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올해 32살의 남자 입니다. 결혼이 예정 되어있던 그 사람은 저보다 3살 어리고요. 작년 중순 무렵에 직장 동료 소개로 처럼 만나 연애 6개월 만에 결혼 결정. 올해 1월에 상견례를 마치고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저희 둘다 따로 오피스텔을 얻어 살고 있었고 각기 키우는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시츄, 전 요키. 연애 시절 서로의 집을 들락날락 하면서 알게 되었고 결혼하면 같이 키우는걸 상상하면서 너무 즐거웠었습니다.
지난달, 결혼 직전에 집을 합치는게 돈도 아끼고 좋지 않겠느냐고 제가 제안을 해서, 그 사람이 살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저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키우던 시츄도 데려왔구요. 그런데 이사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의 예상과 다르게 이 두마리가 서로를 너무 싫어 했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서로 죽일듯이 짖어대더니 틈만 나면 물어뜯고 싸우는 통에 저와 그 사람 둘다 너무 놀라서 일단 따로 케이지에 격리 수용을 했지요. 문제가 좀 심각한 것 같았지만 지내다 보면 서로 차차 좋아질것이다...라고 막연하게 믿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틈날때마다 조심스레 꺼내놓아 보았지만 역시나 서로 너무 심하게 싸우고, 그러다 지난달 말 제가 키우던 요키가 다리를 절룩이길래 봤더니 뒷 오른쪽 다리 무릎 부분에 구멍이 뻥 뚫려있고 피가 새어 나오더라구요. 너무 놀라서 일단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고, 그후부터 집중적으로 둘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둘이 서로 맘에 안들어서 싸우는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자세히 보니 일방적으로 먼저 공격을 하는것은 그 사람이 키우던 시츄 였습니다. 케이지에서 둘을 풀어 놓으면 요키는 살살 다가가서 거실 중간쯤에 누워 버리는데, 시츄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작정 뛰어와서 물어뜯고 난리를 치는겁니다. 저랑 사이좋게 5년을 같이 산 소중한 애기인데, 그걸 보고 있으니 눈이 뒤집힐수 밖에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시츄가 그럴리가 없다며, 요키가 먼저 뭔가 건드려서 그러는게 아니겠느냐고 하더군요. 속상했지만 그 사람의 기분도 이해가 되고, 그래서 나중에 당신이 한번 자세히 관찰을 해보라고, 그러면 알게 될거라고 하고 말았습니다.
ㅆㅂ...이제부터가 좀 열받는 얘기네요.
회사에서 출장이 떨어져서, 9월 2일부터 7일까지 울산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가있는 동안에도 요키가 걱정이 되어서 그 사람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얼른 돌아오기나 하라고 하더군요. 철썩같이 믿고 7일 오전에 서울로 돌아와서 업무 정리하고, 차장님이 피곤한데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셔서 오후 세시쯤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제 눈을 의심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키우는 시츄는 달려와서 저를 보고 막 짖는데, 그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건 거실 구석에서 케이지에 갇혀 있는 제 요키 였습니다. 정말...지금도 그 장면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제가 출장 가있는 5일 동안 계속 거기에 갇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배변판은 온통 오물 투성이고 사료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데 밥그릇은 비어있고, 물그릇에는 사료가 퉁퉁 불어서 둥둥 떠다니고 있고, 요키 털 긴거 아시죠? 털이 뭉쳐서 입 주변이 완전히 걸레처럼 되어 있고, 그 녀석이 저를 보자마자 정말 지금까지 키우면서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케이지 밑바닥을 파고 나오려고 거실 바닥을 긁어대는데...아...정말 눈물이 주룩하고 나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른 꺼내서 안아주니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낑낑 대는데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일단 주변 정리를 좀 하고 요키도 씻기고 밥 주고, 시츄가 계속 옆에서 지랄하길래 케이지에 가둬놓고 저녁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7시쯤 되서 그 사람이 퇴근했고 제가 있는것을 보자 놀라면서 언제 왔냐고 반겨주는데, 그것보다 내 요키가 왜 케이지에 갇혀서 이러고 있었느냐고 언성을 높였죠. 그 사람이 당황해서 한다는 말이, 제가 출장 가있는 동안 자기가 관찰 해보니까 제 말대로 시츄가 먼저 자꾸 요키를 괴롭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싸우지 못하게 하려고 케이지에 가뒀다네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시츄가 괴롭히면 그놈을 가둬야지 왜 요키를 가뒀으며, 대체 씻기지도 않고 밥도 제대로 안주고 물도 더럽게 해놓고, 이게 뭐냐고 하자 그 사람이 같이 언성을 높이며 그러더군요. 자기는 솔직히 두마리 키울 자신도 없고 요키 별로 안좋아 한답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왠만하면 요키는 입양 보내고 시츄만 키우면서 살고 싶다더군요.
같이 사이좋게 키우면서 살자더니, 둘이 서로 사이가 안좋으니까 자기가 키우던 시츄만 예쁘고 제가 키우던 요키는 밉다. 그러니 걔 내보내라.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이 너무 달라보이고 지금까지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닌것 같고, 그래서 저도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난 그렇게 못하겠다. 같이 못키우겠으면 둘다 입양 보내라. 요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얘를 보내라는 거냐. 당신 미쳤냐. 그러니까 갑자기 울기 시작하면서, 이제 곧 결혼 할 사이인데 그정도 부탁도 못들어 주겠냐고, 개가 자기보다 더 중요하냐는 뻔한 드립을 치기 시작하는데...아.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될수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고 하고 욕실로 들어가 세수하고 양치질 하고 나왔는데...헐. 이 사람 짐 싸고 있더군요. 제가 그렇게 자기를 미천하게 보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줄은 몰랐답니다. 여기서 더 못있겠다고 막 울면서 가방들고 나가려고 하기에 팔을 끌어잡고 진정 좀 하라고 했는데, 시츄가 자기 주인 해꼬지 하는줄 알았는지 제 다리를 막 물려고 하면서 짖더군요. 너무 신경질이 나서 저리가! 하고 소리를 엄청 크게 지르고 시츄를 발로 툭 찼는데 (정말 툭 찼습니다. 자세도 어정쩡했고 제가 아무리 화가 났어도 키우는 입장에서 강아지를 세게 찰수는 없습니다) 근데 제가 발로 차는걸 보더니 바로 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눈앞에서 갑자기 불이 번쩍 하더군요. 제 따귀를 때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으니까, 서둘러서 시츄를 안고 그대로 가방들고 나가더군요.
그 이후 그저께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아무리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해도 모조리 씹더니 그저께 갑자기 문자 한통이 오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게 없는것 같은데 당신이 왜 그렇게 날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을 아직 사랑하지만 도저히 같이 키우면서 살 자신은 없으니 내 부탁을 들어주던지 아니면 여기서 우리 인연 그만하자. 답장 기다리겠다...라고요. 그래서 제가 답문을 보냈습니다. 꼭 그렇게 둘중 하나로 결론내지는 말자. 둘이 사이가 안좋으면 훈련소 같은곳을 데려가서 서로 친해질수 있도록 한 다음에 같이 키우면 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조금후에 답장이 왔는데, 이제는 둘을 같이 키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더군요. 자기의 자존심과 존재 가치에 대한 문제이고 시츄랑 요키가 사이가 좋든말든 자기는 절대 같이 데리고 살수는 없으니 선택을 하라는 내용 이었습니다.
...지금 이틀째 아직 답문을 못보내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데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조언을 좀 구하고자 합니다. 소설 같겠지만 모두 사실이에요. 저는 지난 5년 동안 제가 힘들고 외롭고...야근에 지치고 접대 하느라 술 취해서 아침이 다 되어서야 들어 오더라도 한결같이 반겨주고 기다려주고 제게 누구보다 큰 사랑을 주었던 제 요키를 절대로 입양 보낼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아직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 일이 있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저와 잘 맞고 제 마음을 잘 이해해주던 사람이거든요. 어떻게든 설득을 하고 싶은데 기회를 주지도 않고 무조건 단답형으로 둘중 하나 선택하기 전까지는 다시는 얼굴도 안볼것이고 오랜동안 대답 없으면 이대로 인연은 끝이라는데...정말 답답해 죽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어떻게...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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