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serk PS2 OST - Sign
1930년대, 미국은 실로 암울했습니다. 불과 10년 전까지 누렸던 번영은 한낱 일장춘몽에 불과했고, 미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유일무이했던 불행한 시절을 보내게 되죠.
미국은 이 악재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F.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물가 아끼기 운동?’
물론 뉴딜정책이 미국의 정치/경제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났지만, 뉴딜정책으로 인해 대공황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편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미국을 벼랑 끝에서 구해줄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비밀을 파헤치러 같이 떠나보죠!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인류사에 기억되고 있는데요.
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전사자는 2,500만 명)는 약 6천만 명이 넘는데, 그 규모가 현재 우리나라 인구(약 5천만 명)보다도 많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5대륙 6대양 모든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이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이 전쟁이 인류사에 큰 비극으로 남은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굉장히 ‘비인간적인’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전쟁보다 더더욱..)
전쟁을 일으켰던 나치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통해, 약 천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소수 민족들을 처형했고, 미국은 일본 본토에 두 차례나 ‘원자폭탄’을 투하했죠.
개인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지를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었던 ‘역사적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은 대체 ‘왜’ 일어났을까요?
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으로, 역사가들은 다양한 가설을 내놓고 있는데요. 거대자본이 독일을 부추겨 고의로 일으킨 전쟁이라는 음모론적인 시각에서부터 히틀러의 야욕에 의한 전쟁이라는 추측까지.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승전국들과 ‘베르사유 조약’을 맺었는데요. 이 조약은 독일인 입장에선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어요.
연합국이 과도한 배상금을 독일에게 물렸기 때문이죠.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국제 사회에서 거의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음과 동시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독일은 아무런 빛과 희망도 없는 나라로 전락해 버린 것이죠.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공황은 독일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독일은 점점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은 새로운 '구세주'가 나타나주길 간절히 기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이 기다렸던 그 구세주는 불행하게도 '아돌프 히틀러'였죠.
1933년, 나치당 당수였던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로 임명되면서 권력을 얻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가, 가장 암울한 국가의 'No.1'이 된 것이죠.
현직 독일 대통령이 서거한 1934년에 히틀러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게 하는 법을 개정하며 스스로 '총통'에 오릅니다.
각종 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 '하일! 히틀러(Heil Hitler)'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이 말은, 모든 독일인들이 총통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단히 무서운 단어이죠.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독일인들을 '세뇌'시키는 작업이었어요.
그것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죠. 즉, 모든 독일인들이 '악과 울분'으로 똘똘 뭉쳐 초토화된 독일을 재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영화 <다운폴>에서, 히틀러의 오른팔인 괴벨스는 독일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항복'하라는 부하의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난 독일 국민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아. 그들은 스스로 운명을 선택했고, 지금 그 벌을 받고 있을 뿐이야"
즉, 나치는 독일인들이 스스로 자신들(나치)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아무리 위험에 빠졌다 하더라도) 그 책임도 국민들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어찌 되었던 총통이 된 히틀러가 가장 먼저 행동에 옮긴 것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빼앗긴 옛 독일의 영토(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를 합병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집권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조약을 어기고 이 두 나라를 합병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1939년에는 '폴란드'를 침공하죠.
그런데 당시 폴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국이었어요. 즉, 상호 방위조약(동맹국이 공격받으면 참전해야 한다는 조약)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야 했고
그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죠. 후일, 2차 세계대전 시리즈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와 영국의 독일에 대한 대처는 굉장히 무능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시기에서도 히틀러의 비위를 맞추고 달랬죠.
하지만, 이러한 처사는 히틀러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죠. 왜냐하면, 히틀러의 '진짜' 목적은 3개국 합병이 아니라 '유럽 정복'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보았는데요. 미국은 1941년 마지막 무렵에야 이 전쟁에 참전합니다.
왜 미국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었을까요?
각종 교과서에는 미국 정부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고 난 후에, 다른 나라들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나와 있는데요.
사실, 이는 좋게 포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한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수많은 군수 물품을 각국에게 수출하면서 엄청난 떼돈을 벌었습니다. 한 마디로 '겁나게 남는 장사'를 한 것이죠.
그런데 대공황으로 휘청거리고 있을 찰나에 또 '다른 나라들끼리의 전쟁'이 일어난 겁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죠. 아마, 미국 정부는 입이 귀에 걸렸을 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상 유례가 없는 인력을 동원하여 '군수 공장'을 풀가동합니다. 그 당시의 미국의 군수 물품 생산량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데요.
결과적으로, 미국은 단독으로 전 세계 군수 물품 생산량의 41%를 생산해 내는 저력을 보여주죠. 말 그대로 미국이란 국가 자체가 마치 하나의 '군수 공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내에 있던 모든 공장들의 40%를 군수 생산 공장으로 전환합니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전쟁이 벌어진 약 5년의 기간 동안
전투기 324,750대 (미국은 4년 동안 18,431기의 폭격기를 생산했는데, 이는 1시간에 1대 씩 생산하는 꼴)
탱크 88,000여 대. 이는 독일의 타이거 전차가 1대 생산되는 기간에 미국의 M4 셔먼 전차는 37대가 생산되는 꼴이었어요.
군함 7,600척 등을 생산해 냈습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Operation CWAL(생산 스피드 업)'을 누르고 계속 군수 물품만 찍어낸 것으로 비유할 수 있죠.
이러한 경이적인 생산 스피드를 보여준 미국 군수 산업의 원동력은 바로 '노동력'이었습니다. 대공황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미국에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죠.
그런데, 1943년이 되자 미국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바로 군수 공장으로 말이죠. 그래도 노동력이 부족하면, 그때는 '여성'들을 동원했습니다.
바로 '리벳공 로지'라 불리는 미국의 여성들인데요. 이들은 군수 공장에서 24시간 동안 교대로 일을 하며 비행기, 탱크, 무기, 탄약 등을 생산했습니다.
당시 리벳공 로지의 규모는 약 600만 명 정도였는데요. 현재 부산의 인구(350만 명) + 광주의 인구(150만 명)를 모두 합친 수보다 많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군수 공장의 여성 채용을 위해 만들어진 포스터입니다. 가장 위에 "우린 할 수 있어!!"라는 문구가 보이죠. 이들이 후일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겉으로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전쟁으로 떼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