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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0대 이상이라면 최근 10년정도사이에 거의 자취를 감춘 영화/만화책 대여점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 바로 맞은편에
그런 대여점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 아저씨는 항상 카운터에 앉아서 소형 스크린으로 이름모를 영화들을 보고 있었다. 뭘보나 궁금해서 한번씩
살짝 들여다본적이 있는데 그저 지루해보일뿐 현란한 액션이나 압도적인 스케일의 장면은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손님이 카운터로
가지 않는 한 팔짱을 끼고 집중해서 스크린을 응시하던 아저씨였다. 이 점을 악용해서 만화책을 빌리는 대신 대여점 내에서 한권을 다 읽고 나오는
파렴치한 녀석들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알고도 모른 척 해준게 아닐까 싶다.
날씨가 추워지던 때였으니 아마 10월말에서 11월 초 사이였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숙제를 끝내(었다고 거짓말하)고 엄마한테 천원을 받아든 나는 대여점으로 뛰어들어갔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영화리뷰들이 활성화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입소문이나 영화 관련 tv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 케이스 일러스트 및 설명에 의존해서
영화를 골라야 했었는데, 그 날은 유독 영화를 고르는게 어려웠었다. 잘못 고른 영화 한편이 소중한 토요일 저녁을 다 망칠 수도 있었기에. 그 때 든 생각은,
아저씨는 항상 영화를 보고 있으니 무슨 영화가 재밌는지 잘 알거라는 것이었다. 아저씨에게 영화를 추천해달라하자 그 거구를 파오후 쿰척 일으켜 카운터에서
나와 손수 꺼내준 영화의 이름은 ‘러브미이프유데어’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겠거니하고 그걸 빌려와서 보고나서 난 도저히 상식에 맞지않는 씬들과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라인에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생각하고는 다음날 바로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했다. 반납할 때 아저씨가 영화 어땠냐고 물어보길래 별로였다고
말하고는 쌩하니 돌아와 다시는 아저씨에게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덧 중학생이되고 p2p를 통한 영화 불법 다운로드를 알고나서
대여점에는 발이 끊어졌고 고등학생 때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대여점이 skt대리점으로 바뀐 것을 보게되었다. DVD, 블루레이를 구비해놓는 등의 변화를
꾀했지만 결국 불법 다운로드를 이기지 못하고 통신사에게 자리를 내어준 아저씨를 생각하며 난 이기적이게도 나도 공범이라는 생각대신 자본주의가
그렇지 뭐..라는 마인드로 지나쳤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쯤, 유니폼을 입고 살던 당시, 당직근무를 마치고 홀로 생활관에서 tv를 보다가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어린 시절의 협소한 의식수준과 이해력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유려한 영상미와 아름답도록 아픈 - 또는 아프도록 아름다운 - 스토리라인에
선임의 베개를 눈물 콧물로 적시고야 말았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그 땐 미안했다 선재야) 그 때였다. 대여점 아저씨를 이해한 순간이. 아저씨는 어쩌면 외로웠을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주 찾아오는, 당돌하게도 영화를 추천해달라한 그 초등학생 아이와의 공감과 소통을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생에게 어려운 영화를 추천할 수는 없으니 나름 어느정도 수준을 낮추어 추천한 영화가 그것이었으리라.
바람이 차다. 오늘 날씨만큼이나 쌀쌀했던 그날의 나를 아저씨는 기억할까 궁금하다. 다시 아저씨를 만난다면 소주 한병까고 통신사의 횡포에 대해, 영화에 대해, 그리고
빠르게 지나간 세월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출처 |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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