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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1주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유가족의 입장
보랏빛 피멍이 든 채로 비명에 간 윤 일병의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진실을 밝혀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스물한 살, 그 찬란한 생을 두고 윤 일병이 서둘러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때 우리는 억울함을 풀어 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윤 일병의 죽음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군의 다양한 시도를 목도해야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윤 일병이 냉동식품을 먹다가 질식해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누구로부터 나와서 언론에 보도되고 수사와 재판 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현재까지도 윤 일병의 죽음을 은폐하려고 한 몸통을 알지 못합니다. 당초 군 당국은 폭행과 가혹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성추행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중대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부임한 지 7일 된 초임 검찰관에게 사건을 맡겼으며, 사건 현장을 목격한 유력한 증인의 증언조차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군인권센터와 시민법정감시단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준 시민들과 모든 국민의 관심이 있었기에 관할법원을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이관하고 처음부터 새롭게 공판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열정어린 감시에도 불구하고 3군사령부보통군사법원의 공판은 끼워맞추기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군사법원은 우리 형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진실은 묻은 채 중형 선고라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것입니다. 그나마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늬만 중형인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유가족이 원한 것은 사형도 중형도 아닙니다. 형량보다는 윤 일병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했습니다. 형량이 가볍더라도 질식사라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매일 같이 반복된 ‘폭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살인’이라는 너무나 명백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했습니다. ‘개인의 불운’과 ‘폭행에 의한 살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수많은 간극이 있습니다. 그 간극에는 군의 부실 수사와 끼워맞추기식 군사재판이 있으며 또 다른 윤 일병들의 눈물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후 국방부고등군사법원에서 항소심을 진행되면서 윤 일병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드러났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것들이 제대로 선고가 될지는 현재 미지수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유가족의 고통과 괴로움은 더해가고 있습니다.
1주기를 맞은 지금도 우리의 아들 윤 일병의 죽음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1주기를 맞아 윤 일병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추모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엄정한 선고가 이뤄지기 전에는 윤 일병의 1주기를 지낼 수 없습니다. 아니,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유가족이 비명에 간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진실은 규명되지 않고 있고 가해자들 중 다수는 제대로 된 반성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윤 일병을 서둘러 애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비명에 간 윤 일병을 다시 한 번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유가족을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그에 따라 엄정한 선고가 내려져야만 합니다. 윤 일병의 멍 자국과 피눈물을 닦아주고 또 다른 모든 윤 일병들의 아픔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윤 일병이 두 눈을 감고 고이 잠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유가족이 윤 일병의 1주기를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2015. 4. 6
윤승주 일병 유가족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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