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할머니 고향으로 귀농을 하신지
2년째 되던 날 노란 얼룩고양이가 할머니 집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에누야"라고
부르면 "냥~"하고 대답하고 할아버지 무릎에 올라가 재롱을
부리는 강쥐냥이었습니다.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낮선 사람인
저나 다른 가족들에게 분홍색 배를 보여주고 재롱을
부리곤했습니다. 에누는 할아버지댁 마당의 개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진돗개가 있었는데 개장수가 훔쳐간 듯 합니다)
창고쪽에 가끔 출몰하는 쥐를 잡아 물어오기도 하고 조그만 날짐승을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닭장을 탈출한 병아리를 잡아
먹는 바람에 할아버지한테 크게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에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댁에서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길짐승을 좁은 실내에 들일 수 없다며 에누를 마당에
풀어놓다시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누는 혼자서는
절대로 할아버지 댁(마당+텃밭) 외의 공간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마실을 나가거나 산책을 할때 빼고.(이건 뭐 거의 강아지 수준)
그렇게 에누는 근 7년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에누가 사라졌습니다. 텃밭에도 없고 화단에도 없고
옆집으로 넘어갔나 싶어서 옆집에 가도 없었습니다. 에누는 마을 입구
차도 옆에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에누를 발견했을 때 이미 에누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였습니다. 차에 치여 죽었는지 죽은 뒤 차에 치였는지
에누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에누가 처음 할아버지댁에 올 때 이미 10살 이상의 할배냥이었습니다.
콩팥이 안좋아서 1년에 수차례 몸에 부기가 올랐다가 가라앉곤 했습니다.
그런 몸으로 에누는 7년을 더 살았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도
"같이 늙는 처지인데" 하면서 에누를 보살펴주셨습니다. 에누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로 할머니께서 아무래도 덜 움직이시게 되고 좀 쳐져계시고 그러십니다.
할머니께선 에누가 없어도 에누의 밥그릇에 물에 만 밥과 불린 멸치나 북어를
항상 채워 놓으십니다. 길고양이 에누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온 것 처럼
또 다른 운명적인 묘연을 기다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좋은 묘연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에누가 없는 마당은 제가 느끼기에도 좀 허전하네요.
에누야, 거기서는 좀 편안하니? 마당에 늘 네가 있다가 없으니까 좀 그렇다.
널 만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주인도 못알아보는 한심한 동물이라고 싫어했는데
너 만나고 나서는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졌는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넌 벌써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구나. 할아버지는 그깟 길짐승 한마리로 뭘 그리
슬퍼하냐고 그러면서도 다른 고양이들 보면서 "에누는 안 그랬는데" 이렇게 이야기하셔.
겉으로는 표현 안하셔도 네가 많이 보고 싶으신가봐. 에누야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개묘적으로 서운한 적이 많았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어준 거 고마워
우리가 자주 찾아 뵙고 문안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거든. 네 덕분에 우리
할머니랑 할아버지 조금은 덜 외로우셨을 거야. 에누야 고마워, 그리고 네가 좋은 묘연을
보내줄거라고 믿고 있어. 그리고 보고싶다 에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