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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긴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논지를 먼저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a. 도덕은 논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b. 도덕은 사회적 합의입니다.
1. 도덕은 감정에 기반을 둔 사회적 합의다.
많은 지식인들이 도덕(선이란 무엇이며 선을 행하는 것이 왜 옳은가)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해결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남에게 선행을 하는 이유는 내가 타인의 선행이 필요로 할 때 그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라는 타인에 대한 기대나 보상심리, 혹은 '해당 도덕을 포함하는 문화권에서는 그렇게 행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진화론적인 관점이 그나마 대중적인 동의를 얻었죠.
예를 들어 '사람을 해치면 안 된다'라는 명제는 '내가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동의한 도덕적 참입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명제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사회에서 고립되기 쉽기 때문에' 지키는 도덕적 규칙입니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도덕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진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도덕의 근간이 되는 이유들이 감정과 관습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칠거지악을 보시죠. 여자의 질투와 수다는 논리적으로 그른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합의이자 해당 문화권의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 사상이고 관습에 의해 통용되어 왔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 달팽이를 먹는 것 또한 취향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개고기를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개고기를 먹을 수 없을 뿐입니다.
2. 도덕의 기준은 바뀐다
이제는 많은 학자들이 '도덕은 사회적인 합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마치 언어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고 동의하고 정의했으며, 시간에 따라 변하고, 제각각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가지며,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며 변할 수 있습니다.
미풍양속이란 단어를 다들 아실껍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 많은 행위들이 금지당하고 처벌받고 있습니다. 한 때는 여자들의 미니스커트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서 국가 차원에서 단속했던 적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고 해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여자들의 미니스커트에 도덕적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죠.
3.논리적으로 동성애를 금지시킬 수 없다
이제 다시한번 동성애 논란으로 돌아가보죠. 동성애 (+근친)은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손 번식이 논리적 참이 아니며, 유전병이 논리적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죠. 만약 이 둘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국가적으로 자손을 남기지 않는 부부를 처벌하거나 유전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의 번식을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논리적 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히틀러이며, 그가 심취했던 우생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동성애와 근친은 논리적 참이나 논리적 거짓이 아닙니다. 이 둘을 금지시킬 논리적인 근거는 없지요.
4.논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해서 허용할 수 없다
자, 그렇다면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무엇이든지 가능할까요? 이 주장에는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까놓고 말해 돈 많은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착취하지 말아야 할 논리적인 근거는 없으니까요.
노인공경, 선행, 악행들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 논리적 참만이 우리가 따라야 할 행위들이라면 논리적 참이 아닌 선행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있으며, 논리적 거짓이 아닌 악행을 참아야 할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그야말로 '법을 어기지 않았으면 만사 ok'인 세상이며, 법 또한 그 어떤 동정이나 자비 없이 칼 같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선행은 옳으며 악행은 그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의 첫 부분에서 도덕은 사회적 합의이며, 합의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동성애와 근친 역시 동일합니다. 이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며, 논리적인 이유로 결정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5. 다시 원점으로
결국 동성애와 근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도덕이 궁극적으로 취향에 의한 선택이며,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감정 싸움입니다. 서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오갈 것이며, 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감정의 문제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홍석천씨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아픔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삶에 감동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홍석천씨의 삶이 감동적이라고 해서 그분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이 되지 않습니다.
6.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변화는 아픔을 동반한다고 말합니다. 동성애 논란 역시 동일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희석되는 한편 근친에 대한 거부감은 강하게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동성애는 선택이 아니지만 근친은 선택이라는 주장도 보입니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척을 이성으로써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이 사랑에 빠진 상대가 친족이었을 뿐이지, 친족이라서 사랑을 선택한건 아닐껍니다. 근친이 사회적 터부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사랑에 의한 선택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찾기 힘듭니다. 왜냐? 논리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지요.
7. 결론
감정과 관련된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거나, 상대를 싸그리 죽이거나, 아니면 갈등이 풀릴 때 까지(한쪽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까지) 평행선을 달립니다. 과학조차 이러한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니('패러다임 이론'으로 유명한 토마스 쿤) 감정과 관련된 문제는 더욱 심하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근친에 대한 거부감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게이들의 애정행각을 본 적이 없어서 내리는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 친구는 게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가, 게이들의 키스를 목격한 후로 거부감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또한 전 근친에 거부감이 있지만, 옆집 남매가 근친하는데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렇듯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감정에 근거한 결론들은 대부분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장문의 결론이 뭘까요. 결국 이 문제는 감정문제라는걸 서로 납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납득하지 못하면 감정적인 이유에 논리적인 이유를 찾게 되고, 싸움은 격해지며, 결국엔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만 남게 됩니다. 여기는 온라인이라 서로 멱살잡고 싸우지는 않겠지만, 온라인에서 얻은 악감정은 현실에서도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ps. 게시판 구분을 위해 그나마 맞는 철학게시판에 왔는데...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보고 공감해 주실런지는 미지수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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