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개방으로 촉발된 사태가 끝없이 확대되고 있다. 10대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몇 년 후 죽을 것이라 불안해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게 시작이었다. 10대들에 이어 일반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최근의 사태는 심상치 않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정부가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려 한다고 보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분노는 '독재 타도'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비화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동일한 고기를 수입한다"고 누누이 설명했지만 많은 국민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도 광우병 쇠고기를 수출했다가는 장사를 계속할 수 없을 터이니 광우병 쇠고기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정부의 설명을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주장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일찍이 로마의 시저가 지적했듯이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홍보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왜 국민들은 정부의 설명보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믿으려 할까?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실망, 나아가 반감 때문이다. 국민들은 대선기간 내내 갖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믿었고 기대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는 법.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출범을 하기 전부터 국민을 실망시켰다. 인수위에서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고 들고나왔다. 자녀를 단 하루라도 해외연수 보낼 형편이 못 되는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그렇게 쉽게 주장할 일이 아니었다. 임명되는 장·차관은 재산이 보통 수십억 원을 넘었다. "돈 많은 게 죄냐?"고 정색하면 할 말은 없지만, 서민들로서는 '딴나라 정부'로 보일 뿐이었다. 총선에서 정적 죽이기와 측근 챙기기에 열중하자 국민들은 대통령의 측근을 떨어뜨리면서 경고했지만 여권은 승리의 기쁨을 노래했다. 국민은 대기업의 직원과 다르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오만하게 비쳤다. 국민은 실망했다.
그러던 차에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광우병이 있다는데, 국민들은 불안했다. 졸속협상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는 홍보부족을 탓할 뿐이었다. '부자정부의 높은 분들'은 수입쇠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기에 광우병에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가 흘렀다. 이제 국민들은 대통령이 오만하다 못해 아예 국민을 무시한다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촛불시위가 도로점거로 바뀌면서 순수하게 건강을 염려하여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이 시위대열에서 이탈하는 조짐을 보이기는 한다. 며칠 지나면 시위현장에서 늘 보던 '그 사람들'만 거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태가 봉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취임 100일 만에 레임덕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는 대통령과 정부가 과연 10년간 쌓인 좌파정권의 묵은 때를 씻어내면서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먼저 성난 민심부터 치료해야 한다.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국민은 화를 풀지 않고 있다. 말 몇 마디로 풀어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야당이나 반미·좌파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 치부할 일도 아니다. 그런 선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그런 선동에 놀아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짚은 것이다. 단순히 쇠고기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보였던 오만함이 문제다. 이러한 자세를 일거에 씻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은 비로소 화를 풀 것이다.
그 시작은 인적쇄신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사태를 초래한 인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비상시국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이를 납득할 국민은 많지 않다.
더 나아가 대통령은 국민에게 깨끗이 항복하라. 국민에 대한 항복은 굴복이 아니다. 국민에게 홍보하고 설득하려 들기 전에 먼저 귀를 열라. 그렇게 해서 국민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라. 어떻게 이룬 정권교체인가. 다행히 임기 초반이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시작하더라도 결코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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