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에 댓글로 썼는데, 너무 아랫쪽에 있어 못 읽으실 분이 많을 것 같아, 따로 글을 써 봅니다.
베오베 간 <그르바비차>를 보면, 세르비아만 일방적으로 '죽일 놈'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인종청소나 무차별적인 강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아픔을 겪은 부분은 명백한 잘못이고, 단죄해야할 부분입니다.
제 글은 왜 그런 비극이 싹트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배경설명입니다.
원글에 캡쳐된 사진에서는 치욕감을 주기 위해, 군인들에게 무차별적인 강간을 명령했다고 나오는데요.
사실은 무슬림말살정책이죠.
남편이 없는 여자들이 아이들을 키워내면 자연스럽게 강자의 문화, 즉 (얼굴은 모르지만) 아버지쪽의 종교를 따를 것이라는 헛된 기대가, 이러한 비극을 양산한 것입니다.
혹 어머니쪽을 따르더라도 전통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비이슬람인이 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래서 전부 죽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임신을 시키고 낙태를 못하게끔 한겁니다.
즉 인구(인종)은 유지하되,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인구를 없애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여성들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빠지게 됩니다. 무슬림 인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가, 이러한 비극적 결과를 낳게 된 것이지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등 발칸 반도 남슬라브족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정복당한 후, 수백년 동안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고, 억압과 착취, 고난의 세월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발칸반도에서는 오스만 투르크(이슬람)에 대해서는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증오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터키와도 사이가 좋지는 않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고, 무슬림이 되기를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처참하게 희생됩니다.
아래 지도는 13세기의 유럽지도입니다.
장화모양 이탈리아의 건너편에 있는 곳이 바로 발칸 반도지요. 자세히 보시면 중앙부분에, 연한 갈색으로 'SERBIA(세르비아)'라고 적혀 있습니다.
세르비아의 왼쪽이 '보스니아', 그 왼쪽,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 반도를 마주보고 있는 곳(옅은 보라색)이 '크로아티아'입니다.
이 아래의 지도는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유럽지도입니다.
중앙에서 우측하단의 보라색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입니다.
지도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오스만 제국이 동유럽의 발칸반도를 정복하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실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지가 됐습니다만, 위의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지도만 보더라도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칸반도가 오스만 제국에 먹힌 것은 대략 줄잡아도 500여년입니다.
독일의 나치가 유럽을 점령하고 통치한 기간은 대략 3년 정도 됩니다.
이때 희생된 유태인의 사망자 수를 대략 3백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점령한 기간은 36년입니다.
이 기간동안 희생당한 우리나라의 독립군, 의병 등의 숫자도 대략 3백만명으로 추산됩니다.
500여년을 발칸반도를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은 남슬라브 인종들에게, 요즘과 같은 '다문화정책'을 폈을까요?
'미녀들의 수다'처럼 인종별로 모여, 사회문제를 웃으며 이야기했을까요?
물론 '아니올시다'입니다.
보스니아의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라는 소설을 읽어보시면, 오스만 제국의 점령기간 동안 얼마나 처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드리나 강의 다리>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잔인한 장면묘사가 여과없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지요. 한번 읽어볼 만합니다.
실제로 지금도 보스니아나 마케도니아 같은 곳은 많은 이슬람 모스크들이 남아 있어, 이슬람문화의 잔재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럽 역사를 대략이나마 아시는 분들은, 무슬림 제국들이 유럽을 점령해가면서 얼마나 무차별적인 살육을 단행했는지 아실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 유명한 문구죠.
"코란이냐, 칼이냐?"
(이 부분은 여러 반론이 있어, 명확히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문구는 실제 명문화된 글이 아닌, '비유적 상징'으로 쓴 것이며,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이냐, 죽음을 택할 것이냐"의 의미보다는, 정복전쟁의 과정 속에서 "항복할 것이냐, 죽을 것이냐" 정도의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또 이슬람교의 포교방식이 강압적이지 않고 평화적이었다든지, 인두세 부과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제 글의 의미는 '점령이후'의 문제가 아닌 '점령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죽고 죽이는 살육전에서, 평화니, 종교적자유니 하는 협약이 당시 이루어졌을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원글은 수정하지 않고, 괄호로 내용을 추가합니다.)
아래 사진은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 중심부에 있는 이슬람 모스크입니다.
(각기 다른 모스크로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겁니다.)
이처럼 수 백년에 걸쳐, 수 백만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무슬림에 대한 증오는 남슬라브 민족에게 대대로 이어져 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억압과 증오감 속에서, 전쟁과 같은 혼란의 시기에 비이성적인 공격과 복수가 자행된 것이지요.
이 복수극은 세르비아계만이 자행한 것은 아닙니다. 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계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다만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요.
물론 과거의 뼈아픈 고통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보복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이해하다보면 대충 밑그림이 보이실겁니다.
아래 사진은 세르비아의 남쪽에 있는 도시 '니쉬(Nis)'에 있는, 일종의 '추모공원'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에 맞서, 용감하게 자폭한 세르비아 군대와 장군을 추모하기 위한 곳인데, 거대한 성벽을 쌓아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아 놓았습니다.
후에 희생자 가족들과 후손들이 유골을 찾아갔던 까닭에, 중간 중간 빠진 곳이 많습니다.
(혐오주의)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선 글에서 언급된, 집단학살이나, 강간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르비아의 굴곡진 역사와, 학살과 착취로 얼룩진 그들의 고통을 감안한다면, 일방적인 '절대 악'이라고 규정하기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겁니다.
이와는 별개로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전쟁도 많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일명 '유고 내전'이라고 부르는데요. (정식명칭은 '유고 슬라비아 내전'이지요)
유고내전은 일방적인 세르비아계의 학살로 알려진 바와 달리, 세르비아 사람들도 크로아티아인들에게 엄청난 학살을 당했습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사이에 있는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약칭:보스니아)'와 같은 곳은 양쪽에서 얻어터지는 형국으로 피해가 극심했지만, 유고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에 살고 있던 세르비아계의 약 130만명(비공식통계)이 몇 달만에 사라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실종으로 처리됐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해 사망자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경우지요.
세르비아가 독립을 원하는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군사력으로 저지했던 것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크로아티아에서 세르비아계 50만명이 집단 학살을 당했던 과거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군사력으로 독립을 저지하고 유고 연방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은, 자국민인 세르비아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었던 셈이지요.
물론 결국 인종전쟁의 비극적 결과로 끝맺음 되지만 말입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종교도 다르고(세르비아 : 그리스정교 - 크로아티아 : 카톨릭), 인종도 다른 탓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분쟁이 있어 왔습니다.
(통상 발칸반도인을 모두 남슬라브 계통으로 보지만, 그들끼리는 다른 민족이라 여기고 있지요.)
그러다가 희대의 영웅 티토(Josip Broz, Tito)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민족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국가주의로 유고연방을 건설하게 됩니다.
유고연방(유고 슬라비아)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비견될만큼, 크고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우리나라와는 1982년 공산주의 국가로는 가장 처음 수교를 맺기도 했었죠.
(우리나라와의 수교는 1989년이었네요. 베스트나 베오베 글은 수정이 안되는 까닭에, 원글 남겨두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티토의 동상과 무덤입니다.
<사진출처 : '나'>
아래 사진은 티토 사망시 세계 각국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보냈던 조문국들을 표시한 겁니다.(파란색)
조문을 오지 않은 국가는 노란색으로 표시됐는데,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기 전인 까닭에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네요.
<사진출처 : '나'>
이처럼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고, 영웅시 되던 티토 덕분에 발칸반도는 한동안 조용했습니다.
'하나의 국가'라는 '국가주의'로 세계 강대국의 대열에 올라섰기 때문이죠.
세계적인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의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1995)라는 영화가, 유고연방의 당시 사회상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재밌는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
그러나 티토이즘이라 불릴 정도의 강력한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티토가 사망한 이후, 각 민족간 분쟁이 다시 생겨나게 되고,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국가주의로 뭉쳐있던 유고가 각각 분리 독립됩니다.
이 과정에서 유고 내전으로 불리우는 전쟁이 일어난 것이고, 각 민족간의 갈등과 이슬람계의 팽창으로 인해 집단 인종학살의 양상으로 곳곳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지요.
티토를 세르비아계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티토는 크로아티아인입니다. 그러나 세르비아 왕국과 발칸반도의 역사를 고려하여, 세르비아를 유고연방의 종주국으로 결정합니다. 세르비아는 인구뿐만 아니라, 종주국이 될만한 뚜렷한 명분과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보스니아에는 아직도 여기저기 건물벽면에 그 상흔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건물들에 아직도 남아있는 총알자국입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보스니아 사람들이 세르비아를 증오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보스니아계는 대부분 친세르비아계이고, 언어도 세르비아어와 훨씬 유사합니다.
크로아티아어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지요.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경계했던 것은, 실제로는 알바니아 계열의 무슬림이었고, 집단강간으로 이슬람인들을 말살시키려는 시도는 세르비아계 한쪽에서만 실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종교가 다른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분쟁도 빈번하긴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르비아가 왜 이렇게 욕을 먹느냐...?
거의 북한과 같은 격의 ‘악의 축’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사실 세계 정략적인 부분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르비아를 불량국가로 만들어 친서방파의 유대를 강화시키려는 미국과 NATO의 전략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르비아에는 나토의 미사일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남아 있습니다. 또 시시때때로 퍼붓는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죠. 그러나 이런 뉴스는 해외토픽에 나오지 않습니다. 미국과 나토가 움직이는 국제정세의 흐름에 거슬리기 때문이죠.
아래 사진은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중심부에 있는 건물 잔해입니다.
NATO에 대한 항의성 시위인지 몰라도 몇 년 전까지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습니다.
국무성이나 군수시설이 아닌, 민간인이 근무하는 공사 건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지요.
(혹시 여행가실 분이 계시다면 나토에 폭격받은 저 건물들의 사진 촬영은 주의하십시오. 아직까지 저 건물들이 복구가 안 됐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건물들은 무작정 촬영하다가 경찰에 끌려가 신분조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목적이 무엇인지, 기자인지 여행객인지, 꼬치꼬치 캐물을 뿐만아니라, 카메라를 압수 당할 수도 있습니다. 경찰들이 상시 순찰 중이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유고내전으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전쟁의 비극, 여성과 어린이 등의 힘없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보호,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경각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전쟁 발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러한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세르비아는 내전 이후, 인종학살전쟁의 주범인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던, 밀로셰비치를 즉각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전범으로 사형을 시킵니다. 관련자들도 그에 합당한 형량을 구형받았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고, 곧바로 국제사회에 사과를 했던 세르비아의 처세는, 미국과 나토로부터 불합격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끊임없이 분쟁을 촉발시키는 불량국가가 필요로 하고, 그들이 국제경찰국가의 노릇을 할 수 있는 '악의 축'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르비아는 동구권의 힘없고, 별볼일 없는 국가로 인식됩니다.
(세르비아는 2007년 기준, 월평균소득이 400불에 불과합니다. 근래들어 우리나라에 세르비아 출신의 축구선수나 배구선수가 많이 스카웃되고 있는 까닭에,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좀 있는 듯 합니다. 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의 '노박 조코비치' 덕분에 세르비아가 유명해지긴 했지만, 이는 스포츠에 국한해서일 뿐입니다.)
(세르비아에서의 한국이미지는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관련 기사를 아래 첨부합니다.)
"<외교관이 본 세상이야기> 세르비아"
구 유고연방 해체이후, 신 유고연방을 건설하지만, 이마저도 해체되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유지되던 연방체제마저, 몬테네그로가 독립하면서 붕괴되고 맙니다.
얼마전에는 세르비아 왕국의 성지와 같은 코소보마저 독립을 선언합니다.
(아직 독립이 국제사회로 부터 인정된 것은 아닙니다.)
코소보에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이주하게 되면서, 세르비아인들이 점차 코소보를 떠나게 됩니다.
마치 슬럼가를 떠나는 백인들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세르비아계가 도시로, 수도로 이주하고 세르비아계 인구수는 점점 줄어들게됩니다.
결국 알바니아계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아지게 되고, 알바니아계는 단독으로 코소보 독립을 선언합니다.
예컨대, 일본사람들이 제주도로 이민을 와서 땅을 삽니다. 점차 일본인들이 많아져서 제주도를 한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합니다.
과연 이게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타당한 일일까요?
하지만 코소보는 그렇게 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미국과 나토가 뒤에서 코소보 독립을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위의 썼던 내용처럼 미국과 나토는 끊임없이 세계의 불량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힘의 논리가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친 경우지요.
물론 세르비아에서 친미계통의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나토와도 폭격피해에 대한 문제가 협의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또 EU로의 편입도 가시적으로 엿볼 수 있게 된 상황이구요.
그러나 아직도 세르비아는 불량국가, 악의 축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강성했던 과거 세르비아 왕국의 영광을 다시는 볼 수 없게끔, 끊임없이 견제하고 나락으로 밀어버리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봉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유고내전을 다룬 영화가 제작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영화 역시 세르비아만 '못된 놈'으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고 받고, 뒷통수 맞은 일은 스리슬쩍 빼버리고, 안좋은 부분만 부각시키는 셈이지요.
일방적인 정보로 한쪽면만을 보고서는,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의 역할이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과 강간이 정당한 보복행위였다고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전쟁들의 안을 파헤쳐보면, 그 속에는 종교와 인종 문제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토문제도 있겠지만, 잠깐 논외로 쳐 봅시다.)
십자군전쟁을 위시하여, 후스전쟁, 기사전쟁, 프랑스의 신구양파의 종교전쟁과 위그노전쟁, 독일의 슈말칼덴전쟁과 30년전쟁. 근대 중동의 여러 정복전쟁. 또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역시 넓은 의미에서 포함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신교 구교의 갈등은 하룻밤새 같은 프랑스인끼리 5천여명을 학살하는 참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늙지않는 하이랜더 증후군으로 유명한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한, <여왕 마고(Queen Margot)>(1994)에서 이 전쟁이 그려냈지요.)
우리 종교, 우리 인종은 우월하다, 고로 우리는 '절대 선'이라는 인식.
여기에는 "'나'와 '너'는 다르다."는 근본적 사고가 그 밑바탕이 됩니다.
내가 곧 '선'이기 때문에, 당연히 너는 '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또는 흑백논리).
어렸을 때 흔히들 편가를 때 쓰는 말, "우리편 좋은편, 너희편 나쁜놈편."
이런 판단의 기준이 다른 종교,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계의 석학인 프랑스의 '피에르 보르디외(Pierre Boudieu)'가 쓴,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죠.
인류의 역사는 '구별짓기'로 시작하여, '구별짓기'로 끝난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몇 줄로 요약해보면,
"나와 너는 다르다."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어디 감히 나를 넘보느냐."
"나와 너는 근본부터 다르다."
는 의식이, 국가와 국가간, 인종과 인종간, 계급과 계급간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죠.
위에 언급한 종교와 인종 문제는 국가간의 거시적인 문제로 커질 수 있지만,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간의 '구별짓기'는, 국가 내의 사회문제로 불거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도 이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기득권과 피기득권과의 갈등, 지역과 지역간의 갈등, 고용주와 피고용인과의 갈등, 임차인과 임대인과의 갈등, SSM과 영세상인과의 갈등,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재벌과 노동자와의 갈등, 직책이나 직분에 따른 갈등 등. 수많은 갈등이 위와 같은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과 그 '차이'를 인정하고, 넓은 포용력으로 받아들일 때, 위에 언급한 갈등들은 작아지거나, 어느샌가 스르르 녹아 없어지겠지요.
물론 전쟁이나 학살, 인종말살정책과 같은 비극은 더더욱이나 일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구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끄적이다보니, 어느새 날이 훤해져 버렸네요.
게다가 이거 마무리 짓기가 쉽지 않군요. ;;
그냥 평범하게 할렵니다.
GRD ASKY
좋은 하루들 보내시기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