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계를 돌려 2009년 4월 중순으로 가 보자. 전직이 된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언론의 의혹 제기가 정점을 향하던 때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중이던 2007년 시애틀에서의 23시간 행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와 유사한 의혹 제기였지만, 국민들 중 '시애틀의 23시간 미스터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언론의 의혹제기 직후 노 전 대통령측은 보도자료 한 장을 냈고, 제반 의혹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
▲ '시애틀 시간공백 미스터리' 보도한 언론 2007년 6월 시애틀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언론에서는 '시간 공백' 의혹을 제기했다. 시간 공백을 23시간으로 보도한 다른 언론과 달리 <중앙일보>는 동포간담회 이후인 16시간 미스터리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2009년 4월 15일 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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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0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노 대통령은 미국 시애틀에 도착해 23시간을 머물렀다. 최종 목적지는 남미 과테말라였다. 23시간 동안 노 대통령의 공식일정은 오후 4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동포 간담회와 다음 날 오전 6시 반경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13분 가량 전화 통화를 한 것이 전부였다.
순방 당시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23시간의 행적'이 2년의 시간이 지난 뒤 부각된 까닭은 검찰발 의혹제기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고, 이를 시애틀에서 아들 노건호씨에게 전달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당시 건호씨는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중앙일보>는 2009년 4월 15일자 '100만 달러 전달했나… 16시간의 공백 '시애틀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후 공식 일정이었던 동포 간담회 이후 다음 날 오전 9시 50분 시애틀을 떠날 때까지 16시간 동안 일정의 미스터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4월 14일 기사 '순방 중 유례없는 '장시간 공백' 생활비 건네려고 아들 만났나'를 통해 의혹을 제기했다.
'23시간 공백' 의혹의 해소 |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취재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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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이 제기되자 노 대통령 측은 입장을 냈다. 당시 순방을 수행했던 천호선 전 홍보수석이 보도자료를 낸 것이다. 제목이 압권, '시애틀의 23시간'이었다. 이 보도자료를 통해서 천 수석은 노 대통령의 시애틀에서의 23시간을 시간대별로 설명했다(관련 기사 :
"'시애틀의 23시간' 노무현 전 대통령, 건호씨 만난 적 없다").
노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2007년 6월 30일 오전 10시 10분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이동을 했고, 공식 수행원 환담 및 오찬이 진행됐다. 이후 오후 4시부터 5시 반까지 시애틀 동포 간담회를 가졌다. 6시 반부터 공식 수행원들과 저녁 만찬을 가진 노 대통령은 다음 날 새벽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기상해서 업무 준비를 한 후 노 대통령은 새벽 6시 15분부터 통화와 관련된 비서진 보고를 받고 6시 30분부터 부시 대통령과 13분간 통화를 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조찬을 하고 오전 9시 30분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숙소를 출발했다.
시애틀에 간 시점은 2007년 6월, 위 보도자료가 나온 시점은 2009년 4월로, 약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노 전 대통령측은 23시간 공백에 대해 해명했다. 이후 검찰 조사 결과에서도 시애틀에서 건호씨에게 100만 달러가 건네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 9월 |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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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 9월 16일, 추석 이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이 깜짝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의 비판이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7시간 공백'과 관련해 며칠전 새정치민주연합의 설훈 의원이 한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연애했을 것'이라는 시중 찌라시 내용을 전한 일본 <산케이신문>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사법 처리를 검토하고,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라고 주장한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통령 모독'이라고 비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7월 7일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당시 '대통령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답함으로써 촉발된 '7시간 미스터리'는 2달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해소는커녕 사법 처리 대상이 되거나 검찰에서는 사이버상의 유언비어를 전담할 기구까지 구성했다.
2004년 11월 23일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 하와이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동포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로부터 '정치권과 언론이 노 대통령을 비판해 안타깝다'고 말하자 노 대통령은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고 공감을 표한 후 "그래서 섭섭하고 힘 빠질 때 있다"고 말했다.
곧이어 노 대통령은 "그런데 괜찮다. 대통령은 말을 들어야 한다. 욕을 많이 먹는 자리다"며 비판을 대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인식을 드러낸 후 "대통령 하는 일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욕먹는 거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하는 일의 절반은 욕먹는 거다'고 말한 노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라고 비판 세력에 대한 격한 반응을 토해냈다.
23시간의 공백, 7시간의 공백…. 일정 공백에 대한 언론의 의혹제기를 대처하는 두 대통령의 태도가 매우 대조적이다. 대조적인 대목은 이뿐 아니다.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국민을 대하는 두 대통령의 태도 역시 매우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