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손 없는 소금장수의 이웃사랑
그는 양 손이 없다. 그는 장애등급 1급의 중증장애인이다. 이런 그가 바닷물을 퍼 올리고 말려서 질 좋은 천일염을 만든다.
그도 처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바닷가에서 깡통을 주워서 가지고 놀다가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두 손을 잃었다. 깡통은 다름 아닌 대인지뢰였다.
▲ 부성염전 강경환氏.
그를 찾아가는 길은 그의 인생 역정만큼이나 굽이졌다. ‘명함을 건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면 혹시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
두 손 없는 소금장수 강경환(52·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멀리 소금밭에서 우리를 보고 달려와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우리 손을 잡는다. 손이 없는 그의 손은 딱딱하지만 따뜻했다.
강경환씨는 양 손이 없지만 무려 4만㎡에 달하는 소금밭을 일구는 ‘부성염전’의 대표이다. 17년 전 그가 처음 염전을 시작할 무렵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다. “손도 없는 사람이 그 힘든 염전 일을 어떻게 한다는 거야? 개가 웃을 일이다. 주제도 모르고 …”
그는 주위의 이런 냉소를 뒤로 하고 염전 일을 시작했다.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바람과 햇볕에 말려서 소금을 만들어 수레에 싣고 소금창고로 날랐다.
염전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96년 강씨는 이웃돕기에 나섰다.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의 집 앞에 남몰래 자신이 직접 만든 소금자루를 갖다 놓았다. 10여년 동안 소리 소문 없이 그 일을 계속했다.
뒤늦게 선행이 알려지자 그에게 손가락질했던 이들도 슬며시 고개를 수그렸다. 2008년부터는 봉사단체인 ‘사랑의 밀알회’를 조직해 어려운 이웃돕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1972년 12월 24일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고향인 서산 대산 벌말 바닷가에서 작은 깡통을 가지고 놀다가 돌로 내려치는 순간 앞이 ‘번쩍’하면서 ‘꽝’하는 굉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깡통은 다름 아닌 6.25 때 버려진 발목지뢰였다. 3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지만 그에게는 이미 고사리 같던 두 손이 없었다. 강씨는 ‘부끄럽고 창피하다.’며 중학교도 가지 않았고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외갓집에 가셨는데 며칠 동안 집에 오시질 않는 겁니다. 배는 고프지 오줌은 마렵지… 결국 혼자서 밥도 먹고 대소변도 해결했지요.” 사고로 손목을 잃은 지 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살을 하려고 농약을 몇 번인가 먹었다가 운 좋게(?) 깨어났고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술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두 팔과 다리 하나가 없는 정근자씨라는 분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린 잡지를 보게 됐다. 그의 머리는 해머에 맞은 듯 아찔했고 심장은 마구 요동을 쳤다.
강씨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 정씨에게 “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을까요?”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요. 당신은 나보다 다리 한쪽이 더 있지 않나요?”라는 답장이 왔다.
이때부터 강씨의 눈빛이 달라졌다. 술을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차차 삽질을 익히고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서 낫질을 하며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다.
이렇게 몇 년을 열심히 살다보니 1987년에는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 정순희씨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그리고 1994년에는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소금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 해보는 염전일은 너무도 고되고 혹독했다. 지금까지 힘들다고 느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상인만큼 일하기 위해 밤늦도록 염전에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펐다.
하루 1 ~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하고자 하는 의지 앞에 안 될 일은 없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내와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때 처음 깨달았습니다.”라며 회고한다.
2년 정도 하니 일도 손에 익고 수익도 생겼다. “소금 한 포대가 1만원가량 하는데 여기에서 1000원씩을 떼어서 모았죠. 그걸로 저보다 더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데 쓰자고 다짐했죠.” 그래서 그 때부터 이웃돕기를 시작했고 5년 전부터는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내는 일도 하고 있다.
강씨의 부성염전은 한해 매출이 6000만원정도다. 이중 순수익은 2000만원정도. 강씨는 그 중 500만원이상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다. 수익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강씨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고 계셔서 항상 감사드릴 따름입니다.”라며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전의 저처럼 낙심했던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 우리 등 뒤에 대고 그가 소리 지른다. 다음번에 올 때는 작업복을 입고 오라고. 그는 단지 양 손만 없을 뿐이다.
▲ 부성염전 강경환氏
▲ 부성염전 강경환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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