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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이름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몇몇 어그로꾼들 때문에 과게분들께서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젠 슬슬 종교 이야기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실만한 분들을 위해
과학에 대한 종교의 접근 방식에 관한 나름대로(?) 좋은 사례를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로마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에 있는 교황청 산하의 과학 학술원,
이름하여 "교황청 과학원(라:Pontificia Academia Scientiarum / 영: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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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36년
추기경1: 성하, 요새 과학의 발달이 신앙을 위협하는 것 같습니다.
추기경2: 다윈의 진화론도 계속 발달하고 있고, 물리학 같은 다른 분야들도 점점 무신론적인 방향으로....
비오11세: 그래? 그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군.
추기경1: 어찌할까요?
비오11세: 어찌하기는....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더 철저히 연구한다!!!! 교황청 과학원을 설립!!!!
시간이 흘러 1976년
추기경1: 성하, 교황청 산하에 과학 학술원이 있는데 성과가 지지부진한 듯 합니다.
추기경2: 그게 아무래도 전문 과학자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고 특히 무신론자도 많아서....
바오로 6세: 그래? 그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군.
추기경1: 어찌할까요?
바오로6세: 어찌하기는....
그딴게 알게 뭔가? 종교가 뭐든 무신론자든 말든 실력있는 과학자들은 다 끌어들여!!
그래서 탄생했습니다.
"교황청 과학원(라:Pontificia Academia Scientiarum / 영: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
모토는 "기왕 이렇게 된거 우리가 더 철저히 연구한다"....는 농담이고 "과학적 방법으로 신의 섭리를 밝힌다."
교황청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학원이라고 하면
구색맞추기로 적당히 만들어진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쉽고
창조과학 놀음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곳은 아니겠지?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알고보면 생각외로 제법 본격적인 곳입니다.
설립은 1936년이지만,
1603년 페데리코 체시(Federico Cesi)가 설립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초대 회장을 역임한
"린체이 아카데미(Academy of Lynxes)"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교황청 과학원의 초대 회장은 다름아닌 갈릴레이가 되는 셈이죠.
갈릴레이와 교황청 사이의 복잡했던 관계를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사실인데요,
사실 현 교황청 과학원이 갈릴레이의 린체이 아카데미를 전신으로 삼은 것은
과거 갈릴레이 재판에서 교회가 저질렀던 과오를 반성하고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갈릴레이 재판의 재심을 통해 재판이 오심이었음을 인정하고 갈릴레이를 복권시킨 뒤 갈릴레이의 후손들에게 사과했던 교황이
다름아닌 교황청 과학원을 현재의 형태로 완성한 바오로6세 교황이었거든요. (위의 두 번째 대화에서 나왔던 그 분)
사실 명칭은 학술원이지만 연구기관이라기 보다는 교황청의 자문기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세미나나 학회도 개최하고 연구활동도 하긴 하지만
그보단 과학계의 최신 동향을 로마 가톨릭측에 설명하고 자문해주는 것이 주된 활동이죠.
종교가 뭐건, 유신론자건 무신론자건 실력만 있으면 초청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교황 앞에서 신을 부정하건, 창조따위 없다고 주장하건, 성경은 비과학적이라고 하건 근거만 있으면 OK.
가령 무신론자, 그것도 꽤 적극적인 무신론자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도 현재 교황청 과학 학술원 회원입니다.
교황 면전에서도 우주의 생성에 창조따위 필요 없다고 역설해도 상관이 없는 곳이니까요.
그렇다보니 역대 회원들 중에서도 쟁쟁한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몇 사람만 꼽아봐도 어니스트 러더포드, 막스 플랑크,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렉산더 플레밍, 에르빈 슈뢰딩거 등등....
마찬가지로 현재 회원 명단을 봐도 1978년 노벨상 수상자인 베르너 아르버(이분은 개신교 신자입니다)가 회장이며
스티븐 호킹, 폴 버그, 데이비드 볼티모어, 야마나카 신야 같은 쟁쟁한 학자들이 그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약 7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하네요.
자문기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걸 생각하면
사실상 이 사람들은 교황의 과학 과외 선생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인데
그렇다면 교황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강사진에게 과외를 받는 사람인 셈일지도 모르겠네요.
교황청 과학원의 현 회원은 80명입니다.
기본적으로 교황청 과학원의 회원직은 종신직으로,
본인이 사의를 표하거나 큰 스캔들에 휘말려 자격이 박탈당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회원 자격이 유지됩니다.
공석이 생길 경우 과학적으로 저명하며 인격적으로도 명망이 높은 과학자들 중 회원 전체의 투표를 통해 후임자를 추천받은 뒤
교황청 과학원에서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보내며
본인이 이 초청을 수락할 경우 새로운 회원으로 임명된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이 거절할 경우 새로운 사람을 다시 추천받게 되고요.
이 80명의 정회원에 추가로 명예회원 몇 사람(현재는 두 명),
그리고 교황청을 대표하는 성직자 몇 사람(현재는 세 명)이 교황청 과학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전/현 회원들의 명단과 간략한 정보를 교황청 과학원 홈페이지 http://www.casinapioiv.va/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 과학원의 회원은 의외로(?) 과학계에서도 꽤 명예로운 자리로 받아들여지는 편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가톨릭 신자인 과학자에게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의 영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과학자, 심지어 무신론자인 과학자들도 대체로 명예직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뭐 정확히 받아들이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료를 찾아본 결과 대충 이 정도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1. 교황청 과학원은 갈릴레이의 린체이 아카데미를 전신으로 삼고 있다보니,
교황청 과학원의 회원은 갈릴레이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 있는 듯합니다.
과학계에서 갈릴레이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갈릴레이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충분히 매력적이겠죠.
2. 과학계와는 동떨어진, 때로는 대립하기까지 하는 종교계에서,
그것도 세계 최대의 종교 중 하나인 가톨릭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곳이다보니
"상대 진영(혹은 적국)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듯한 느낌이 있는 모양입니다.
장수에게 있어서 "적장으로부터도 인정 받았다"라는 것이 큰 명예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3. 현대 사회에서 로마 교황청과 교황이 가지는 입지와 그 영향력을 생각할 때,
교황의 자문위원으로서 교황청이 발표하는 여러 메시지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듯합니다.
특히 과학자 중에서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라면
교황청 과학원을 통해 교황청에 본인의 의사을 개진하는 것은 좋은 의견 표출구가 될 수 있겠죠.
4. 아무래도 자문기구로서의 성격이 강한 때문인지
그리 많은 활동을 요구하지도 않고 요구사항도 적은 모양입니다.
일종의 꿀보직(?)인지도 모르겠네요.
로마 가톨릭이 진화론과 빅뱅을 인정하고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등
어찌보면 파격적이기까지 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제대로 된 연구기관 겸 자문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덕이 아닐까 합니다.
(하긴 저런 초호화 멤버에게 과학 과외를 받으면 과학을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겠죠.)
교황청 과학원이 로마 가톨릭과 교황청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에도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2014년 5월, 교황청 과학원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현 교황청 과학원 회원이자 기후학자인 V. 라마나단 역시 이 회의에 참석하였죠.
하지만 그는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그치지 않고, 교황에게 직접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세상에 더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교황은 이 문제에 관해 세상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일정으로 바쁜 교황에게 미리 알현 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길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교황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에게, 담당 추기경은 최대한 짧게 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래서 그는 교황에게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짧게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We are concerned about climate change. The poorest 3 billion people are going to suffer the worst consequences.”
(우리는 기후 변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30억명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최악의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교황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교황은 이후 환경 문제와 이로 인한 빈곤에 대해 연구하기를 주문했고,
그 결과 2015년 6월 18일, 교황은 환경 문제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 문제를 다룬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합니다.
이 회칙은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 발표한 많은 회칙들 가운데에서도 환경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최초의 회칙이며,
환경문제를 세계적 불평등의 문제 및 이로 인한 빈곤의 문제와 연관짓고 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는 회칙입니다.
교황청 과학원의 한 기후학자가 교황에게 전달한 짧은 메시지가
전 세계 가톨릭 신자, 더 나아가 전 세계 모든 인간에게 전하는 교황의 메시지로 승화된 셈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세력이 서로에게 다가갈 때 가장 중요한 기본은
바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입장에서 과학에 접근하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니는 문제점이
바로 이 "기본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죠.
공격하려는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상태로, 자기 멋대로 상대를 제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곳 오유 과게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격적인 과학원을 설립하고,
무신론자들까지도 수용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교황청 과학원의 모습은
적어도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한다"라는 측면에서 참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관계라는 의견도 있고,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대척 관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서로 영역이 다르기에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쌩판 별개라는 의견도 있고요.
무엇이 정답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황청 과학원의 통해 과학을 알고자 노력하는 로마 가톨릭과 교황청의 모습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있다면
과학과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
더 나아가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협력까지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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