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곡성의 중심 키워드는 의심입니다.
종구와 관객들은 일광, 일본인이라는 악에게 현혹되어 무명이라는 진실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영화는 비극으로 끝납니다.
곡성에서 일본인이 다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악마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동정심을 품은 관객분들이 있을겁니다. 저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악이였죠. 그가 괴로워하며 운 이유는 단지 그가 아직 인간이었고 고통스럽기 때문이었겠죠. 다른 이유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핵심은 우리들이 그 순간 그 모습에 그를 악마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는 것이죠. 마치 티비에서 동정을 호소하며 울거나 휠체어에는 타고 법정으로 가는 정치인, 기업인을 보고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듯이 말이죠.
그외에도 이 영화에는 아직 완벽히 밝혀지지 않은 단서들이 있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입니다. 관객과 종구가 진실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일본인과 일광을 욕하거나 무명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종구는 일광을 믿게 되고 믿음이란 힘을 잃은 무명은, 진실은 사라지고 말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의심이 굉장히 팽배합니다.
윗놈들은 티비, 인터넷 등등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진실을 왜곡합니다. 국민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진실인가를 판단할 수 없고 혼란스럽게 만들죠.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분명 합리적인 근거를 통해 진실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결국 소수입니다. 거대한 세력에 묻혀버리고 말죠. 당장 떠오르는 세월호 사건만 대입해봐도 알 수 있죠.
진실을 의심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피해를 줍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자신있게 진실을 주장하지 못 하고, 그 사이에 윗놈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심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유도하죠.
그래서 국민들은 악에 대항하기 위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조직적인 주장이나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편을 갈라서 의심하고 싸우죠. 그러다가 결국엔 진실이 묻혀버린 채로 끝나버릴 뿐이죠. 그것이 윗놈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곡성은 오컬트적 요소를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상황을 꿰뚫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을 말해보자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심을 위한 장치들입니다. 의심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저 관객과 종구를 헷갈리게 만들 뿐, 그 외에는 별다른 목적이나 의미가 없는 장치들이 너무 많았죠.
오컬트적 요소를 사용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이 작품의 객관적인 설정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관객들이 영화의 내용이나 설정에 대해 다양한 추리를 할 수 있게 만든 듯 하지만 솔직히 어떤 추리를 내놓아도 그것에는 우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라는 단순한 의미밖에 없습니다. 외지인과 일광이 살을 누구에게 날렸는가, 외지인이 박춘배가 사라진 것을 보고 왜 놀랐는가, 일광이 서울로 가다가 왜 다시 곡성으로 방향을 바꿨는가 등등 솔직히 어찌되든 상관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저 우리를 혼란시켜 별 의미없는 토론을 하게 만들고 결국 핵심을 놓치게 만들죠. 감독이 쳐놓은 덫에 결국 감독이 걸리고 말했다고 해야할까요. 솔직히 전부 뜯어놓고보면 구조는 단순할 것이라고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즉,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인상깊은 장면이 거의 없었습니다. 굳이 뽑아보자면 마지만에 외지인와 대화하며 부제의 믿음이 흔들리는 장면일까요. 하지만 이것도 상당히 억지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외지인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는지, 확신을 가지고 찾아갔으면서도 그런 단순한 말에 너무 쉽게 농락당했다든지 말입니다.
또 하나의 아쉬운 부분을 말해보자면 무명이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곤 꽤나 강력한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비중이나 역할이 굉장히 적었죠. 강한 존재라면 더 다양한 일들이 가능했을텐데 너무 하는 게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야 종구에게 진실을 말하지만 너무 늦었죠.
차라리 우리나라의 진실을 말하는 자들처럼 약한 존재로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시종일관 종구와 관객에게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지만 외지인과 부제의 억압에 의해 결국 실패하는 내용이라면 메세지가 더 와닿았을 텐데요.
정리하자면 곡성은 의심이라는 키워드로 우리나라의 현실과 인간의 나약함을 말해주지만 그 의심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관객과 종구를 속이기 위한 장치만 난잡할 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부족한 아쉬운 수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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