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타자를 전유하는 양상은 복잡합니다. 개인의 인간관계란 시간을 두고 만들어가기 때문인데요,
그러한 복잡함 속에서도 두 가지 대조적인, 타자에 대한 개인의 전유방식이 있습니다. 일반화와 직관이
그것입니다.
일반화는 개인이 상대방을 하나의 개념과 동일화 시키는, 타자를 전유하는 방식입니다. 가령 저 에게
따라 붙는 동일화의 개념은 '홍대 미술하는 애'라든지, '대전출신'과 같은 고정된 이미지를 산출하는
개념들입니다. 개인이 갖고있는 고정된 이미지가 곧 타자의 존재를 결정짓는 전유방식입니다.
직관은 말 그대로 개인이 상대방을 개념과 동일화 시키지 않고, 오로지 직관적 능력을 통해 타자를 전유
하는 방식입니다.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예를 들자면 개인이 아무런 고정관념이나 선 지식을 염두해두지
않고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전유방식입니다.
a.일반화
사실 '전유방식'이라는 말에는 '타자를 나의 것으로 독차지 한다.'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만큼 1대1의 인간관계를 전제하는 개념이지만, 일반화를 통한 전유방식은 1대 다수의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이 어느 순간부터 소수의 상대만을 관계망에 두지 않고, 다수의 상대를 자신의 관계망에 두려
할 때, 일반화의 전유방식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상대들에게 모두 직관을 통한 응시로서 관계망을
구축하려 한다면, 복잡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때문에 효율성을 추구한다면 일반화를 통한
타자의 응시가 다수의 상대를 두고 관계망을 구축하기 용이합니다.
때문에 일반화의 전유방식은 도시화와 맞물려 있고, 근대적 인간관계방식입니다. (물론 시대적으로 근대 이전에 이런 일반화의 전유방식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근대성이 두드러짐에 따라 특징적으로 부각된 타자의 전유방식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인간관계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일반화를 통한 타자의 전유방식은 개인이 상대방/타자를 어떤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서 응시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수직적/권력적 인간관계를 생산합니다. 타자를 속박하는 개념, 그 속의 고정된 이미지는
우/열과 흑/백, 선/악 이라는 이분법적 가치판단에 용이합니다.
때문에 일반화의 전유방식은 권력에의 의지를 암시합니다.
b.직관
'직관'과 '전유'라는 어휘가 언 듯 보기에 배치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직관'은 개인이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타자를 '전유'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자를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전유'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화'라 한다면, 타자와 자신의 지위를 나란히 한 체 *'유목적적' 응시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직관' 역시 타자의 있는 그대로를 자신의 '이해'에 두려하는 '전유'의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직관은 일반화와는 상대적으로 1대1, 혹은 1대 소수의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전유방식이며, 때문에 어느 정도
반근대적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관을 통해 타자를 전유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감각을 예민하게 둘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몸짓, 분위기,어조, 감촉 등등을 섬세하게 관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직관은 나의 감각을 가감없이 열어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대상을 전유하고자 함에 어떠한 고정적 이미지나 개념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개인이 타자를 온전히 전유하고자 하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감각을 통해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없듯이 직관의 능력이 뛰어난 개인이라도 이를 통해 타자를 온전히 전유하는 것은 불가능 할 테니까요. 어느 일면만을 전유할 뿐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반화의 방식과 달리 직관을 통해서 만이 타자는 '전유 할 수 없는 무엇'임을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반화의 전유방식에 여기까지 부정적으로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직관'이라는 개념을 통해 타자의 전유방식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간접적 긍정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식의 전유에 대해 이분법적 가치판단은 무의미 하다고 보는 것이 또한 저의 생각입니다. 타자에 대한 두 가지 방식의 전유는 각각'추상'과 '구상'이라는 자연/사물에 대한 우리의 두 가지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어느 하나배척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날 강화해야하는 인간관계 방식을, 타자를 전유하는 방식을 생각해야한다면, 일반화보다는 직관의 전유방식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타나 지적하실 부분 있으시면 덧글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유목적적'이라는 개념은 칸트의 이론, 미적 판단의 '무목적성'과 는 다르게 대상을 '인식'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는 '전유'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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