도 모를 리 없건만, 그러나 그 놈은 막무가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제일 씩씩하게 굴었던 놈이라 차마 드러내지 못한 불안감이 탈출을 앞두고 끝내 수면 위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다. 담양으로 빙 돌아가는 것에 비하면 유치는 코앞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간절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결국 나와 윤도는 마지막까지 의견을 합치지 못했다. 자기 식대로 하자고 싸우느니 우리는 그냥 따로 가기로 했고, 광주를 무사히 탈출하고 나면 꼭 연락하자고 약속했다. 유치로 향하는 녀석의 얼굴은 여전히 불안함이 어려 있었지만 묘하게 홀가분해 보였다. 그런 윤도의 어깨를 몇 번 쳐주고서, 나는 담양으로 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것이 내 기억 속 윤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혼란이 진정되고 다시 광주로 돌아갔을 때에야 나는 윤도의 행방이 오리무중이 된 걸 알았다. 승종이도 살아 있었고 나도 무사했는데 오직 윤도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뒤늦게야 그 녀석을 끝내 말리지 못한 나를 탓했다. 그러나 그 땐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 *
518번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 눈발은 더욱 굵어져 있었다. 그녀는 창가에 머리를 댄 채 꿈쩍도 않고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창유리가 버스 안의 훈기로 뿌옇게 될 때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유리를 문질러 다시 투명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시선을 한 곳에만 두고 있는 그녀의 눈가는 내내 오미자 빛이었다.
그 날 윤도를 그 길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놈은 날 원망하고 있을까. 꿈자리에도 찾아오지 않는 그 녀석을 생각하자 나 또한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 여백 상하좌우 20mm씩 해서 엔터 제외하고 텍스트만으로 딱 두페이지 나왔습니다.
* 요즘 26년이 개봉했길래 소재를 이쪽으로 잡아 봤습니다. 아버지가 겪으신 일을 소재 삼아 썼는데.. 라고는 해도 실화는 한 5%쯤?^^;; 그 때 아빠와 같이 탈출했던 친구분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하게 빠져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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