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도 감탄한 ‘바닐라유니티’
달콤한 멜로디+두툼한 사운드 결합
유려한 멜로디에 청량감 있는 록 사운드를 섞어 구사하는 5인조 감성 록밴드 바닐라유니티가 3년 만에 3집을 들고 돌아왔다. 왼쪽부터 닉(베이스) 지미(기타) 이승주(보컬) 조대민(기타) 김민성(드럼). 양회성 기자
[email protected] 2000년 서태지가 6집 ‘울트라매니아’를 들고 귀국했을 때 화제가 됐던 건 새빨갛게 땋아 기른 레게머리만큼이나 강렬한 뉴메탈 장르의 음악이었다. 가녀린 소녀 팬들이 콘서트장을 울리는 육중한 리듬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는 영상이 지상파 메인 뉴스를 반복해 장식했다.
그가 다음 앨범에서 한 선택은 울트라매니아의 원초적인 록에 감성적이고 유려한 멜로디를 결합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물이 2004년 내놓은 7집 ‘로보트’의 이른바 ‘감성코어’였다. 서태지는 당시 국내의 한 밴드가 자기보다 앞서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수준 높게 구사하는 것에 놀라 자신의 공연에 단골 게스트로 초대했다. 5인조 감성 록밴드 ‘바닐라유니티’다.
최근 3년 만에 3집 앨범을 내고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이들은 약속한 듯 모두 아이스연유라테를 마셨다. 새 앨범 ‘위 아 라이징(we are rising)’은 연유처럼 달콤한 멜로디에 얼음처럼 속 시원한 밴드 연주가 강한 화학작용을 이룬 음반이다.
“초기 사운드를 강하고 우울한 이모코어(emotional hardcore)로 본다면 이번엔 좀더 달달하고 팝적인 이모팝(emo-pop)이에요.”(이승주·보컬·29)
멤버도 보컬 빼고 다 바꿨는데 그중 베이시스트 닉(이요한)이 ‘괴물’이다.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꽃 미모를 장착한 24세의 막내 닉은 열린사이버대 영문학과 교수이자 가톨릭대 언어교육원 초빙교수다. “열세 살 때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끝내고 열린사이버대 영문학과에 들어가 수석으로 조기 졸업했죠. 부산대와 고려대에서 언어학 석·박사과정을 마쳤고요.”
닉은 기타만 치다 3년 만에 베이시스트로 완벽하게 전향한 비결에 대해 ‘국궁으로 다진 팔 힘 덕’이라고 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은 첫 마디 굵기가 보통 사람의 1.5배쯤 된다. “영남대 교수인 미국인 아버지와 열두 살 때부터 국궁을 해 1단을 땄어요. 정신집중에도, 베이스 연주에도 도움이 많이 돼요.”
기자가 닉에게만 질문을 던지자 다른 멤버들이 헛기침을 했다. 지금까지 송라이터 역할을 맡아왔던 이승주는 이번 앨범에서 자기 대신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한 기타리스트 지미(장지미·26) 얘기를 꺼냈다. “대중가요를 작곡해도 될 만큼 ‘한 방’ 있는 멜로디를 잘 써요. 저는 그동안 골방에서 울분을 토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엔 밝고 긍정적인 지미의 이모팝에 밴드를 맡긴 셈이죠.”
타이틀 곡 ‘세상을 흔들어’는 한 번에 각인되는 후렴구에 살가운 보컬, 시원시원한 밴드 사운드가 합쳐져 마치 ‘빌보드 TOP 40’ 곡을 듣는 듯하다.
이만하면 주류 가요계에 도전장 한 번 내밀만 하지 않을까. “예전에 KBS ‘스펀지’에 세 번이나 나갔어요. ‘아기 울음 그치는 록밴드’ ‘육성으로 유리창 깰 수 있다’ ‘남산에서 기타 치면 라디오 소리 난다’ 편이었죠. 자존심 상해 더는 못 나가겠더라고요.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다시 나가보고 싶어요.”
외국 록 앨범을 듣는 듯한 ‘fat sound(두툼한 사운드)’가 이번 앨범의 자랑거리다. 미국 최고의 이모코어 계열 엔지니어인 폴 리빗이 믹싱을 맡았다. 일본의 유명 레이블이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해외 진출 계획이 있는지 묻자 이들은 대답 대신 ‘세상을 흔들어’의 가사를 들려줬다. ‘하늘을 향해서 가슴속에 숨겼던 푸른 꿈을 펼쳐/조금만 더 힘을 내줘. 너의 손을 잡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