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내의 공포가 나에게로 전염되었는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며 텅 빈 천장의 무늬를 헤아렸다. 눈꺼풀이 빡빡하게 조여오지만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아내와 아기의 숨소리가 왼편 귓바퀴를 촉촉하게 적셨다. 오른편에서는 탁상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었다. 나는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도망쳤던 잠이 몰려올 테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늘 그랬으니까. 알람소리도 못 듣고 늦잠을 자게 될 건 불 보듯 뻔했다. 회사에 지각하는 건 참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서 빨리 조금이라도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너무나 피곤했고 지쳤다. 머리에 쥐가 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순간 깜빡 잠이 들었다.
깊은 수렁 같은 잠 속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
짧은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모텔의 사진 속에 있던 소녀였다.
아내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던.
또렷한 이목구비에 날씬한 팔다리. 그대로 성장했더라면 꽤 예쁘장한 아가씨가 됐을 거다. 그러나 낯선 모텔 벽에 숨겨져, 시체로 발견되었지.
내 우울한 시선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소녀의 말간 눈동자에선 원통한 감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쓸쓸한 결말을 모르는 듯 순수하기만 했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반 바퀴를 돌아 치마를 나풀거리게 만든 다음 베시시 웃었다.
‘어울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또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내 자리에 서있는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거였다.
소녀의 기억 속에 있었던 어느 시간을 끄집어 내, 나의 꿈속으로 밀어 넣은 것 같았다.
그녀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처럼. 혹은 누군가의 기억을 공유하는 거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나에게 저리 친근하게 웃어줄리 없었다.
소녀의 기억 속에 내가 존재할리는 없으니까.
나도, 그녀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같이 가, 혜연아.’
꿈속에서 나는 그 소녀를 “혜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꿈을 꾸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혜연이는 나의 아내, 내 아기의 엄마였다.
저 여자가 아니라.
“헉...........!!”
익사하기 직전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성공한 사람처럼, 나는 거하게 숨을 토해냈다. 머리카락이 땀에 흠뻑 젖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 소란스러움에 아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몇 시야......? 안 늦었어?”
지난밤의 광기어린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지극히 평온한 목소리다.
아내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시침과 분침이 7시 25분께를 지나고 있었다. 다른날 같으면 지각이라고 난리법석을 피웠겠지만 오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느릿느릿 침대에서 벗어나자 뒤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일어나, 더 자.”
“당신, 안색이 안 좋아. 악몽이라도 꿨어?”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곧 아내 나를 지나쳐 부엌으로 직행하리란 걸 알았다. 평소대로 간단하게라도 아침상을 차려주리란 걸. 그게 우리의 한결같은 아침 풍경이었다. 아기가 많이 아프지 않은 이상, 아내는 어떻게든 내 허기를 달래주려고 했다. 입맛이 없다고 투정부릴라치면 아침이 보약이라며 먹고 가라고 내 등짝을 후려치곤 했다.
“어제 그 식당 음식이 별로였나 봐. 나도 속이 좀 안 좋네. 난 신경쓰지 말고 더 자. 당신 어제 컨디션도 별로였잖아. 애 일어나기 전에 좀 누워있어.”
하고 빠르게 말을 마친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하고 출근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유부남 아저씨의 외모 같은 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그때였다.
무방비하게 방문을 나서는 내 등에 아내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박혀왔다.
“정말?”
아내가 샐쭉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정말 아무 꿈도 안 꿨어?”
돌연,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 튀어나와 뒷덜미를 콱 물어뜯는다.
나는 피를 철철 흘리는 기분으로 뒷덜미를 움켜쥐고,
침대에 앉아 고요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내를 응시했다.
그, 샐쭉하니 올라간 입꼬리를.
출근길에 모텔 앞을 빙 둘러싼 취재진과 구경꾼들의 모습을 보았다. 범죄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경찰의 수는 몇 명 보이지도 않았다. 실제로 더 많았을지 모르나 인파에 파묻혀, 보이는 건 몇 명 뿐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우울한 표정으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을 의식하곤 지나쳐 가려고 했다.
“이봐요!”
“?”
“이봐요, 애기아빠! 그래. 자기 말야, 자기.”
인파를 헤집고 통통한 체격의 아주머니가 한명 뛰어나와 나를 붙잡았다.
유난히 새빨갛게 보이는 입술은, 입술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곳이 민낯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새벽부터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립스틱을 꺼내들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자 기묘한 공포가 몰려왔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아주머니였다. 겁 없게도 범죄현장 탐험을 나서자고 나를 꿰어냈던.
아주머니는 은근한 눈빛을 건네면서 나를 골목으로 잡아끌었다.
뿌리칠 타이밍을 놓쳐서 어어어, 하며 따라 가게 되었다.
“저 출근해야 되는데.....안 그래도 늦었거든요.”
“나한테 왜 말 안했어?”
“네?”
아주머니의 손바닥이 등 위에 내리꽂혔다.
새빨갛게 칠해진 인위적인 립라인이 벙긋벙긋
눈앞에서 어지럽게 움직였다.
“이 모텔 주인이랑 아는 사이라고 왜 말 안했느냐고.”
“네? 주인 부부하곤 몇 번 얼굴 본 게 단데요?”
“여기 옆 슈퍼 사장한테 무슨 사인지 다 들었어. 아무리 관계가 소원하다구 그래도 주인 부부가 뭐야, 주인부부가. 그렇게 부르는 법이 어딨어?”
이 아줌마는 입을 열었다하면 사람 정신을 못차리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자석도 아닌데 사람을 쑥 끌어당겨서 이곳 저곳으로 끌려다니게 만든다. 그 날 밤도, 이 아주머니만 아니었으면 아내하고 싸우는 일도 없었......그 순간 이어진 아주머니의 말에 사고가 멈춰버렸다.
“장인 장모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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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어떻든 완결까지 묵묵히 쓰자고 시작한건데,
1편이 베스트에 가니까 미소를 숨길 수 없네요.
열심히 쓰라는 응원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편에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