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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55356
    작성자 : 심해로의여행
    추천 : 13
    조회수 : 2708
    IP : 121.184.***.91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3/08/09 15:29:56
    http://todayhumor.com/?panic_55356 모바일
    [펌] 2만원
    2만원
    돈을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곤 한다.
    하지만, 그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믿음을 배신했다는 것은 어떤 가혹한 형벌도 감수해야 할 큰 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돈과 신뢰’중에서...
    아직 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고속 터미널은 역시 많은 오고가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밖에는 비가 도가 지나칠 정도로 퍼붇고 있었다.
    “지영이니? 나 일한인데..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오잖아. 그
    러니 거기서 만나지 말고, 현대 백화점 안에서 보자. 나 여기 터미널인데,
    지하철 타면 한 20분이면 갈꺼야. 그래. 서점에서 책이나 보고 있을테니,
    서점으로 와라. 그럼 서점에서 보자..”
    지영이와의 약속장소를 바꾸고, 전화기에서 나오면서 전화 카드를 지갑에 넣는데,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저... 초면에 정말 죄송합니다만, 부탁이 있는데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한 30대 중반으로 보일까.. 어쨋든 초면이고 키는 작달만했지만,
    한손에 공중 전화카드를 들고 있어 이상하게 보였지만,
    말쑥한 정장에 코트며 참 순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요...
    휴... 제동생이 의정부에서 군복무하고 있는데, 면회 갔다오는 길인데요
    바로 여기서 잠깐 공중전화 하는 동안 지갑을 꺼내놨는데 그 새 없어졌어요...
    그래서 말인데요..제가 부산에서 살거든요.. 부산까지 차비가 15800원이데요..
    처음 뵙는 분께 정말 미안한 얘기인데요, 한 2만원 빌려 주시겠습니까?
    내려가는 데로 당장 갚아 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만.."
    당혹스러웠다.
    사기라면 너무 흔하고 빤히 보이는 수법이고, 그렇다고 믿고 빌려주자니 망설여 졌다.
    더구나 수중에 돈도 별로 없었고, 지영이와 영화보기로 했기 때문에 쉽게 꿔줄 형편이 아니었다.
    “아...그래요... 그런데 저도 학생이라 돈이 별로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만원이라도 좋으니 좀 도와주세요..”
    너무 집요함이 마음에 걸렸지만, 한쪽으로 간절히 애원하는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문득 치기어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한번 도박이라 치고 해봐...?
    이 사람에게 속는 셈치고 돈 빌려주고, 갚으면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
    아직 이 사회는 살만한 곳이라는 것에 나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 갚는다면...

    좀 망설이다가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결단을 내렸다.
    간절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만원정도는 빌려드리죠.. 학생이어서 돈이 많이 없어서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제가 꼭 갚아드리죠. 감사합니다..”
    돈을 꺼내려 지갑을 열었는데, 그 사람은 내 지갑에서 은행카드를 봤는지,
    한번 더 애원조로 부탁했다.
    “죄송합니다만, 가능하다면 아예 2만원 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얘기 또 하기가 좀 그래서요.. 제가 아까 봤는데 바로 저기 현금 인출기가 있던데,
    은행 카드로 어떻게 빼주실 수 없을까요..제가 늦어도 내일까지 꼭 온라인으로 보내 드릴테니까요..
    부탁입니다...”
    불쾌한 기분까지 둘었지만, 오직 급하면 그럴까 하고 이해하고
    이왕 도와주는 것 다 빌려 주자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내가 돈을 빼내는 동안 연신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적어준 내 연락처와 이름을 여러번 읽어 보더니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나도 그 사람의 연락처나 신분에 대해 물어볼까 했지만,
    사기꾼이라면 그런 거짓말이야 쉽게 할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갚을 사람이라면 그런 것 없이도 갚을 테니까...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지도 않은 2만원의 지출이 있었지만,
    이 들어올 때까지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약속 장소인 현대 백화점안의 서점으로 갔다.
    아직 지영이는 안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어떤 책이 새로 나왔나하고 신간코너를 둘러 보았다.
    언뜻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저자 이름이 나와 비슷해서 눈에 띠었는데, 제목은 촌스럽게도 <어느날 갑자기> 였다.
    요즘은 어중이 떠중이가 다 책을 내는구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충 읽어 보니 내용 역시 제목처럼 시시했다. 이런 것도 책이라고...
    그때 지영이가 밝은 미소와 함께 나타났다.
    나는 그 쓰잘데 없는 책을 내려 놓고 지영이를 반겼다.
    서점을 나서면서 지영이에게 오늘 내가 베푼 자선에 대해 얘기했다.
    지영이는 그 작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불평아닌 불평을 해댔다.
    “오빠 그럴 돈 있으면 나나 맛있는 걸 사주지...그거 분명히 사기일거야.
    오빠는 맨날 나보고는 사회는 만만치 않은거라 그러면서 자기는 바보같이 엉뚱한데 돈이나 주고... 치..”
    “야, 임마, 아닐 수도 있잖아.나도 사기라는 생각은 들었어.
    하지만 한번쯤 사람들에게 아직 어느 정도의 양심이 있다는 것을 한번 믿고 싶었지.
    가끔은 이런 도박도 해볼만 하지 않겠니?”
    “그거 참 거창하게 번명하네..오빠, 그럼 나랑 내기해요.
    만약 내일까지 그 돈이 오면 오빠가 기분좋고 포기했던 돈생기는 것이니까
    그걸로 내게 맛있는 것 사주고, 돈이 안오면 내가 불쌍한 오빠한테 맛있는것 사줄께...알았죠?
    내기할거야.”
    “그래!”
    겉으로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솔직이 자신은 없었다.
    그만큼 우리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있는 것 같았다.
    마음 약한 지영이는 내가 돈 빌려줘서 돈이 없을테니까,
    자기가 영화 보여주겠다고 박박 우겼다. 덕분에 영화를 공짜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내일까지 돈이 왔으면 좋을텐데...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달수는 오늘 올린 껀수에 즐거워했다.
    ‘역시 학생 놈들이 가장 만만하단 말야...’
    손에 쥔 2만원을 가지고 얼른 그 학생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재빨리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도 이리저리 칸을 옮긴 다음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다음,
    다른 껀수를 계획했다.
    달수가 이 짓을 한 것도 벌써 1년째다.
    가끔은 한번 사기친 사람을 다시 만나 낭패를 볼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정말 재수가 없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만 당하기 일쑤였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람을 고르는데 눈을 떴다.
    우선 가장 만만한 상대는 대학생이다.
    아직 사람에 대한 낭만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고, 돈도 생각보다 여유있게 가지고 다니기때문에,
    약간 절실한 표정만 지으면 쉽게 돈을 빌려준다.
    달수는 그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는 비웃어 준다.
    ‘병신들,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다니.. 쓴맛을 좀 봐야 알지...’
    하지만 학생이라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여학생들은 오히려 의심이 많고 거의 빌려주지 않는다.
    여자가 역시 좀 약긴 약다.
    하지만 데이트 중인 남자는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여자가 만류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대범함을 보여주고 싶은 남자의 치기를 약간만 자극한다면
    까짓 2만원 정도야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달수의 수법에는 금기 사항이 있다.
    어리숙해 보이는 아주머니와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히 했다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무대뽀로 멱살이나 잡혀 경찰서에 끌려가는 험한 꼴이나
    당하기 쉽상이니까...
    또, 한번 성공한 장소에는 적어도 며칠 안 가는 것이다.
    서울에만 역과 터미널이 여러개 있으니까
    장소를 하루에도 여러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두석이형이 이 수법을 가르쳐 주었을때, 달수는 펄펄 뛰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방법이 통하는냐고..
    “이 멍청한 자식아, 그렇니까 통하는 거지...
    사람들은 뻔히 다 알고 있는데 누가 그런일로 사기를 치겠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까..
    그 빈틈을 노리는거야.. 설마라고 하는... 그리고 사회에 대해 아직 순진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젊은 애들을 노려보라니까...”
    반신반의해서 시작한 이 수법은 달수에게 꽤 짭짭한 수입을 올려 주었다.
    어느 정도 도가 튼 지금은 유흥비 정도는 쉽게 충당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껀수를 잘 못올리고 있었다.
    그럴 때 들어온 2만원은 달수의 기분마저 즐겁게 해 주었다.
    ‘척보니까 알았어. 좀 여유있는 학생같더라니까..돈을 꺼내줄 때 그 표정이란...
    지가 무슨 자선 사업가나 된 줄 착가하나...병신...’
    달수는 오늘 희생자였던 그 멍청해 보이던 학생을 생각하며,
    그 애가 적어준 구좌번호와 연락처를 꾸겨 화장실에 흘려 보냈다.
    다음 사냥터는 상봉 터미널이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디였다.
    공중전화 주변에서 몇몇의 젊은 애들에게 미끼를 던져 보았지만,
    오늘 운수는 그 2만원으로 다했는지, 민망스런 거절만 당했을 뿐이다.
    원래는 밤 10시정도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비도 많이 오고 이미 2만원도 수중에 있고하니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기전 약수동에 들려 조무래기 사기꾼들과 한잔 할 생각을 했다.
    약수동 뒷골목 할미집에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짝눈이, 얼뜩이, 주접이등
    뜨내기 소매치기나 사기꾼들이 모여 앉아 오늘 올린 성과를자랑하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달수가 들어갔을 때, 대학교를 사냥터로 이용하는 짝눈이 한참 자랑을 하고 있었다.
    “오늘 죽여줬다니까...그 학교에는 역시 부잣집 애들이 많이 다닌다니까...
    도서관에서 짱을 보고 있는데, 부티나는 가시나가 와서 자리만 잡고 공부는 않하고,
    사내새끼와 나가잖아. 그건 찬스였어..주위를 약간 살핀다음에 당당히 그 자리로 가서,
    가방에 있는 지갑과 수첩을 꺼냈지. 자 봐. 현찰만 10만원이야..
    재벌집 딸이었나 보지. 더구나 횡재 한것은 이 돌대가리가 자기 현금카드 번호를 수첩에 적어 놓은 것
    아니겠어. 잽싸게 은행으로 가서 모자를 푹 눌렀쓰고, 모조리 다 끄냈지...한 80만원쯤 되던가...
    그리곤 나올 때 감시 카메라에다 대고 엿먹어라 하고 나왔지...
    야! 오늘 술값은 전부 내가 낸다. 아니지, 그 골빈 부자집 가스나가 내는 거지.. 하하하..
    나는 백마싸롱 미스김과 제주도나 갔다 와야 겠다. 한동안 나 볼 수 없을 거야...”
    재수도 좋은 놈...
    달수는 자기 주머니에 있는 꼬깃꼬깃해진 2만원을 만지작 거리면서,
    부러움에 가득찬 눈으로 짝눈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한 짓에 비하면 짝눈이 저지른 것은 완전 도둑질로 느껴졌다. 도둑놈 같으니라고...
    짝눈은 신이 났는지, 돼지 갈비에다 소주로 한턱내고 있었다.
    달수는 배좀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술보다는 고기를 몇점 주워 먹었다.
    맛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 지는 것을 느꼈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오랫만에 맛본 고기때문인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참을 수 없어 얼른 자리를 떠, 밖으로 나왔다.
    밖은 낮에 내렸던 빗물이 괴여있어, 질퍽거리고 불편한 길이었다.
    속도 메쓰꺼워 지고, 어지러워 졌다.
    소주 세잔도 안 마셨는데,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 진 것이다.
    달수는 비틀거리면서, 잠시 기거하고 있는 언덕위 월셋방으로 발을 옮겼다.
    세상이 이그러져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떼 놓기가 힘들었다.
    좁은 골목길에는 늦은 시간이지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전신주에 떨어질듯 달려 있는 백열 전구만 이 어두운 골목길을 아스라히 비쳐주고 있었다.
    달수는 언뜻 그 불빛 너머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 그 사람은 사라졌다.
    술이 단단히 취하긴 취했구나 생각하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문앞에 다 와서,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못참을 것 같았다.
    벽을 잡고 토하기 시작했다.
    헛구역질만 나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에는 뭔가가 꽉 막혀서, 자꾸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식도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뭔가 덩어리가 속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우웨엑 하는 소리와 함께 목구멍과 입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며,
    뭔가 큰 덩어리가 속에서 부터 나왔다.
    흐릿해진 눈으로 고통스럽게 토해낸 토사물을 바라보았을 때,
    술이 화들짝 깨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색깔도 거므스랬고, 그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었다.
    옆으로 스르륵 움직이더니, 사람의 형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 괴물은 눈도 코도 입도 없고, 오직 얼굴에 귀만 달고 있었다.
    사람크기 만하게 되더니 그 괴물은 천천히 달수쪽으로 다가 왔다.
    달수는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잠그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가슴쿵.쿵. 뛰고 있었다.
    바깥 문에서는 그 괴물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 문이 무너질 것 같았다.
    달수는 덜덜 떨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 괴물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달수는 방문을 있는 힘껏 부여 잡고,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가오던 발소리는 방문앞에서 멈추어지고, 곧 문을 차기 시작했다.
    달수는 문에 매달리다시피해서 필사적으로 그것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 노력도 잠시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로 달수는 저쪽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괴물 같은 놈은 그 흉칙한 모습을 드러내며 방 구석에 나동굴어져 있는 달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달수는 떨어져 나간 방문에 깔려 움짝달싹도 못하고 다가오는 그 괴물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 보려고 했으나, 목이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방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났으면, 하숙집 주인이래도 달려나와야 정상인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오직 들리는 것은‘쉬쉭’하는 뱀 기어가는 소리를 내며 자기에게 다가오는 얼굴없는 사람 형체의
    괴물이었다.
    자기 배속에서 나와 살아 움직이는...
    방문에 깔려 있긴 했지만, 그 과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달수는 도저히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놈은 달수 발밑에 버티고 서더니, 그 괴상한 형체의 몸을 구부렸다.
    그러고는 입을 벌리니 흉칙하게 솟아오른 집승의 이빨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 괴물은 그 날카롭고 긴 이빨로 달수의 발묵을 덥석 물어 뜯어었다.
    달수는 발목이 불에 지진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 놈은 달수의 발목을 우그적 우그적 씹으면서, 피를 뚝뚝 흘리며 달수의 얼굴쪽으로 다가왔다.
    마치 뱀처럼...
    달수는 고통과 그리고 그보다 큰 공포를 느꼈다.
    그 기분나쁜 소리와 그 놈의 다가옴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놈 피투성이 이빨사이로 언뜻보이는 자기의 하얀 복숭아 뼈였다...
    “아..악! 살려줘.. 제발!”
    달수는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본 달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히 자기 발목을 베어먹은 그 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창문 사이로는 어느 새 아침이 밝아왔는지,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달수는 자기 발목부터 만져 보았다.
    분명히 아무런 상처 없이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분명히 떨어져나간 방문도 아무렇지도 않게 닫혀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지 분명히 그 괴물이 자기 발을 우그적거리며 씹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아침이고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제기랄! 술 먹고 취해 악몽을 꿨군..’
    어젯밤 분명히 술도 별로 안 먹었는데,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한 것 같았다.
    속도 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아직도 술이 덜깬 것 같았다.
    더구나 그런 악몽을 꿨으니, 기분도 매우 불쾌했다.
    뒤숭숭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달수는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달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험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폭삭 늙어 보이는 것이었다.
    애써 기분 탓으로 돌리고 달수는 세수를 했다.
    그런데 물로 얼굴을 씻으려 몸을 숙이는 순간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불길한 기분으로 비누칠한 상황에서 간신히 눈을 떠 거울을 쳐다보니,
    어제 그 괴물이 그 흉측한 입을 벌리고 자기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달수는 ‘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보였다. 헛것을 본 것같았다.
    달수는 정말 찜찜한 기분까지 들었다.
    괴상한 꿈에 본 괴물을 낯에도 헛것으로 보다니...
    불안해서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밖으로나갔다.
    해장국이나 한 그릇 먹을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할미 집에는 벌써 할머니가 나와 뜨내기 사기꾼들을 위해서 해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어제 술자리에 관해물었더니, 일찍 파했다는 것이었다.
    맛있는 해장국 냄새에 다시 식욕이 돈 달수는 주머니에서 어제 한건 한 2만원을 만지작 거리면서
    식사를 기다렸다.
    이윽고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해장국이 나왔다.
    갑자기 불그스레한 국물 빛이 어제의 악몽에서 잘려나간 발목에서 흐르던 피색깔을 연상시켰다.
    생각이거기까지 미치자 그렇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해장국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토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한입도 못 먹고, 애꿎은 4천원만 해장국 값으로 날렸다.
    다음에 공짜로 주겠다는 주인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달수는 거북한 속으로 할미집을 나섰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어제의 그 악몽이 오늘까지 자꾸 나를 괴롭히는지...
    달수는 자꾸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애써 잊어먹고 오늘의 일터인 서울역으로 향했다.
    달수의 일에 관한 철직중에 하나가 성공한 장소에는 며칠동안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서울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자기 복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철 화장실로 들어갔다.
    복장은 나름대로 깔끔했고, 초췌해진 얼굴은 오히려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보여
    사람들을 속이기 더욱 적당하게 보였다.
    한참 화장실 거울을 보며 자기의 차림새를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항상 그렇게 붐비던 서울역 지하철 화장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상하게도 화장실 안에는 한사람도 눈에 띠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죽음과 같은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그 미칠 것 같은 침묵을 똑똑하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깨고 있었다.
    달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또각거리는 자신의 구두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되었다.
    한편으로는 단지 사람이 우연히 화장실에 안 들어오는 것뿐인 별 것 아닌 일인데 겁을 내는
    자신이 이상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창백한 백열등에 하얀 타일의 화장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빨리 들어와 이 괴이한 고요함을 깨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출입구를 향해 다가갈 때마다 뒷덜미를 무언가가 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보이는 것은 덩그러니 있는 지저분한 화장실 풍경뿐이었다.
    후다닥하고 뛰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 무언가가 눈치를 채서 자기를 잡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출입문 밖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자, 달수는 마음이 놓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한 서너 발짝만 가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서울역 지하도인 것이다.
    안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그르렁거리는 짐승소리같은 것이 들려왔다.
    달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잘못들은 소리려니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쪽을 향했다.
    돌아보면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더 크게 계속해서 들려왔다.
    달수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어제 그 괴물이 그 끔찍하게 생긴 입을 탐욕스럽게 벌리고 달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달수는 정신을 추스릴 없을 정도로 놀랐다.
    설마...라는 생각으로 눈을 깜박이며 그 괴물을 다시 쳐다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꿈같지 않았다.
    그 괴물은 점점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얼굴에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고, 오직 귀하고 입만 보이는 끔찍한 모습...
    달수는 본능적으로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몸을 돌려 몇 발자국 안 남은 바깥을 향하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움직이니까,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간신히 한발자국씩 움직여지는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 출입문이 있는데,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그 놈은 점점 다가왔다.
    몸은 철근이라도 매단 것 같이 무거웠다.
    그래도, 손만 뻗으면 바깥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이 움직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쳤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거의 빠져 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육중한 철문이 눈 앞에서 쾅하고 닫히는 것이었다.
    놀란 달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닫혀진 철문에 부딪혀 보았지만, 꿈적도 안했다.
    손잡이를 돌려 봤자 소용이 없었다.
    미친 듯이 문을 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괴물은 마치 비웃는 듯한 입모양을 하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눈도 없는 얼굴로 떨고 있는 달수를 마치 뱀이 공포에 떨고 있는 쥐를 살피듯이 천천히 핥듯이
    살펴보고 손을 천천히 달수쪽으로 펼쳤다.
    달수는 바르르 떨면서 다음에 느껴질 무시무시한 고통을 상상하면서, 눈을 꼭 감았다.
    괴물의 손은 기분 나쁜 느낌을 주며 달수의 몸을 천천히 더듬었다.
    달수는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괴물은 웬일인지 어제와는 달리 달수를 무자비하게 공격하지는 않았다.
    달수는 눈을 떠서 괴물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괴물은 손을 달수의 주머니에 넣더니,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꺼냈다.
    너무도 이상했다. 내 주머니를 뒤지다니...왜...
    괴물에 손에는 해장국값 내고 남은 만 6천원이 들려 있었다.
    이 괴물은 강도 체질인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만 6천원을 든괴물의 손이 부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괴물이 살기를 띠면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른 한 손으로 달수의 어깨를 무지막지하게 내리쳤다.
    괴물의 손은 쇠로 만든 것처럼 날카롭고, 단단해 순식간에 달수의 어깨를 너덜거리게 만들었다.
    달수는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깨는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찢어졌다.
    괴물은 그 탐욕스런 입을 크게 벌리며 달수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달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괴물의 옆으로 몸을 피했다.
    괴물의 입은 철문에 쾅하고 부딪혔다.
    달수는 반대편 벽쪽으로 뒷걸음질쳤다.
    깨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장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저 무지막지한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았다.
    달수는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저것은 무엇이고, 왜 나를 쫓는지, 만 6천원은 왜 들고 있는지...
    너무 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순간에는 다른 것보다 너무 무서워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순간 이제는 거의 쓰지 않았지만, 주머니에 항상 들어있는 잭크 나이프가 생각났다.
    달수는 너덜거리는 반대쪽 팔로 칼을 꺼내, 천천히 다가오는 괴물을 향해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조그마하게 빛나는 칼은 괴물의 검은 큰 몸체에 비해 너무나 작아 보였다.
    하지만 달수는 그 칼을 최대한 크게 흔들며 필사적으로 괴물을 위협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없어 보였다.
    점점 괴물은 다가오고, 달수는 벽에 몰렸다.
    달수는 어깨에서 철철 넘치는 피는 신경도 안 쓰고 다가오는 괴물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괴물의 옆구리로 칼을 들고 돌진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괴성을 지르고 칼로 그 괴물을 찔렀다.
    칼이 살을 파고드는 기분나쁜 감촉과 함께, 달수는 승리감도 느꼈다.
    괴물을 달수의 의외의 반격에 충격을 받았는지, 움찔거렸고 칼에 찔리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달수는 비틀거리는 괴물을 옆으로 하고, 자신도 비틀거리며 닫혀진 출입문으로 갔다.
    괴물은 그르렁거리며 자리에 쓰러지는 것같았다.
    달수는 이겼다는 승리감과 살았다는 환희와 함께 출입문쪽으로 달려 나갔다.
    출입문도 괴물이 쓰러지자 스르륵 열렸다.
    이제서야 달수는 어께의 통증을 느꼈다.
    지만 개의치 않고 밖으로 향했다.
    문으로 다가서는 데 갑자기 옆구리가 칼에 찔린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옆구리를 움켜지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너무 아파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옆구리를 쳐다보았지만, 아무런 상처도 없는데 점점 고통은 심해졌다.
    옆구리를 찔린 것은 괴물인데, 자기 옆구리가 찔린 것처럼 아파왔다.
    열려진 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볼뿐 달수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옆구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 했다.
    달수에게는 이런 악몽보다 더한 것은 없었다.
    너무 아파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오는데,
    기 신음소리와 같이 뒤쪽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간신히 뒤를 돌아 보았다.
    제기랄!
    거기에는 쓰러져 있던 그 괴물이 아무렇지도 않은 채,
    더욱 흉폭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달수는 아픈 가운데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괴물은 이전과는 달리 재빠르게 움직여 누워 있는 달수 앞에 섰다.
    그 괴물의 옆구리는 칼에 찔린 흔적이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제는 죽었다는 생각이 달수에게 엄습했다.
    그 괴물은 달수의 머리를 날카로운 발톱이 솟아 있는 흉칙한 발로 밟았다.
    그러더니 엄청난 힘이 달수의 머리에게 가해졌다.
    무시무시한 고통과 함께,‘부지직’ 하고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었다.
    희미해지는 의식속에 달수가 마지막으로 본것은 부서진 자기의 머리속에서 흘러나오던 허연 뇌수였다.
    “아 악...악!”
    순간적으로 달수는 비명을 지르고, 눈을 꽉 감았다.
    달수는 갑자기 주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기분에 눈을 떠 보니 이게 웬일인가?
    아무도 없던 화장실에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고,
    자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달수는 처음에는 자기가 죽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자신을 거울에 비쳐보았다.
    너덜거리던 어깨에도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그 괴물은 흔적도 없었다.
    달수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갑자기 화장실에서 혼자 비명을 지른 꼴이 된 것 같아, 얼른 화장실에서 나왔다.
    무슨 일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 옷차림을 살피러 들어간 것까지 확실히 기억나는데,
    그 이후에 일은 그러면 꿈이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말 그대로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문득 그 괴물이 자기의 만 6천원을 가져갔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 을 확인해봤다. 다행히 돈은 주머니에 제대로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돈을 꺼내는데, 약간 촉감이 이상했다.
    “으...윽!”
    돈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지만, 빨간 피가 묻어있는 것이었다.
    지하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얼른 돈을 도로 집어넣었으나,
    심장은 쿵쾅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거야...
    달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얼른 이 무시무시 한 지하도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출구를 찾았다.
    평소에 지하철이나 지하도 지리라면 누구보다도 빠삭하다고 자부하던 달수인데도
    지금만은 웬일인지 출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가면 갈수록 낯선 지하도 였고, 노란색의 ‘나가는 곳’ 이라는 표지판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달수는 불길한 예감에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또다시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눈에 띠지않았다.
    달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공포를 느꼈다.
    무슨 커다란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무리 뛰어 다녀도 나갈 곳이라든가, 인기척은 없고 다시 그 자리였다.
    헉헉거리며 벽에 기대고 있는데, 그렇게 겁내던 느낌이 다시 들었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 보았다.
    그 괴물이 10여미터 뒤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수는 미친둣이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괴물은 ‘철퍼덕 철퍼덕’ 소리를 내며 걸어서 달수를 쫓아왔다.
    달수는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그 ‘철퍼덕’ 하는 소리는 가까워졌다.
    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괴물은 분명히 걷고 있었지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뛰었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달수는 결국 지쳐서 쓰러졌다.
    괴물은 저주스럽게도 금방 엎어져 있는 달수의 앞에 섰다.
    달수는 그 괴물을 향해 원망스런 얼굴로 절규했다.
    “도대체 뭐야! 이 새끼야! 뭘 원하는냔 말야!...”
    그 괴물은 그 밋밋한 얼굴에 아무런 변화없이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달수를 들어올렸다.
    바둥거리고 있는 달수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그 만 6천원을 꺼냈다.
    돈의 액수를 얼핏 확인하던 것 같더니, 곧 화가 난 듯 울부짖더니 달수를 벽에 집어던졌다.
    달수는 등이 부셔지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 괴물의 행동에 호기심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괴물은 신음소리를 내며 웅크리고 있는 달수에게 다가오더니, 다시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옆구리에 그 날카로운 손톱을 쑤셔 박았다.
    달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 괴물은 아예 손까지 달수의 옆구리에 집어넣더니 막 후벼팠다.
    달수의 옆구리에서는 피와 내장이 뭉개져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수는 너무나 큰 아픔과 출혈에 정신을 잃어갔다.
    고개는 점점 떨궈졌는데, 희미해지는 달수의 눈에는 우연히 괴물의 옆구리가 보였다.
    상하게도 괴물의 옆구리에도 상처가 났고, 피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괴물의 손이 옆구리에서 나와 자기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달수는 자기의 눈알이 퍽하고 튕겨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었다.
    다음 순간 달수는 “어..억” 하고 눈을 떳다.
    이번에는 지하도 출구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바쁜 듯이 오가고 있었다.
    달수는 계단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자기에게 계속 발생하는 악몽아닌 악몽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온몸에는 그 고통의 잔재가 남아있는지 몸서리가 쳐졌다.
    식은 땀도 흐르고 있었다.
    한 번만 이런 일이 자기에게 또 일어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는 것이 낳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겁이 나기도 했다.
    언제 어떻게 그 괴물과 만나게 될 것인가도...
    어떻게 해야 하나...
    해답은 바로 만 6천원에 있는 것 같았다.
    시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역시 그 돈은 제자리에 있었다.
    이번에도 이상한 촉감이 느껴졌다.
    뭔가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달수는 꺼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 그래! 이 재수없는 돈을 버리면 되잖아! 어떤 재수없는 놈이 줏어서 그 괴물과 만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편해졌다.
    달수는 주위를 살피고 슬그머니 돈을 버렸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도 계단을 올라가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아저씨, 여기 피묻은 돈 떨어뜨렸어요!”
    어떤 꼬마애가 그 돈을 들고 달수에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냥 가지지... 병신같은 자식...
    “어...어 고맙다...”
    달수는 마지못해 그 돈을 받았다.
    그냥 가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돈에 피도 묻어있고 주위의 눈치도 이상해서 낚아채듯
    그 돈을 가지고 잰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쭈욱 가다가, 쓰레기를 버리듯이 그 돈을 휴지통에 버렸다.
    이번에는 뒤에서 부르는 것도 없어, 마음이놓였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휘파람까지 불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마음 편히 건수나 찾아야 겠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달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 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버렸는데 주머니 속에 그 돈이 있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꺼내보았지만, 역시 그 저주 받은 피묻은 돈이 손에 들려있는 것이었다.
    수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골목길로 뛰어 들어가 라이터를 꺼내 돈에 불을 부치고 태워버렸다.
    피가 묻어 처음에는 잘 안탔지만, 곧 타기시작했다.
    그런데 탈 때 이상하게도 푸르스름한 연기가 났다.
    돈을 태우면 그런 연기가 나는구나라고 달수는 생각하고 다타고 남은 재
    사방에 흩뿌리고 도망치듯이 거기서 나왔다.
    이제는 끝났겠지 생각하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수중에 있는 돈을 다 태워버렸으니, 남은 것은 지하철 패스 밖에 없었다.
    다시 지하철로 내려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빌어먹을 돈은 태워졌으니까, 이제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도로 들어가기 전에 혹시나 하고 주머니에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넣었다.
    믿지도 않는 하나님까지 들먹이면서 천천히 손을 넣어 보았다.
    휴...
    다행히 이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수는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지하도로 내려갔다.
    집이 있는 약수동으로 가기 위해 3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래서 서울역 지하철에서 4호선을 타고 갈아타는 역인 충무로로 향했다.
    달수는 갑자기 피로감을 느꼈다.
    어제의 악몽과 오늘 낮의 악몽으로 너무 피곤했는데, 그걸 못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냥 방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고 잠이나 푹 자고 싶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른 것도 이상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 괴물의 환상에 시달렸을뿐인데...
    퇴근 시간이 다가와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달수는 피곤한 몸으로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버릇처럼 주위를 살폈다.
    혹시 표적이 될만한 어리숙한 사람이 없나하고...
    사냥개 같은 눈으로 달수는 어떤 학생을 지목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깔끔한 차림세에 허연 얼굴이 여유있는 집안 애 같이 보였다.
    다행히 그 학생도 달수와 방향이 같은 지 충무로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타는 곳으로 내려갔다.
    달수는 3호선을 기다리고 있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 이미 수백번 써왔던 표정을 짓고 말을 걸었다.
    “저...”
    그 순간이었다. 항상 버릇대로 말을 시작하면서 돈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주머니
    손을 넣다 빼는 제스춰를 하려는데, 주머니에 끈적한 촉감과 함께 뭔가가 집히는 것이었다.
    소름이 쫙 끼치며 아찔해지며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죠?”
    학생의 반문에 달수는 아무말도 못하고
    “어...어...” 만 되풀이 할뿐이었다.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 학생을 무시하고 달수는 때마침 들어오는 지하철에 무작정 올라탔다.
    이제 달수의 머리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재수 없는 돈을 어제 그 병신에게 돌려줘야 겠다! 그 새끼가 여기다 무슨 저주를 걸어놨을 거야...
    우선 터미널로 가자. 그러면 그 병신같은 학생새끼를 볼 수 있을거야..
    그런데, 2만원을 채워야 하는 것 아닐까? 아까 그 괴물도 2만원을 원하는 것 같았는데...
    신발! 어떻하란 말야!...’
    달수는 흔들리는 전철안에서 미친 듯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생각을 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흥분해서 혼자 지껄이는 달수를 정신병자 취급했는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피하기 시작했다.
    달수는 개의치 않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계속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2만원을 만들어 어제 그 학생에게 돌려주는 수 밖에 없었다.
    터미널에 내리면 우선 어떻해든 2만원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터미널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달수는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혹시 그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고...
    현금 인출기 앞에 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드를 집어넣었다.
    잔액조회를 선택하고 약간은 긴장된 상태로서 있었다.
    지금이 한 4시 반정도 되었으니까,
    어제 그 사람이 정말로 돈 갚을 생각이 있었으면, 지금쯤 송금했을 것으로 여겨졌다.
    결과를 궁금히 기다리고 있는데,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잔액이 숫자로 나왔다.
    역시나...
    잔액은 어제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제 그 사람은 결국 사기꾼이었던 것이었다.
    날아간 2만원도 아까웠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상하게도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정말 삭막하구나...
    그 사람이 얼굴이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다시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믿을 엄두가 생기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갑자기 ‘거 봐.’ 라고 하며 안타까워할 지영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라고 해야하나... 어제 그렇게 자신 있게 큰 소리를 쳤는데...
    지영이가 책 살것이 있다고 해서, 터미널에 있는 한가람 문고에서 만나 저녁이나 같이 먹기로 했다.
    돈이 들어오면 내가 사기로 했고, 안 들어오면 지영이가 사기로 했다.
    졸지에 저녁 얻어 먹겠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터미널 쪽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그 괴물은 아직 눈에 띠지 않았다.
    달수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빨리 터미널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터미널에 도착 하자마자, 달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4천원을 구할 곳을 찾았다.
    소매치기가 가장 적당했으나, 오는 지하철안에서는 중간에 한 번 내려야 하는 부담과
    또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그냥 터미날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역에서 하는 것은 위험부담은 크지만 지금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달수는 망설임없이 허술하게 보이는 아가씨 뒤에 붙었다.
    많은 인파에 밀려 계단에 올라가는 순간, 달수는 옛 솜씨를 발휘해서 핸드백에서 지갑만을 꺼냈다.
    아직 녹슬지 않은 자기 솜씨에 만족해 하며 달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가씨 반대쪽으로 걸었다.
    원래는 화장실에서 지갑을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디서 그 괴물이 나타날지.. 그리고 괜히 급해지기 시작했다.
    지갑안에는 어느정도 현금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달수는 4천원만 꺼내고, 나머지 돈은 지갑과 함께 휴지통에 버렸다.
    이제 하나는 해결한 느낌이었다.
    그 멍청한 학생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 드니, 한편으로는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어제 그 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휴... 하고 한숨을 쉬고 있는데, 뒤쪽에서 이상한 한기와 함께 기분나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마하고 뒤를 돌아 보았다.
    제기랄...
    그 괴물이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가람 문고에는 지영이가 벌써 와 있었다.
    나를 보더니 어떤 책을 보여주며 웃으며 말했다.
    “오빠, 이 책 좀 봐.. 재미있겠는 걸...“
    “야, 아픈데 찌르지마. 오늘 돈만 들어왔으면 이 책 사는데..”
    “어... 그럼 2만원 안 온거야... 거 봐... 내가 뭐랬어?
    오늘도 그럼 내가 사 줘야 겠네... 불쌍하다. 불쌍해...”
    “그럼 우리동네로 가자. 커피는 내가 살게..”
    지영이를 핀잔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하철 쪽으로 향했다.
    지영이를 보니 어제 그 2만원에 대해 이것 저것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내가 순진한건가...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건지...
    여하튼 이번 사건으로 낭만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것 같아...
    그런 거 있잖아... 한 번 속으면 그 다음 부터는 우선 의심부터 하게 되는것...
    나도 그렇게 되는거지... 뭐... 나도 원래 그렇게 착한 놈이 아닌데, 괜히 씁슬해진다...
    하긴 세상이 다 그런거지...”
    “오빠두...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이럴 수도 있잖아...
    그 사람도 원래는 돈을 갚을 생각이었지만, 집에 내려가 보니 막상 돈이 괜히 그 돈이 꽁돈같고,
    아깝게 생각될 수도 있잖아... 오빠나 나나 운이 좋아 2만원이 그리 큰 돈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그 사람에게는 정말 큰돈일지도 모르잖아. 오빠야 2만원이 빌려줘도 될 정도이니까 빌려 줬지만,
    그 사람에게는 하루종일 벌어도 못 벌 큰 돈일수도 있잖아...”
    지영이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괴기한 광경을 본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달수는 그 괴물을 보고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만 6천원을 꺼내, 소매치기한 4천원까지 합쳐 흔들면서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바라는 2만원 여기있다.
    이 돈 빨리 쳐먹고 사라져! 제발! 더 이상 나를 따라 다니지 말고.....”
    그러나, 그 괴물은 이번에는 돈 쪽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달수에게 똑바로 다가왔다.
    달수는 절규하듯 다시 한번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위 사람들은 그 괴물이 안 보이는지, 소리치는 달수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달수는 뒷걸음질치며 소리쳤다.
    “이거 왜 안 받아! 이 새끼야! 제발.....”
    괴물은 천천히 달수를 따라왔다.
    달수는 일단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또 다시 정신 없이 뛸 수 밖에 없었다.
    그 괴물은 여전히 천천히, 하지만 가까이 그를 쫓아왔다.
    철퍼덕 소리를 내면서...
    어느새 달수는 사람들이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데까지 쫓겨왔다.
    줄 서있는 사람들을 정신 없이 밀치면서, 달려갔다.
    그러다가 신문팔이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신문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달수도, 그 신문팔이도 나동그라졌다.
    달수는 벌떡 일어나서 뒤를 쳐다 보았다.
    그 괴물은 아직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도망가려던 달수는 자기의 손에 쥐고 있던 돈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방을 필사적으로 둘러 보았다.
    그렇게도 버리고 싶어하던 돈이 었지만,
    지금에는 웬지 자기를 이 악몽에서 빠져나가게 할 열쇠처럼 느껴졌던 것이었다.
    너무 초조해졌다. 갑자기 돈이 눈에 띄었다.
    돈은 선로에 가지런히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달수에게는 아무것도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저 떨어진 돈을 줏어야 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망설임없이 선로위로 뛰어 내렸다.
    돈을 주우려는 순간 저쪽에서 그 괴물역시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달수에게는 그 괴물만 보였다.
    등뒤로 어마어마한 경적을 울리며 10량짜리 전철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건너편으로 지하철이 곧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던 바로 그 때였다.
    저쪽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살펴 보았다.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거칠게 해치고 어떤 사람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사람처럼... 처음에는 소매치기가 경찰에 쫓기는 광경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을 쫓는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허겁지겁 뛰는 것이 이상했지만, 혼자 바쁜 사람 같았다.
    결국 그 사람은 신문팔이와 보기 좋게 부딛혔다. 순간 그 사람 손에 쥐고 있던 종이 조각들이
    너풀거리며 선로위로 떨어졌다.
    세히 보니 천원짜리 몇장과 만원짜리였다.
    사람은 아프지도 않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뭔가를 필사적으로 찾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자기 돈이 선로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뛰어내렸다.
    사람들은 놀람의 비명을 질렀다.
    지하철은 뺑하는 소리를 내고 그 돈을 줍고 선 그 사람뒤로 덮쳐갔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위험해요!”
    그 사람은 소리친 내쪽을 힐끔 보더니, 그제서야 자기의 상황을 알았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덮쳐오는 전철을 보는 그 사람의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피하려는 순간에 전철이 덮쳤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 충격적인 장면에서 이상하게도 마지막에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눈빛이었다.
    어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위험해요!”
    누군가가 달수를 향해 소리쳤다.
    달수는 순간 괴물에서 시선을 돌려 소리나는 쪽을 보았다.
    바로 그 학생놈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만남이었다.
    런데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전철이 자기를 향해 덮쳐오는 것을 알았다.
    달수는 필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런데 다리가 땅에 붙어있는 것처럼 움직여 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 괴물이 달수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달수는 처절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수천톤의 전철은 달수의 두 다리위를 아무런 저항없이 지나갔다.
    달수는 눈앞에서 자기 두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달수는 다리가 잘려나간 곳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정신을 잃어 갔다.
    흐려져가는 눈으로 저기 괴물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괴물도 다리가 잘려 있었다.
    자기와 똑.같.이.
    큰 충격과 함께 달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은 사실은 다리를 잃었다는 고통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그 검은 괴물의 정체는 바로 달수 자신의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양심의 가책이었던 것이었다...
    자기 몸에서 나와 자기의 거짓에 대한 형벌이 된 것이었다.
    달수는 희미해진 의식속에서도 웅성웅성하면서 자기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돈을 쥔 손을 쳐들면서 말했다.
    “제...발.....이.....도......돈.....을...저... 학.....생.....에......게......”
    그리고 암흑이었다...
    눈깜작할 사이에 그 사람은 전철 밑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지영이는 충격때문인지 내 손을 꽉 잡고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곧 역무원들이 달려 오고, 전철이 뒤로 후진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뒤에
    그 사람의 처참하게 잘려나간 다리가 보였다.
    완전히 뭉개져서 사람의 다리가 아는 살덩이로 보였다.
    봉합은 커녕 청소하기 힘들 정도로 곤죽이 되어있었다.
    또다시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나는 얼른 지영이의 눈을 가렸다.
    구조원들은 출혈이 심한 그를 끌어내고 있었다.
    들것에 실리면서도 그 사람은 손에 돈을 꽉 쥐고, 들고 구조원들에게 뭐라고 신음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하지만 구조원들은 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듯지 못하겠는지 얼른 들고 나갔다.
    역안은 피비린내와 함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 사람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역겹다는 지영이 때문에, 우리는 그냥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해, 스산한 거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영아, 방금 그 사람을 보니, 어제 2만원...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그 사람, 2만원도 안 되보이는 것이 그렇게 소중했는지 목숨을 걸고 뛰어내렸잖아...
    결국 다리와 바꾸긴 했지만...
    그걸 보니, 날아간 어제의 내 2만원도 어제 그 사람에게는 큰 돈이고, 소중한 돈이 될 수 있잖아...
    그러니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자...
    어제 그 2만원은 정말로 필요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하게 쓰였을 것이라고......”
    출처= 유일한
    출처 네이트판 바코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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