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 참. 또 달랑 팬티 한 장만 입고 생활하는구나."
친구 녀석의 집들이에서 내가 처음한 말은 이것이었다. 보다시피 녀석은 손님이 집에 방문했는데도 옷차림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지만 아직까지 녀석의 이런 생활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더위를 많이 탄다고 하는 녀석이지만, 오늘 날씨가 이례적으로 폭염이라고 하지만, 그런 생활방식을 아직까지 고집하는 녀석이 웃겼다.
"어, 왔냐. 아직 다 치우지는 않았으니까 대충 자리 봐가면서 앉아."
이사온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거실 군데군데에는 아직도 개봉하지 않은 의류박스가 눈에 띄었다. 아무리 자취하는 남자라지만 지저분해도 너무 지저분했다.
"집들이 선물이다."
대충 거적거리는 잡동사니 몇 개를 치운뒤, 틈이 난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철푸덕 앉으며 들고 온 선물을 녀석에게 내밀었다.
"오, 선풍기잖아?"
녀석이 헤벌쭉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기야, 녀석이 만족할 선물 고르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넌 다른건 다 참아도 더위는 못 참잖냐."
"잘 알고 있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풍기의 포장지를 뜯고는 콘센트를 찾아서 선풍기의 코드를 꽂아서 전원을 켰다. 그 즉시, 선풍기의 날개가 위잉하며 슬슬 돌아가다가 이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또 그 많은 선풍기들이랑 쿨토시, 각종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왔구만."
녀석의 자취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피서 용품들이 개인 용품보다 훨씬 더 많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요즘 들어 더위를 더 타는 것 같거든. 뭐랄까, 몸이 타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해야되는 걸까."
한숨을 쉬며 선풍기의 세기를 강으로 바꾼 녀석이 더위에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 집도 너무 더워서 못 참아서 이사를 했건만. 이 집도 그렇게 서늘하지는 않은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4계절 내내 더운 놈이었다. 추위라는 것을 잊어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안되겠어. 선풍기 좀 더 돌려야겠군. 조금 도와줘라."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삐질삐질 땀이 배어나오는 등을 찰싹 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녹색빛의 천을 씌운 선풍기 여러 대를 창고에서 가져오기 시작했다.
"한 대로는 부족한거냐?"
나는 녀석의 더위타기에 혀를 내둘렀다. 녀석은 내 비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창고에 있는 선풍기를 가져오고 있었다.
"할 수 없군."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로 들어갔다.
"이...... 이게."
창고로 들어온 나는 기겁을 하고야 말았다. 창고 안에는 가득 들어선 선풍기가 빽빽이 들어 차 있었다. 구석에서부터 창고 문이 열리는 위치까지 선풍기는 마치 군단처럼 차례대로 배열되어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다 선풍기냐?"
녀석은 내 어이없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풍기 두 개를 양손에 들기 시작했다.
"그럼 뭐겠어? 너도 좀 거실로 날라줘라."
이 많은 것을 다 나르라고?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야, 그러지 말고 샤워를 해라. 샤워를. 바보 같이 행동하지 말구."
내 제안에 선풍기를 나르던 녀석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표정을 바꾸고는 선풍기를 다시 옮기며 말했다.
"샤워하려면 꽤 귀찮아지거든."
"샤워가 왜 귀찮아?"
샤워가 귀찮다니. 그것마저 귀찮으면 숨은 왜 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샤워하는 것 보다 이 선풍기들을 나르는 것이 더 귀찮고 성가신 일 같이 보였다.
"역시 너는 예전부터 별난 놈이었어."
고개를 젓고는 중앙까지 남아 있는 선풍기 두 개를 들고 거실로 옮겼다.
"이제 그만. 더 이상 꽂을 데가 없네."
내가 거실에 선풍기를 놓았을 때, 여러개의 콘센트 멀티탭에 선풍기의 코드를 꽂고 있는 녀석이 말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선풍기는 족히 열 두 대는 되보였다. 그 선풍기들의 모든 코드가 멀티탭에 연결 되어 있었다.
"그냥 에어컨을 틀어라!"
선풍기 열 몇 대가 에어컨의 전기세와 맞먹는다고 했던가. 지금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녀석에게 하는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선풍기의 세기를 모두 하나씩 강으로 맞추기 시작했다.
"그럼 피부에 습기가 차서 안 좋아."
"네가 언제부터 피부 타령을 했냐?"
피부 관리라고는 그제 세수밖에 하지 않던 놈이 갑자기 피부에 습기가 차서 안 좋다는 소리를 하니, 저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안되겠다! 오늘 왜 이렇게 더운거냐? 귀찮아도 어쩔 수 없겠군. 샤워 좀 해야겠어."
바람세기가 강인 12대의 선풍기에 몸을 맡기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진즉에 했었어야 정상이었다."
내가 녀석에게 말했다. 녀석은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고, 문을 닫기 전 내게 신신당부 하는 말투로 외쳤다.
"화장실 문 고장 났으니까, 샤워 끝날때 까지 절대로 문 열지 마라! 절대로!"
그러고는 문이 곧바로 닫혔고 나는 화장실 쪽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짜식. 남자끼리 뭐가 어떻다고 해서. 쯧쯧."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를 바라봤다.
"정신 사나워 죽겠네."
나는 선풍기의 전원을 모두 끈 후, 거실 바닥에 드러눕고 눈을 감았다.
"그럼 녀석이 나올때까지 한숨 자 볼까."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에 빠져 들었다.
"흐음......"
2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깬 나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녀석은 집에 없었다.
"짜식이 말도 없이 나갔네......"
내가 자는 사이 집 밖을 나간 녀석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여러 번 내뱉은 후, 소변을 보러 가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여 화장실 문을 열었다.
"히익!"
나는 앞에 벌어진 광경에 두 눈이 번쩍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 곳에는 모든 피부가 벗겨진, 근육만이 남겨져 있는 녀석이 끔찍하게 돌아가는 눈알을 굴려 나를 바라 보았다. 마치 실험실에 있는 인체표본 같았다.
"열지 말라고 했을텐데......"
녀석이 씰룩거리는 근육을 움직이며 말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녀석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어떻게 된 거냐?"
그러자 녀석이 몸을 비키며 욕조를 가리켰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바라보니 욕조 안에는 둥둥 떠 있는 녀석의 신체피부가 있었다.
"이...... 이런 미친...... 이게 뭔......"
나는 욕지기가 몰려와 그대로 바닥에 토를 했다.
"내가 최근에 시술 하나를 받았어."
구토를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말을 했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더위를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런데 어느 날 더위를 잊고 살게 해줄 수 있다는 의사 한 명을 만났어."
녀석의 눈동자가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쩍쩍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의사는 내 모든 피부를 벗기더니 몇 일에 한 번씩 피부를 씻으라고 하더군. 물론 다시 붙일때는 마치 옷을 입는 것 처럼 입으면 다시 피부가 근육에 재생이 된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한 번 해봤더니 효과가 직빵이더라구!"
녀석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면에 있는 모든 근육이 일사분란하게 쩍쩍거리며 움직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울렁거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미친놈!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피부를 벗긴다는 개 같은 짓을......"
녀석은 내 말에 당연하다는 듯한 두 팔을 벌리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겨드랑이에 있는 근육이 눈에 띄었다.
"당연하잖아."
녀석이 두 팔을 내리며 대답하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나는 시원해지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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