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헐크' 로 해봤는데 나오지 않아서 올립니다.
답변 출처는 필름2.0 김세윤 기자의 궁금증 클리닉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손쉬운 답변은 ‘초울트라 스판 바지’라고 우기는 거다. 실제로 스판의 신축성은 열라 뛰어나다 못해 졸라 뛰어나다. 스판덱스(spandex)라는 좀더 근사한 본명을 갖고 있는 이 녀석에 대해 섬유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원래 길이의 7배까지 늘어났다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섬유 중에서 신축성이 가장 좋다”. ‘7배’에 밑줄 쫙, 진달래 꽁야! 영화에서 최고 5m까지 불어나는 헐크의 바디 라인을 감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섬유도 없다(정확히 말하면 이 섬유밖에 없다). 나아가 “무한한 활동의 자유를 주는 섬유”이면서 “내구성이 강해 오래 입을 수 있는 섬유”이기도 하다니. 강산이 서너 번 바뀔 동안 한번도 갈아입지 않은 반바지의 내구성과 서너 번 만에 강산을 훌쩍 뛰어넘는 무한한 활동성은 스판이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몸뻬 바지의 신축성, 내구성, 활동성이라면 능히 스판의 꿈을 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몸뻬를 입은 헐크를 상상하는 건 스판을 입은 앙드레 김을 상상하는 것만큼 고역이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친다.
헐크처럼 만화 출신 딴 영웅들이 주로 스판을 입는다는 사실이‘헐크바지스판바지’說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일례로 스파이더맨과 원더우먼이 스판 쫄쫄이로 제 카리스마를 코디한 바 있다. 헐크하고 이름까지 비슷한 헐크 호건도 스판 바지를 입고 링에 올랐다(얜 아닌가?). 물론 배트맨과 데어데블처럼 ‘레자’가죽을 선호하는 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슈퍼 히어로계의 거목, 슈퍼맨 어르신의 단아한 자태를 떠올려보면 “역시 스판!”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가슴팍에 아로새긴 S자가 'Spandex'의 약자라는 일각의 주장을 이 순간 정설로 받아들이고픈 심정이다. 이처럼 영웅들이 스판을 즐겨찾는 덴 아까 말한 이유 외에 일반인은 좀처럼 소화하기 힘든, 그래서 자신의 비범함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기 좋은 패션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듯하다. 나아가 스판 유니폼을 입은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의 비에리가 최진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잡아당기는 가운데에도 헤딩골을 성공시킨 장면을 상기해 볼 때, 설사 적들에게 덜미를 잡혔을 때조차 마지막까지 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는 책임감의 소산으로 봐줘도 무방하겠다.
여기에 스판이 이 땅에 출현한 시기적 우연성마저 한몫 거든다. 스판은 1959년 미국 듀퐁사가 처음 발명한 라이크라가 그 원조다. 이어 60년대 초가 되면 다른 회사들도 죄 스판덱스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마블 코믹스가 헐크라는 캐릭터를 창조한 게 1962년. 신소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혹 미 섬유 업계가 만화가를 상대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결과는 아닐는지 한번 의심해 보는 것도 좋은 자세다. 그러나 이 따위 억측들에 만족하고 여기서 물러선다면 그건 못된 자세다. 진실은 늘 저 너머에 있고, 사래 긴 밭은 재 너머에 있는 법 아니던가.
사실 영화 <헐크>가 반바지를 고집한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이안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헐크의 바지를 벗기고 싶었다”는, 성정체성을 의심 받을 만한 문제적 발언을 한 바 있다. 심지어 “실제로 벗겼다!”고까지 주장해 뭇 남성 괴물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 역시 댁처럼 ' 헐크 바지는 안 찢어지는가'하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았고 기필코 자기 대에서 이 비상식적 작태를 바로잡겠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함께 보는 등급을 받아야 감독도 살고 영화사도 산다는 현실의 절박함으로 인해 끝내 헐크의 올누드는 실현되지 못했다(그 옛날 TV 시리즈도 같은 이유로 참았을 것이다). 그래도 딱 한 장면, 이안은 욕심을 냈다. 숲속에서 큰 개와 싸우는 장면. 그는 마침내 헐크의 바지를 홀라당 벗겼다. 어두컴컴하겠다, 나뭇가지 많겠다, 잘만하면 ‘거시기’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 저 안의 것을 드러내 보이려던 이안의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거 가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아까 그 인터뷰에서 "그 놈을 가리려다 보니 마치 내가 <오스틴 파워>의 오프닝 신을 만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결국 감독은 헐크의 엉덩이 보여줘, 까서 보여주는 선에서 이 신을 마무리했다.
까짓 거 성기가 보이면 어때? 작가적 욕심이 있다면 성인 등급 각오하고 한번 밀어붙여 보시지? 할 수도 있다. 하나 여기엔 단순히 등급 문제만 걸려 있는 게 아니다. 헐크 바지 찢어졌다간 영화 장르가 달라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실존적 고뇌에 몸부림치는 다 큰 주인공이 고추를 덜렁거리고 뛰어댕기는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대관절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그러다 행여 발기라도 하는 날엔…! 아닌 게 아니라 헐크 아빠로 출연한 닉 놀티는 다른 인터뷰에서 "내가 한번 봤는데 그건 정말… 무기로 쓸 만했다”고 털어놓지 않더냐. 그러니 무작정 드러내는 게 능사가 아님을, 때론 감춤의 미학이란 것도 있음을, 헐크의 새미 누드는, 그 쫄쫄이 스판 바지는... 오늘도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목숨은 한개! 그래서 비싸지!! 유니크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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