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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전선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거리에는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렸다. 나는 조금 늦었음을 사과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나를 보고는 엷은 미소를 띄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복잡한 거리를 조금 걷다가 다 스러져가는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는 요즘엔 보기힘든 석유난로가 덩그러니 있었다. 난로에서 마치 은은한 기름냄새와 따뜻한 훈기가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잠시후 서빙로봇이 삐걱거리며 다가와 메뉴를 주문받고는 사라졌다.
평소같으면 누군가와 이렇게 카페에서 만난다는건 사치였지만, 그래도 취업까지 한 마당에 오늘은 아무래도 좋았다.
잠깐의 어색함 끝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건냈다.
“오랜만이네. 정말 축하해. 이제 결혼하는 일만 남았네?”
“야 이제 겨우 직장 구했는데 결혼은 무슨....”
“그렇지....하여간 올해 실업률이 작년보다 더 높았다던데 넌 재주도 좋다야.”
그녀가 웃자 주름진 눈가에 슬픔이 피어났다. 그녀는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
“운이 좋았지 뭐. 넌 어떻게 지내니? 공부는 잘 돼가?”
그녀는 그저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우리나이 마흔셋이면 아직 늦은것도 아니야 임마."
그렇게 말해놓고도 못할말을 한 것처럼 입안이 씁쓸했다. 언제부터일까....
우리의 삶이 기계와 로봇으로 완벽하게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인류는 전례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먼 과거에는 20대 후반정도였다던 평균 취업연령은 점차로 늘어 최근에는 급기야 40대 중반이 되었고, 무던한 노력과 기나긴 경쟁을 견뎌낸 자만이 일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로는 자신이 어렷을 적만 해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다고 했다. 나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과학의 힘으로 공장들은 먹지도 쉬지도 않고 불평도 없는 노동자를 가지게 되었다. 이들과 경쟁한 인간 노동자들은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단순 반복이 필요한 업무는 물론이거니와 작은 서비스업까지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인류는 이제 공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만큼이나 공부할 거리는 넘쳐났다.
일이십년 안에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기도 힘들었다. 혹 어린 취업자가 있다면 기증자에게 뇌를 이식한 과학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요즘에 와서야 돈만 있으면 과학자건 아니건 뇌 이식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뇌 이식 기술이 상용화 되고 그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자기 몸을 기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3~40대는 아직 젊은 세대였다. 50대 이상은 되어야 결혼 적령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능력없는 부모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자식을 부양하진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갈곳없는 20대들이 고시원을 많이 찾기 시작하자 정부에서는 이런 청년들을 지원한답시고 도시 변두리에 “케이지”를 짓기 시작했다. 창문도 없는 1평 남짓한 방이 빽빽하게 들어찬 거대한 회색빛 건물에는 20대부터 늦깍이 60대까지 취업 준비생들로 가득했다. 연애는 대개 사치라고 인식되었다. 이들은 연애에 드는 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이자 문제아였다.
나 또한 이 케이지 출신이다. 우리 부모님의 벌이로는 자신들의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집안 사정상 고등대학까지 갈수 없었던 나는 대학교만 졸업하고 케이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드디어 이렇게 취업에 성공하면서 내 인생도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기쁜마음으로 한턱 쏘려고 대학 동기들에게 연락을 돌렸지만 예상외로 연락이 닿은건 그녀 뿐이었다.
“근데 기태 이자식은 왜이렇게 연락이 안되는거야? 넌 혹시 소식 들은거 없어?”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뇌 이식을 지원했다는 얘기는 들었어.”
“뇌 이식 이라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얘기로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주변사람이 뇌 이식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뇌 이식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였다.
“그자식 요즘 어디있는지는 모르고?”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몰라.”
“참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20년 만에 취업하니 고작 듣게 되는 소식이 이런 것이다. 예전에는 불법으로 장기를 팔아서 돈을 벌기도 했다는데, 요즘엔 그런것으로는 푼돈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장기매매와는 달리 합법적이고 한번에 고액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여 뇌를 이식받는 일이다. 물론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몇 개월간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적응기간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매일 TV나 신문에서는 뇌 이식의 정당성을 지겹도록 광고했다. 지성의 상속과 우수한 유전자의 보전 어쩌고 저쩌고...
“아니 어쩌다 뇌 이식까지 하게 된거야?”
“기태랑 기태 부모님 앞으로 빚이 좀 많았다나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같은 세상에 빚 없는 사람이 어디있냐? 자기가 열심히 공부해서 갚아나갈 생각을 안하고 뇌이식을 한단 말이야? 그게 자살이나 마찬가지란걸 알고나 그런거야? 기태 그자식 그렇게 안봤는데 정말 실망이네.”
나는 괜히 화가나서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넌 요즘 어디서 지내니? 노량진 케이지에 아직 있지?”
“응 그렇긴 한데....”
“휴....진짜 이제 케이지라면 지긋지긋하네. 너도 빨리 취업해서 거기서 나와야지. 솔직히 닭장에 닭들이나 우리나 다른게 뭐냐? 조금만 방심하면 너도 기태처럼 되지말라는 법도 없어. 이해하지 내말?.”
그녀는 조금 화가난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맞어. 닭장에 닭이나 우리나 다른 것도 없지 뭐. 난 솔직히 말해서 기태가 이해 안되는 것도 아냐. 케이지에 10년 넘게 있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지는 너도 잘 알지 않아? 이제는 내가 누군지, 내가 원하는게 뭔지 생각도 않난다구. 난 그저 하루하루 의무적으로 책상앞에 앉아있을 뿐이었지. 그리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나도 하기로 했어 그거....”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 할지 화를 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고도 차갑기만 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너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이유가...”
“나도 모르겠어. 그냥 내가 살아가는 이유 자체를...빚은 나날이 늘어가지, 차라리 내 몸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알수 있었다. 그녀가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다는걸. 그 와중에 내 가슴속에서 뭔가 역겨움같은게 일어났다. 그녀는 패배자일까? 희생자일까? 아니면 그녀만의 자유를 찾은걸까? 그녀와 그렇게 찝찝하게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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