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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5187
    작성자 : 산나루
    추천 : 3
    조회수 : 311
    IP : 1.250.***.66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2/12/02 23:56:23
    http://todayhumor.com/?readers_5187 모바일
    [오유과거]-산문 - 그녀의 눈물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긴 세월의 눈이 그녀의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듯 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도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70년 전 그 날’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 들’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그녀를 대신하여 굳게 닫힌 창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굳게 닫힌 창문을 향해 울분을 토하듯 소리 질렀다.

    “ 사죄하라! 사죄하라! ”

    곳곳에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고 그럴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그녀는 묵묵히 ‘그 들’의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슬퍼서도 화가 나서도 아니다. 차가운 칼바람에 눈이 시려서이다. 그렇게 그녀는 한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렇게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70년 전 어느 날

    “분님아 손님 받아라.”

    오늘도 어김없이 그들이 찾아왔다. 그런 그들을 아저씨는 몸을 수그린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오늘은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쉬고 싶었지만 이렇게 군인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날이면 다카키 아저씨는 우리들을 채근했다. 이런 날이면 아저씨는 달걸이를 하는 아낙네 보다 더 성깔이 사나웠다. 사실, 그가 숨기고는 있지만 그도 우리네 동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끔씩 우리를 향해 ‘ 호랭이가 물어 갈 년들아~!’라고 소리 칠 때 나는 그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 뭐해? 어서 나와서 손님 받지 않고. ”

    “ 예... 나갈 깨요. 오늘은 몸이 좋지가 않아서.”

    “ 호랭이가 물어 갈 년. 하필이면 오늘 같은 때에 아프고 지랄이야 이년아. 빨리 준비하고 나와서 손님 받아.”

    - 쿵 -

    방문이 닫히는 소리에서 아저씨의 말투만큼이나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짜피 항상 해오던 일이야. 별 다를게 없어. 그냥 나는...... ’

    준비랄 것도 없다. 다만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좁은 통로를 통해 아저씨가 손짓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소처럼 군복을 입은 군인이 거만한 자세로 나를 물건 살피듯 이곳저곳 힐끔거렸다. 힐끔거리는 눈빛은 온몸을 더러운 손으로 만지는 듯 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몸에서는 흙과 땀 냄새가 섞여 고약한 냄새가 났다. 우선 그를 씻겨야 한다. 그를 씻기려 준비하는 동안 그는 나의 허리를 강하게 감싸안았다.

    “ 우선 씻으시죠. ”

    “ 뭐? 내가 더럽다는 거야? 대 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내가 더럽다는 거냐? ”

    “ 그것이 아니라... 우선 입고 계신 옷을 빨고 몸을 깨끗이 씻으셔야 ... ”

    “ 아니. 난 그냥 됐어. 대일본제국 황군의 냄새를 맡는 것 또한 너에겐 크나큰 영광으로 알아야 할거야.”

    그의 말투에서 나는 역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순간 미간이 찌뿌려졌다. 나는 바로 알아차리고 얼굴을 다시 무표정으로 바꾸어 보았지만 이미 그의 눈빛에서는 광기가 세어 나오고 있었다. 심장도 숨을 죽이고 뛰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개머리판으로 내 머리를 휘갈겼다.

    -퍽-

    “ 아니 이년이! ”

    - 퍽! 퍽! -

    그는 이미 화난이유도 잊어버린 채 나를 향해 광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이곳에 와서 어찌어찌 이런 큰일을 겪지 않고 지냈지만 항상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웃겼다. 이놈도, 나도, 이 망할 놈의 나라도, 나의 조국도

    “ 히히. 히히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병사는 흠칫 놀라 나를 쳐다보고는 내가 웅크린채 맞을 준비를 한 모양이 우스웠던지 다시 나를 두들겨 팼다. 사람이라면 그냥 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 놈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흥분해 있었고, 나는 피가 떡이 되어 초죽음이 되어있었다.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나를 상대로 그는 욕정을 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이 사건을 기억하려 했지만 맞다가 웃음이 새어 나온 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기억이 떠오를 것 같지만 그러기 싫다. 그 일이 있은 후 단 사흘간 쉬었고 아저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나에게 손님을 받게 하였다. 내가 맞던 그날. 그날도 창밖에서 눈이 오던 날이었다.

     

    - 2012. 12월 첫째주 수요일

     

    집회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가만히 눈을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생각에 깊이 잠겼음이라.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불쌍하고 여린 사람이 아니었다. 도움보다는 함께하기를 바랐을 따름이다. 그녀는 20년이 흐르는 동안 비와 눈을 맞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해방이 된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해방이 됐을 때도 그녀는 펑펑 울지 않고 눈물만 훔쳤을 뿐이다. 오늘도 단지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눈이 시려 눈물을 훔쳤다.

    언젠가는 소녀 때로 돌아가 펑펑 울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그녀는 눈을 털어내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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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3 02:26:51  219.255.***.180  세라하이드  87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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