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리나라 국민의 1년 약값은 얼마나 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3년에 지출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요양급여 중 약품비는 13조2400억원이라고 한다. 그 약값 중 일부는 구매자인 환자가 내고, 약 9조원이 넘는 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낸다. 4인 가족이라면 1년에 72만원 정도의 약값을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이 대규모 약값을 대상으로 지난 15년간 불공정거래 행위가 이어져왔다면?
1999년 약품 실거래가상환제 도입 뒤 100조원이 넘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병원-제약회사 불공정거래,
미국에선 2013년에만 26억달러 회수했는데… 매출액 약 20%를 불법적인 리베이트로리베이트 쌍벌제의 도입 등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에 연간 2조~3조원의 리베이트가 불법적으로 오간 것으로 추산하는 발표를 했었다. 리베이트는 제약회사나 의약품 도매상이 의약품의 처방과 판매를 늘리기 위해 요양기관(병·의원이나 의사, 약사)에 허용되는 마케팅의 범위를 넘어서서 금품·향응 등 이익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약품 채택의 대가인 랜딩비, 처방의 대가인 매칭비, 할증과 할인 등 명목도 다양하다. 감사원이 2012년에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보건복지부, 검·경, 공정위 등이 제약회사와 약품 도매상들의 불법 리베이트를 적발해낸 금액만도 무려 1조1141억원에 달했다. 2007년에 공정위는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 매출액의 약 20%를 불법적인 리베이트로 사용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영리 행위를 하는 제약사와 도매상이 왜, 어떻게 그 많은 리베이트를 병원이나 약국에 주는 걸까? 그 비밀은 실거래가상환제의 허점과 리베이트와 약값 거품의 순환 고리에 있다.
1999년에 도입된 실거래가상환제는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이 제약사나 도매상으로부터 약품을 구매한 실거래 금액을 신고하면 공단이 실거래 금액을 지급해주는 제도로, 보험약가를 상한으로 한다. 이 제도는 요양기관의 양심을 믿는 제도인데, 양심에만 맡길 수 없으니까 요양기관에 뒷돈을 받거나 음성적 거래를 하지 말고, 솔직하게 신고할 법적 의무를 부여한다.
병원이나 약국이 환자들에게 더 싸게 좋은 약을 구매해 공급하면 자기에게도 이익이고 공단이나 국민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 경우 요양기관들이 실제 구매한 가격만큼 보험약가를 내릴 수도 있다. 이런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국민은 좋은 약을 싼값에 살 수 있고 공단은 국민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제약사가 요양기관을 리베이트로 매수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요양기관은 실제로는 리베이트로 뒷돈을 받으면서, 상한 금액을 꽉 채워 보험약가대로 약을 샀다고 공단에 거짓 보고를 하고, 이에 속은 공단으로부터 약값을 비싸게 받아낸다. 거품 약값이고, 허위의 부당 청구다. 거품의 일부는 리베이트로 간다. 이게 반복되면 약값 거품은 꺼지지 않고, 국민이 최종적인 피해자가 된다.
약속이나 한 듯 보험약가의 99.9%사실 제도 도입 당시부터 약값 거품과 리베이트의 악순환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대로 됐다. 세상에! 수많은 도매상을 통해 약품이 판매되는데, 전국의 병원과 약국에서 모든 의약품이 약속이라도 한 듯 보험약가의 99.9%에 거래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모든 병원·약국이 제약사나 도매상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대가로 리베이트가 포함된 거품 가격을 진짜 가격인 양 숨겨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1999년 실거래가상환제가 도입된 이후 리베이트와 약값 거품이 유지되고 있으니, 15년간 어림잡아 100조원이 넘는 규모의 유사 이래 가장 큰 불공정거래 행위가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공정위가 리베이트를 피해로 보고 계산했는데, 이미 2007년에 연간 최소 2조800억원에서 최대 3조12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방식으로 추산하면 지난 15년간 제약사와 요양기관들이 부당하게 빼낸 돈은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다.
소수의 환자들은 외로운 소송감사원은 리베이트와 약값 거품으로 약제비가 과다 지출되고 막대한 소비자 피해가 생기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와 공단과 심평원이 공동으로 제작한 홍보물에도 리베이트의 대부분이 국민이 내는 소중한 건강보험료에서 충당돼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리베이트의 원천인 약값 거품을 걷어내지 않고는 도저히 리베이트를 뿌리 뽑을 수 없다고도 했다.
이처럼 모든 국가기관이 불법적인 약값 거품과 리베이트 때문에 국민 세금이 부당하게 들어간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적발해낸 리베이트만도 1조원이 넘는데, 공단이나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제약사나 요양기관을 상대로 단 한 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영문을 알 수 없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면 패소할 것 같아서일까? 그렇다면 스스로 홍보물 등에 리베이트와 거품 약값, 그로 인한 국민의 피해에 대해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제약산업을 죽이려는 것이냐는 제약업계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한 기업에서 이익을 환수하는데 제약업계의 위축을 우려할 일인가? 미국에서는 비슷한 사안으로 2013년에만 해도 건강보험 당국이 제약회사로부터 26억달러를 회수했다. 참으로 대조가 된다.
심지어 지금 소수의 환자들이 제약사를 상대로 외로운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도, 공단이나 지자체가 소송의 결과나 지켜보자고 방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환자들은 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공단이나 지자체의 손해를 입증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1인당 피해액은 얼마 되지 않아서 리베이트를 억제하는 효과도 크지 않다. 서둘러서 공단과 지자체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