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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48905
    작성자 : 정디
    추천 : 2
    조회수 : 513
    IP : 112.145.***.72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3/05/30 03:01:30
    http://todayhumor.com/?panic_48905 모바일
    [단편] 하프웨이 上上
    * 2013년 12월의 크리스마스 이브


    이 날은 보통 연인이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좋은 날이지만, 나는 그 반대로 불행한 날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행복한 날은 아니라는 것을 단정짓고 싶다. 이유는 자세히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 원인의 제공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눈은 오지 않았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 가능성이 조금 있다고 했다. 나는 내일 눈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눈이 온다면 분명 연인들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었기에.


    살을 에는 듯한 강력한 추위에 나는 옷을 단단히 여몄고, 한숨을 쉴 때마다 나오는 입김에 한탄을 토했었다. 신발은 가끔마다 빙판길에 미끄덩거렸고, 차도에는 제설기가 눈을 치우며 한산한 거리를 메꾸고 있었다.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했다. 그러고는 약간 흐린 하늘을 쓸쓸한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늘은 지독히도 높아 보였었다. 하지만 팔을 벌리면 닿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늘에는 내 손 같은 하찮은 것이 닿을리가 없었다.


    야상 주머니에 넣었던 왼팔을 잠깐 꺼내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시간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주 이른 시간이었다. 일부러 일찍 나온 것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하나같이 다들 이 세상을 모두 가진 행복해보이는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럴때 마다 자조적인 비웃음을 나 자신에게 지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들과 나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데,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 견딜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겠지. 아마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큰 비통과 슬픔이 내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유리잔에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저 멀리 보이는 납골당을 바라 보았다. 납골당을 바라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한숨만이 땅이 꺼져라 쏟아져 나왔다.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와 같이 꽂혀 있는 빛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 사진 속에는 이제 이 세상에는 없는 호진이의 모습이 있었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 귀에 꽃을 꽂은 채로 앞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귀여운 얼굴에 뒷머리를 묶고 앞머리는 가르마를 타서 나를 설레게 했었다.


    "벌써."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납골당 안으로 들어갔다.


    "일년인가."


    납골당 안을 들어갔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그렇게 말이 중얼거리며 나왔다.


    납골당 안은 수 많은 이의 유골이 가득 차 있었고, 나만이 이 납골당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호진이가 있는 유골함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유골함은 중앙 조금 위 쪽에 있는 꽤 좋은 자리였다. 처음에는 정말로 딱 중앙 자리에 하려고 했지만, 윗 쪽일 수록 더 좋았기에 돈을 더 내서라도 그녀를 그 윗 자리에 배치해 놓았던 것이다.


    "안녕, 호진아."


    나는 그녀의 유골이 있는 유골함 앞에 서서 인사했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꺼낸 빛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을 유골함에 올렸다.


    "일년 만이네."


    미소를 짓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도 내 말을 마치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주저리 주저리 그녀에게 요즘 일에 대해 설명했고, 그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한 편으로는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녀가 자꾸만 떠 올라 마음이 미어와, 내 심경을 괴롭고 복잡하게 만들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 놓았던 나에게 '먹먹함'이라는 크나 큰 고통이 찾아왔고 더 이상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다만, 정말로 내가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만이 입에서 소곤거리듯이 흘러 나왔다.


    "호진아......"


    그것마저도 한 번에 다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이름만이 나왔고,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보고 싶다."


    나는 그 말을 하며 괴로운 나머지, 이마를 한 손으로 문질렀다. 가장 억울하도록 슬픈 사실 하나는 그녀를 이토록 사랑하는 나 자신이 있는데 정작, 그녀는 이 세상에 없었고 단지 그녀의 새하얀 유골만이 이렇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나를 반기고 있는 사실이었다.


    호진이가 죽은지 일 년이 지났다지만,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은 오히려 사라지지 않고 더 사무쳐만 갔었다.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아른 거리는 것만 같았고, 지금도 그녀의 라임향이 내 코를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두 손 꽉진 주먹을 덜덜 떨며 쫙 폈다. 주먹은 손바닥이 되었고 떨림은 평온으로 바뀌었다.


    "나도 오늘 행복해지고 싶다. 진짜."


    그녀가 있는 앞 쪽을 바라보았다. 사진. 그녀의 사진을 들어서 다시 뚫어지게 바라 보고는 가슴에 갖다 대었다.


    "너랑 말이야."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죽은 그녀가 무슨 수로 나에게 온다는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곳은 현실이다. 현실에는 마법 같은 공상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작은 기적 하나 자체도 정말로 일어나기 어려운 곳이, 바로 '현실'이다.


    "마법 같은 것이 일어날리가 없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가 살아 돌아온다는 마법이나, 그녀가 죽기 전 과거로 돌아간다는 마법이나. 하나 같이 말도 안 되는 것이었기에 피식 웃으며 손목시계를 바라 보았다.


    "10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녀를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그녀에게 할 말이 생각보다 정말로 많았는지는 몰라도 시간은 참 빨리 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잘 있어. 그만 가 볼게."


    나는 가슴팍에 올려 놓았던 그녀의 사진을 지갑에 꽂고는 유골함이 있는 쪽으로 인사를 했다. 꽤 시간이 되서 일을 가봐야만 했었다.


    사실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만은 그녀의 유골함 앞에서 시원스레 수다나 떨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그렇게 내 삶에 대해 녹녹치 않나 보다. 나는 납골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네, 일년 전에 죽은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은건가?"


    그 때였다. 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내 바로 뒤 쪽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걸걸하게 들려왔었다. 나는 놀란 나머지 순간, 움찔했고 그 목소리를 가진 정체를 알기 위해 천천히 뒷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중절모를 쓰고 세련된 블랙 슈트에 검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신사가 있었다. 게다가 중절모 옆으로 새어 나온 백발의 구레나룻은 그를 더 이국적으로 보이게 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 아니. 그것보다 할아버지는 누...... 누구시죠?"


    내 주변에 갑자기 나타난 노신사에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러자 노신사는 지팡이를 살짝 두드리며 하품을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음, 뭐가 적당할까. 그래. 너를 도와 주는 귀신이라고 하면 되겠군."


    귀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할아버지 지금 나와 장난 하나 싶었다. 컨셉을 잡으셔도 한참 잘못 잡으신 것 같았다.


    "청년. 지금 날 미친 노인네라고 생각하고 있지?"
    "아, 아닙니다! 절대로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표정 관리를 잘못 했던 모양이었다.


    "아니기는. 하기야, 그럴 지도 모르겠군.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귀신이라고 자처하는 노인네라니. 예닐곱 먹은 꼬맹이라도 분명히 치매 걸린 노인네라고 생각할구야. 암, 그렇고 말고."


    이 할아버지, 왜 이러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요양원에서 도망쳐 나오신건 아닐까. 아니면, 아는 지인분이나 가족의 유골을 보시고 큰 충격을 받으신 것은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었다.


    "그것보다는...... 납골당에는 왜 오신 겁니까?"


    내가 고개를 젓고 있는 노신사에게 물었다. 노신사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검은 지팡이를 들어서 호진이의 유골함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다 그 방향을 바꿔 나를 천천히 가리켰다.


    "자네를 도와주려고 나온거지. 청년이 딱해보여서 그랬네. 게다가 오긴 왜 와. 나는 원래부터 이 납골당에 있었다네."


    도와준다. 도와준다니 나의 어떤 면을 도와주신다는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부터 이 납골당에 계신다는건 할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그 유골이 이 곳에 이미 안치되었다는 것이라는 소리였다.


    "워...... 원래부터 여기 계셨다는 말씀은 할아버님의 유골이 이 납골당에 있으시다는 건가요?"


    할아버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유골함이 있는 오른쪽 끝 방향을 가리켰다. 그 곳으로 달려가보니, 안치형이라는 할아버님의 성함 세글자가 떡하니 새겨져 있는 유골함이 있었다.


    "이 유골함에 들어 있는 유골. 이 유골이 할아버지의 것이라고요?"
    "그렇다니깐."


    믿기지가 않았다.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유골이 자신의 것이라 칭하고 있었다. 증거가 필요했다. 왠만해서는 믿을 수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유골이 할아버지 것이라는 증거 좀 보여주시죠."
    "뭐?"


    내가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귀신이라니 말도 안되는 사실이었기에 애초에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는 지금 나에게 자신이 귀신이라는 증거 같은 것은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허허, 이 청년 보게나. 알겠어. 알겠다구."


    할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검은 지팡이를 흔들기 시작했었다.


    "뭐야?"


    내 눈 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었다. 내 굳은 신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 현실에는 공상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믿고 왔던 내 신념이, 아니 어쩌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신념이 한 순간에 초전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구한 원 모양의 녹빛 광채를 내는 물체로 바뀌었고, 그 물체로 된 할아버지는 자신의 유골함에 들어갔다가 다시 유골함에서 나와 내 앞에 나타나서 원래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를 보며 지팡이를 든 팔을 으쓱하며 올리셨다.


    나는 그 모습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뒤로 나자빠졌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어때? 이제야 믿겠나? 내가 귀신이라는 것을 말일세!"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듣기만 했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의 모습을 아랑곳 하지 않는 듯 하며 말을 이으셨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세."


    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시고는 검은 지팡이로 나를 가리켰다.


    "이미 죽은 그녀를 자네와 만나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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