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上편> http://todayhumor.com/?panic_48527
中>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릴까 하는데.....아무리 그래도 결혼식인데 하객은 있어야 되잖냐.”
“연규야. 그거 영혼결혼식이잖아.”
총각이나 처녀인 사람들이 죽으면 한이 되어 이승을 떠돌까 싶어 영혼 결혼식을 올려준단 얘기는 들어봤다.
가까운 나라에서는 총각이 죽었을 때 처녀의 시신을 구해서 합장하는 풍습도 있다고 한다.
영혼끼리 결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고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시켜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영혼결혼식'이라니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였다. 오싹하면서도 기괴한 이야기였으니까.
심각한 나하고는 다르게 연규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뜨덕였다.
“비슷하지.”
“위험한거 아니냐.....너 점점 이상해져간다. 동거니 뭐니, 그것만해도 미친놈 헛소리 같은데 무슨 결혼식이야. 너 제수씨랑 헤어질 땐 결혼은 두번 다신 안한다고 학을 뗐잖아. 재혼을 반대하는 건 아니야. 새로운 사람 만나 새가정 꾸리는 건 나도 찬성이야. 다만.......그걸 살아있는 사람하고 해야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건 아니야. 그냥 해주고 싶은거야. 영혼결혼식이나마 올려주면 이제 좀 평온을 찾지 않을까 하고."
"그 여자가 그러디? 결혼식 못 올리고 죽은게 원통하다고?"
나는 말을 마친 다음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 여자'라니. 그건 귀신이다.
"와줄거지?"
"그래. 한번 보자. 어떤 년이 너한테 찰싹 달라붙어서 가지고 노는지 내 눈으로 봐야겠어."
연규는 독설을 퍼부어도 히죽 웃었다.
"고맙다. 너는 와줄줄 알았어."
뭐, 세기의 사랑 어쩌고 하는 사연들을 재연프로그램에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이 사연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제정신인가 싶어 연규를 쳐다봤지만 진지한 표정이었다. 녀석은 일말의 거짓도 꾸밈도 없었다. 문득 이혼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이상 증세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처음 귀신 얘기를 들었을 때 녀석의 부모님께 연락을 하고 치료를 받게 해야 됐던 건지도 모른다. 마음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더이상 가볍게 넘겨선 안된다.
"언젠데?"
연규의 집은 신혼때 그대로였다.
집값 문제도 있고 제수씨의 친정과 가깝다는 이유로 시외에 신혼집을 장만했기 때문에 자주 와보지는 못했다. 두세번 정도 와 본 것 같다. 나는 현관에 들어서면서 코를 킁킁거렸다. 집마다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쿰쿰한 아저씨 냄새나 나겠지 싶었는데 의외로 묘한 향기가 훅 풍겼다. 꽃향기 비슷했는데, 방향제 냄새는 아니었다. 이런 냄새는 어디가도 맡아보지 못했다. 향기긴 향기였는데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비린냄새가 함께 풍기고 있어서 속이 조금씩 불편해지는 그런 냄새였다.
연규가 방에서 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신부를 위한 부케인 모양이었다.
신부가 저걸 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와 앉아."
"어....."
거실 한쪽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떡과 시장에서 포장해서 파는 전, 과일 등이 올라가 있었다. 결혼식 준비라 하기엔 너무나 단촐했다.
"그게 뭐냐? 제사상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어머니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하긴 그렇지. 뭐 아무럼 어떠냐. 음식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는 부산하게 움직이는 연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마치 연규 혼자 벌이고 있는 원맨쇼같았다. 녀석이 가엾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중에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서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신혼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을 녀석의 마음은 어땠을까. 말이 합의이혼이지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고 들었다. 나는 새삼 녀석의 집 풍경을 스윽 둘러 보았다. 널찍한 거실은 수납장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벽걸이tv에 서울 구경온 촌놈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비춰지고 있었다. 나는 머쓱해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 구경 좀 해도 되냐?"
"새삼스럽게. 전에 와봤잖아."
"침대 밑에 야한거 숨겨놨나 찾아보려고 그런다."
방은 두개였지만 두개 다 무척 큰 편이었다. 쪼개서 방을 세개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
나는 먼저 작은 베란다가 딸린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함께 사용했을 침대가 가장 먼저 보였다. 거실 풍경과 마찬가지로 방도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함께 사는 여자라곤 존재하는지 안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처녀귀신 뿐이니, 특유의 향긋한 화장품 냄새도 나지 않았다. 가구에는 먼지만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느 집엘 가도 하나쯤 있을 만한 자잘한 소품 하나 보이질 않았다. 혼자 자취하는 나만 해도 이런 저런 쓸데없는 것들을 가지고 와 진열을 핑계로 방치해놓고 있는데.
더이상 볼 것도 없어서 다른 방으로 가려고 돌아선 찰나였다.
"!!!!"
무언가 희끗한 게 눈앞을 스쳐갔다. 확실히 보지는 못했어도 시야에 포착되었다.
소름이 쭈뼛 돋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방금 그게 뭐였는지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참을 둘러봐도 움직이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서려는데 앞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조금 전 나를 놀라게 한 그림자의 정체는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살면서 귀신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한 내가 연규네 집이라고 해서 새삼스레 심령현상을 목격할 리는 없었다.
밖으로 나가자 연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방문을 등지고 가만히 서있었는데 내가 가까이 가도 알아차리질 못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는 녀석의 옆으로 가서 뭘 그렇게 보고 있는지 힐긋 쳐다봤다.
녀석은 분명히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동공이 풀려 있었다. 약이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멍하니 풀려있는 눈을 보자 다시 소름이 쭉 돋았다.
"뭐하고 있어?"
"어, 얘기 좀 하느라."
"........무슨 얘길?"
연규녀석은 어느새 얕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눈동자는 원래대로 돌아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누구냐고 물어보잖아. 그래서 친구라고 얘기하느라고."
"............"
"정혜씨가 와줘서 고맙대. 너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보기 드문데,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둔 내가 운이 좋대."
".......저, 연규야. 사실은."
"그럼 시작할까?"
녀석은 나를 소파에 앉게 하고 모든 조명을 껐다. 그리고 초를 켰다.
그 외에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다. 분위기는 엄숙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지루함을 느꼈다.
연규는 이미 한번 결혼식을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자기 혼자서도 척척 진행했다. 사실, 진행이라 할 것도 없는 단순한 언약식같은 거였으니까.
신부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탁상용 액자와 부케밖에 없었다. 사진 속의 여자는 꽤 예쁘장했다. 얼굴을 창백하리만치 희었고, 입술은 요염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살아있을 때 미인소리를 들었을 법한 여자였다.
"나, 최연규는 평생 한 여자만을 바라볼 것을 맹세합니다."
연규는 진지한 목소리로 맹세의 말을 이어갔다.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나는 연규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곱게 차려입은 신랑신부는 주례 앞에서 맹세했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그때가 연상되면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니, 과연 영혼결혼식인건가 싶었다.
자정무렵 시작된 결혼식은 상상했던 것보다 조용히 끝이났다.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구가 허공에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하는 따위의 소란함 없이, 아주 조용하게 끝을 알렸다.
그런데도 연규는 한결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결혼식'이란 걸 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나는 안심하는 한편 우울해졌다. 내 예상대로 귀신은 연규의 상상속에만 존재했다.
그날 연규네서 하룻밤 자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질 못했다. 귀신을 보기는 커녕 가위조차 눌리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갔다. 나는 검색해서 찾은 정신과 상담 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주머니속에서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야식을 시켜먹고 난 다음, 우리는 침대가 있는 방 대신에 거실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연규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저런 녀석한테 '네 새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란 무척 힘들었다. 옆에 다른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동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을 텐데. 단 둘이 있으려니 숨이 막혔다.
다음날 아침 녀석의 집을 떠나기 전에 당부를 했다.
"이제 그만 정신차려라, 인마. 귀신도 이제 소원풀이 했으니까 떠나겠지."
"그렇겠지."
나는 밤새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내밀지 못한 상담 전화번호를 구겨버렸다.
"이제 다 끝난거지?"
"응.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준 것 같아."
"지금 귀신 떠나면 또 외롭다고 다른 귀신 끌어들이고 그러는 거 아니냐?"
"아니야. 짜식아."
"진짜지?"
"어. 얼른 가라. 회사 지각한다."
녀석이 하하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학창시절에 봤었던 그 웃음 그대로였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녀석이 자기 입으로 이제 끝이라고 했으니까, 정신 차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설마 그게 마지막일줄이야.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배웅하던 연규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는다.
녀석에게서 연락이 온 건 한달만이었다.
녀석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는데 들려온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곧 낯익은 목소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녀석의 어머니였다. 어머님은 울먹이며 녀석의 소식을 알렸다.
'연규가....연규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어쩌면 좋니......'
'어느 병원이에요? 지금 갈게요.'
'지금 K대 병원.........장례식장이야.'
'네? 장례식장이요???'
뛰어내리긴 했어도 당연히 응급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화가 끊어진 것도 모르고 한참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실신직전인 어머님을 보았다. 어머님은 영정사진이 돼버린 아들의 입사사진을 끌어 안고 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내가 말리기만 했어도....."
"자책하지 마라. 정말 뭐에 씌여서 그랬겠지. 네 말이 들리기나 했을 것 같냐? 연규네 어머니 아버지, 동생, 형....다 알고 있었어."
"알고 계셨다고?"
"그래. 진작부터 알고 계셨다더라. 병원에 입원까지 시켰었대."
"그랬다고.....?"
"어. 그러니까 네 탓 아니다. 탓을 하려거든 그 귀신년을 탓해야지. 왜 멀쩡한 사람 끌고 저승길을 함께 간다냐. 후우.....정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사진 속 연규를 물끄러미 눈에 담았다.
이 모든 것들이 꿈이길 바라면서.
오랜만에 자취방을 찾은 미영이 뾰루퉁하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제야 미영이하고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미영은 "됐어"하며 새침하게 돌아섰다.
"장례식 갔다오는 길이야?"
"어떻게 알았어?"
"향냄새 나."
미영이가 내 옷에 코를 박고 킁킁 거렸다. 늘 무덤덤하고 무신경한 나랑은 다르게 미영이는 이런데에 예민한 편이었다. 눈치가 빠르기도 했다.
나는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와락 끌어 안았다. 숨막힌다고 등을 퍽퍽 쳐대는 주먹은 결코 귀엽지 않았지만.
내가 씻는 동안 미영은 부엌에서 간단한 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영이는 야식을 먹자마자 침대로 가서 눕는 나를 곱게 흘겨보았다. 오랜만에 온 거기 때문에 먼저 자버리긴 미안했지만, 내일 일어나는대로 장례식장에 다시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했다.
미영이도 내 옆으로 와서 누웠다.
"소금은 뿌렸어?"
"소금?"
"왜, 어른들이 그러시잖아. 장례식장에 갔다오면 소금을 뿌려야 된다고. 아프거나 임신한 사람은 장례식에 안가는 것처럼. 뭐야, 그런 얘기 한번도 안 들어봤어?"
"들어본 것 같긴 한데.....난 원래 그런데 좀 무심하잖아."
"지금이라도 뿌려."
"귀찮아."
"어어? 자는 거야? 잠들면 얼굴에 한주먹 뿌려버린다?"
"응........"
그대로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그 뒤로 기억이 없으니.
한참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미영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오빠."
나이는 한살 어리지만 웬만한 일이 아니면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 미영이었다.
나는 잠결에 "왜에...."하고 대답하며 미영이를 끌어 안았다. 품에 찰싹 달라붙은 미영이의 숨이 귀언저리를 뜨겁게 달궜다.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잠이 싹 달아났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미영이를 살펴봤다. 미영이는 뭐에 놀라서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오빠도 저거 보여?"
"응? 뭐?"
미영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내 팔을 끌어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얼굴은 아예 내 팔에 파묻고 있었다.
"저 여자..........."
"여자?"
"저기 서있는 남자 옆으로 얼굴 내밀고 있는 여자......오빠한테도 보이냐구."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