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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9052
    작성자 : 뿡분
    추천 : 14
    조회수 : 1166
    IP : 112.146.***.64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5/31 21:29:38
    http://todayhumor.com/?panic_49052 모바일
    단편] 영원한 친구 (한밤의 추모식) 上

    [ 영원한 친구 ]






    한밤중에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다름 아닌 저의 추모식이었습니다. 빙판길을 과속해서 달리다가 차 째로 강물에 처박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제 가여운 영혼을 기리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모인 사람은 모두 다섯. 저의 어머니를 포함하면 여섯명이겠군요. 장소는 저의 생가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추모식을 위해 고향에서 올라와 아침부터 바지런히 음식을 장만하셨습니다. 아들의 기일을 챙겨주는 기특한 친구들이라면서요. 하지만 글쎄요, 저들이 저의 친구라고 부를만할까요? 우리가 한때 분명히 친구였던 건 맞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우정보다는 사업으로 엮인 파트너로 변질되어 갔지만요.

    “곧 12시야.”

    최태식이 시간을 말했습니다. 그는 젊을 때나 지금이나 저열한 남자였습니다. 어느덧 중년이 된 그는 주름이 이마와 미간 사이에 콱 박혀 있었습니다. 덕분에 조금만 인상을 구겨도 아주 쉽게 내천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죠. 그는 우리 중에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컸습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죄책감과 양심따윈 얼마든지 갖다 버릴 수 있는 인물이었죠.

    그가 일어서서 금색으로 도색된 촛대를 가져와 불을 붙였습니다. 나머지 네명도 일어나서 무언가를 가져오더군요. 그들은 각각 촛대를 하나씩 가져와 자기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곤 이상한 판이 하나 준비되었습니다. 최태식은 그 판을, 다섯 명이 만든 커다란 원의 중심에 내려놓았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습니다. 귀신 주제에 무슨 욕심이냐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저로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 잘나갔던 사업가의 추모식 치고는 초라한 기분이었으니까요.

    자정이 되자, 그들은 판 쪽으로 가까이 다가앉았습니다.

    “이걸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성혜의 붉은 입술이 불만스레 찢어졌습니다. 그녀는 저의 첫사랑이었습니다. 한때 결혼까지 생각해보았던 여자가 저의 추모식에 참석해주다니, 실로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귀신한테도 심장이 있다면 제 심장은 아마 두근두근 뛰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긴 생머리를 귀 뒤로 거칠게 넘겼습니다. 자기가 예민해져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요. 뾰족한 손톱이 유명 명품회사의 로고 모양과 똑같은 디자인의 귀걸이에 부딪치며 소리를 냈습니다. 귀걸이가 뒤로 당겨지자 그녀는 밭은 숨을 내뱉었습니다. 화를 참으려는 사람처럼요.

    “애들 장난도 아니고. 위자보드 가지고 귀신과 얘기하다니.....너희들, 제정신이 아니야.”
    “그럼 달리 수가 있어? 무당이라도 부를까? 그 참에 온 동네방네 소문까지 내지 뭐.”

    공격적인 말들이 그녀에게 쏟아졌습니다.
    위자보드? 무당?
    저는 바닥으로 내려와 중앙에 놓인 그 이상한 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알파벳과 숫자가 적혀있었습니다. 실제로 마주한 위자보드는 생가보다 대단한 물건같진 않았습니다. 한때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분신사바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하고 얘기하고 싶은 건가?’

    조금 설레기도 했습니다.
    죽은지 1년이 되었지만 저는 그저 둥둥 떠다니며 외롭게 지냈을 뿐, 누군가와 말을 섞어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흥분한 저는 온힘을 다해 저의 존재를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안보는 틈에 위자보드의 포인터가 잠깐 들썩였을 뿐이었습니다. 그 움직임은 너무 미미해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 그 자식은....”
    “그러게 내가 옛날부터 음흉한 놈이라고 했잖아.”
    “성혜야. 어머님은 확실히 재웠지?”
    “침대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왔어. 난 누구랑은 다르게 맡은 일은 확실히 처리하거든.”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야?”
    “그래. 네가 자빠져 자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 아냐.”
    “뭐?!”

    숨기다니, 무엇을?

    최태식이 위자보드 판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한번 찾아보자고. 그 새끼가 들고 튄 우리 돈 40억을.”

    40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몸 전체가 끈적거리는 반죽으로 변한 것처럼 축축 늘어졌습니다. 물론 보이진 않을 테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랬습니다. 귀신도 느낄 수가 있으니까요.

    최태식과 한권민이 포인터 위에 손을 겹쳐 올렸습니다.

    “김한영. 한영아. 듣고 있어?”

    저는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퍽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자꾸만 섬광같은 빛이 번쩍였기 때문에 움직일수가 없었습니다. 그 섬광들은 기억의 파편인 모양이었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잊어버렸던 많은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으니까요.

    “봤어?! 움직였지, 방금!”
    “........우연일수도 있어. 다시 해봐.”
    “이 자리에 있는 게 우리 친구 한영이면 ‘네’라고 대답해주세요.”

    포인터가 천천히 YES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한권민이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서성거렸습니다. 저를 눈으로 보려는 것처럼요. 상기된 그 표정을 보니 다른 무언가가 기억났습니다.

    [개자식.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이제 누가 벌벌 기어야 될까. 어때, 입장이 바뀐 기분이. 내 기분을 이제 좀 알겠어?]

    그는 늘 순종적이었습니다. 친구 사이에 순종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묘하게 저를 떠받드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하고 친구들을 데려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성향은 더욱 도드라졌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그를 아첨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제 비위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었죠.

    그런데, 방금 떠오른 이 기억은 도대체 뭘까요?
    제가 만들어낸 상상일까요?

    저는 어두운 창고 안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연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몹시 추웠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저는 저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한권민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또, ‘모른다’고 거듭해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최태식이 한권민을 다시 자리로 불러들여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누군지 알겠어?”

    포인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F'로 시작한 그 단어는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인터가 마지막 알파벳을 가리키자 최태식이 비죽 웃었습니다. 아주 비열해 보이는 미소였습니다.

    “그래. 우리는 친구야. 한영아, 우리가 부탁 좀 할게. 우리가 상황이 어렵게 됐거든. 그래서 말인데, 네가 숨겨놓은 돈이 필요해. 너는 이제 돈이 필요 없잖아. 너희 어머니는 네 보험금으로 잘 살고 계시고.”

    포인터가 빙글빙글 빠르게 회전했습니다. 성혜가 팽이처럼 돌아가는 그것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뜻이지? 싫다는 건가?”

    포인터가 ‘NO'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뭐야, 그럼. 알려줘. 장난치지 말고.”

    포인터는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모른다는 거야?”

    ‘YES'

    “...........장난치지마, 김한영. 네가 빼돌린 돈 40억. 도대체 어디 숨긴 거야? 우리한테까지 시치미 떼려 하지마. 우리도 같이 한 일이었으니까.”

    포인터는 다시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돈을 빼돌리다니, 저는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왜 친구들은 이런 얘기를 할까요? 저는 제가 그리워서 위자보드를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내가 안가르쳐줄거라고 그랬잖아!”
    “구두쇠새끼. 비열한 배신자 자식아! 그 돈을 너 혼자 처먹으라고 위험까지 무릅쓰고 도운 줄 알아?! 귀신 주제에 왜 욕심을 부리는 거야?!”

    한권민이 방안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박의준이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기억 못하는 걸 수도 있어. 솔직히 자기가 왜 죽었는질 기억하고 있으면.....우리한테 순순히 알려주겠냐? 게다가 아까 친구라고 하는 거 봤잖아. 기억이 없나봐. 자기 죽음도, 뭐 때문에 죽었는지도.”

    박의준의 말은 틀렸습니다. 저는 제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차 사고로 강 밑으로 가라앉던 그 순간을 말이죠. 틈새로 들어온 강물이 제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시속 100키로가 넘게 속도를 높였습니다. 녹은 눈이 다시 얼었기 때문에 길이 무척 미끄러웠죠. 제대로 장비체크도 하지 않고 빙판길을 시속 100키로가 넘게 달리다니. 무모함과 부주의가 죽음을 몰고 온 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왜, 속도를 높였을까요.
    길이 미끄럽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얘기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너희 어머니 지금 윗층에서 자고 계셔. 너무 곤히 주무셔서 누가 업어 가도 모를걸. 성혜가 잠이 오는 약을 좀 타드렸거든. 아들의 추모식이 열린 기일에, 아들하고 똑같은 강에 뛰어든다라.......완벽한 시나리오 같지 않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여긴 목격자가 다섯명이나 준비돼 있거든. 네가 봤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무런 의심도 안 받고 걸어 나왔지.”

    저의 죽음 때문에 경찰은 많은 사람을 조사하고 다녔습니다.
    친구들은 차례로 불려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사업문제로 사채를 썼다고 했어요.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자 스토커처럼 쫓아다닌다고, 이러다 끌려가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었죠. 사실 도산하기 직전이었거든요]

    [많이 힘들다고 했어요. 가끔 죽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요. 정말.....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릴 줄이야......]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 때마다 저는 친구들을 찾아갔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의 아주 개인적인 문제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와있는 거, 한영이 너 맞지? 홀어머니 생각에 장가도 못간 끔찍한 효자 김한영.”

    친구들 덕분에 모든 것이 기억났습니다. 기억의 파편이 퍼즐을 완성시켜 가기 시작합니다.
    그럴수록 저는 흉폭한 괴물처럼 변해갔습니다. 저의 기운이 방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때 포인터가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회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회전으로 인해 동력을 얻은 것처럼 포인터가 조금씩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공포에 질린 다섯쌍의 눈이 포인터를 따라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추모식 같은 걸 열어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덕분에 모든 게 기억나버렸으니까요.
    사신이 빼앗아간 제 ‘마지막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탄 차는 사고로 추락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를 며칠씩 감금하고 고문한 놈들이 제 차를 바짝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들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습니다. 룸미러 속의 제 모습은 해골같았습니다. 제 머리는 수차례 둔기에 얻어맞아 깨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흐른 피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옆으로 꺾었습니다. 제가 다리 위를 지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죠.

    첨벙!

    차가 얼음을 깨고 강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곤두박질 친 차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저를 고문하고 감금한 추격자놈들이 차에서 내려 저의 죽음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도와줄 생각도 않고. 그 중에 한명이 비죽 웃었습니다. 참으로 비열해 보이는 미소였습니다.

    저기, 저 최태식의 웃음처럼 말이죠.

    “돈, 어디에 숨겼어? 설마 그 돈이 어머니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겠지. 아무리 너라고 해도 말야.”

    좋아. 가르쳐줄게.
    대신 너희들도 무언가를 줘야 될 거야.

    “뭘? 귀신 주제에 뭘 달라는 거야?”

    포인터가 알파벳을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F‘로 시작하는 그 단어는 친구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친구? 저승길 동무라도 필요하다는 거야?”

    위자보드가 통째로 들썩거립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포인터가 단호하게 무언가를 가리켰습니다.

    ‘YES'








    /

     

     위자보드 보다는 분신사바가 더 친근?한 느낌입니다.

     분신사바...한때 정말 인기가 많았죠.

     

     감사합니다.

     다음편에서 뵈어요.

     

     

    ( 한밤의 추모식, 으로 올렸었는데

     '영원한 친구'로 제목 바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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