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는 우리들의 긍지이자 희망입니다!"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외침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대머리는 반짝반짝 윤이 났었다.
대머리 광장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 승인번호 AB12 대머리 민두 역시 이에 동감을 표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광장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대머리 동상이 위엄을 자랑하며 자기 자신을 뽐내며 서 있다. 동상 옆에는 대머리들의 우상이자 절대 군림자인 혁명 대머리가 다시 자신의 동지들에게 외쳤다.
"대머리는 우리들의......"
"긍지이자 희망입니다!"
혁명 대머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지들이 외쳤다. 물론 그 외침 속에 민두의 목소리도 작게 포함되어 있었다.
동지들의 우렁찬 외침에 혁명 대머리가 만족스러운 듯 턱을 한 번 쓰다듬더니 옆 쪽, 긴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 머리의 문신을 이마에 새긴 대머리를 불러서 중얼 거렸다.
"자, 어서 반(反)대머리파를 데리고 오게나!"
혁명 대머리는 동지들이 있는 광장 밑을 내려다보며 다시 외쳤다.
"자, 오늘은 반(反)대머리파의 일원 들을 처형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비열하고 역겨운 머리를 해 우리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습니다. 그에 비해 찬란한 우리의 대머리는 우리들을 태양 빛에 모두 노출되어, 윤기가 나고 보다 자신감 있게 해줍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천 개의 대머리가 그에 답하듯 환호의 외침과 빛을 반짝 거렸다.
어느 덧, 반(反)대머리파들이 밧줄이 묶인 몸을 이끌고 섬뜩한 올가미가 걸려 있는 처형대 앞으로 걸어왔다. 대머리 동지들은 그들을 보자마자 빨리 처형식을 진행하라는 심정으로 광기의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자, 이놈들이 우리 동지들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 역겨운 긴 머리들을 보십시오!"
혁명 대머리의 말에 바람이 답하듯 반(反)대머리파들의 긴 머리가 휘날렸다. 그들은 족히 삼십 명은 되는 듯 보였다.
“나쁜놈들!”
한 동지의 말에 모든 대머리들이 반대머리파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올가미에 목을 걸자 고막을 찌르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이제 죗값을 치렀습니다! 자랑스러운 대머리가 이긴 것입니다!”
혁명 대머리의 말에 광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뀐다. 민두는 처형식에 대해 좋아하지는 않아서 작은 소리로 외치기만 하였다.
그가 17살이 되던 날, 그는 ‘대머리를 존경하는 학교’를 다녔었는데 그 곳에서는 ‘자랑스러운 대머리가 되는 법’ 과목을 배우고 선생을 존경하는 법을 배웠다.
“자, 이제 넌 자랑스러운 대머리 인민이 되는 것이다.”
졸업식 날 대머리 선생이 민두에게 말했었다.
14살이 되었을 쯤 그의 부모님은 ‘대머리를 존경하는 학교’를 졸업시키고 대머리의 심화적인 생활을 가르치는 ‘대머리 심화 학교’를 입학시켰었다. 그는 거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어 우수 대머리 학생들만 준다는 ‘우수 대머리 표창장’을 받고는 수석으로 ‘대머리 대학교’에 붙게 되었었다.
현재, 그는 ‘대머리 대학교’에서 교수를 맡고 있었다.
광장에서 반(反)대머리파들의 처형식이 끝난 후, 대머리들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민두도 광장에서 벗어나,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검은색 세단을 타고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뉴스를 듣기 위해 차 안의 라디오를 켜고 음량을 맞추었다.
주파수 120Mhz. (윤기 나는 대머리를 위한 필수의 선택! 반짝 대머리!) 주파수 135Mhz. (대머리는 우리의 위상이자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혁명 대머리의 말이었다. 민두는 그가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잠시 생각하다, 뉴스가 나오는 주파수로 돌렸다. 주파수 110Mhz. (위대한 대머리들의 뉴스입니다. 오늘은 반(反)대머리파들의 사형이 있던 날입니다. 혁명 대머리님께서는 이들에게 천국으로 가게 해 주는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혁명 대머리님의 대생신이 보름 남았다는 소식입니다. 이에 대하여 대머리 인민들의 자택 곳곳에는 위대한 혁명 대머리님의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민두는 아파트 앞 주차장에 도착해 열쇠를 빼내었다. 그 바람에 여자 앵커의 말이 잘려 버렸다.
그는 세단에서 내린 후,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다른 아파트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옥상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건 선탠장이었는데 대머리를 더욱 윤택해 주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밑에는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빨간 글씨로 이렇게 써져 있었다.
혁명 대머리님이 인민들을 위해 지어주신 고귀한 모듬살이
그 간판 옆에는 혁명대머리의 생일을 맞아 빨간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창문 곳곳에는 혁명대머리의 사진을 인화시킨 빨간 깃발과 파란 깃발이 모두 꽂혀 있었다. 그는 자기 방의 창문에는 깃발이 걸려 있지 않는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침만 해도 빨간 깃발을 꽂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민두는 벌써 세단에서 혁명 대머리의 모습이 박힌 32구경 리볼버를 꺼낸 뒤 105호가 있는 4층으로 계단을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달이 뜬 밤이라서 그런지 계단에는 달빛만 새어들었다.
105호 앞에 선, 민두는 숨을 가다듬고 혁명 대머리의 모습이 박힌 열쇠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서 한 손에는 리볼버를 들고 문을 열었다. 암흑만 있어서 사물구별이 힘들었으나 그는 곧 스위치를 찾아내어 전구의 불을 켰다. 전구의 빛 때문에 식은땀이 흐르는 그이 대머리가 반짝 빛이 났다.
그는 먼저 침실로 들어가 스위치를 눌러 방 안을 살펴보았다. 혁명 대머리가 박혀 있는 로고가 과자며 컴퓨터며 침대며 모든 물건에 있었다. 화장실의 스위치 전원을 켰다. 그 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민두는 화장실의 문을 닫고 부엌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때, 창고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거실을 지나 창고 문을 열고 스위치를 눌렀다.
“어라, 이게 왜 안 켜지지?”
며칠 전부터 창고의 불이 나간 전구를 바꾸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오늘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다용도실로 들어가서, 역시나 혁명대머리 로고가 박힌 플래시를 찾아내어 창고로 돌아와 플래시의 전원을 켰다.
빛은 어떤 상자를 쫓다, 깨어져 있는 분필을 쫓았다. 그가 플래시를 놀리고 있을 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창문이 있는 오른쪽 구석에서 들렸다.
“거기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이제 창문 밑에는 어떤 그림자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발포 하겠다!”
당황한 민두는 모르고 창문에 총을 쏘아버렸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창고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가 소리를 듣기도 전에 무엇인가에 머리를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바람에 왼손에 쥐고 있던 32구경 리볼버를 놓치고 말았었다.
민두는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서 정신이 혼미했다. 주위를 살폈더니 온통 암흑 밖에 없었다. 그 때, 암흑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다.
“정신이 드나? 일단 머리를 후려친 건 미안하다. 가뜩이나 대머리인데.”
알 수 없는 목소리를 갖고 있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궁금해 하던 그는 정신이 아찔한 머릿속에서 상상해보았다.
‘이 사람은 먼저 나와 적일 확률이 높다. 저돌적인 말투로 보아서 대머리파일 가능성이 적다. 그럼 설마, 반(反)대머리파라는 소리인가? 아니다. 일단 이 가능성은 접어두도록 하자. 이 사람이 나의 머리를 치고 내 집에 침입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자......’
“일단 내 소개를 하지. 난 반(反)대머리파 검은깨라고 한다.”
‘아 이런! 설마가 현실이라니!’
“그렇군. 그래! 그럼, 나를 때린 이유와 집에 무단 침입을 한 이유가 무엇이지?”
검은 깨는 흥분된 목소리에 진정하라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자, 진정해. 당신의 적은 내가 아니야. 일단 너의 직업은 ‘대머리 대학교’의 교수군. 그리고 너는 ‘혁명 대머리님이 인민들을 위해 지어주신 고귀한 모듬살이‘ 105호에 살고 있군.”
“그렇다면......”
민두가 설마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 그래. 당신은 우리 반(反)대머리파에게 대머리 놈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어.”
검은깨는 민두의 대머리를 쓰다듬고는 잠시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그랬더니 암흑이 온통 빛으로 바뀌었다. 민두는 갑작스러운 빛에 동공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동공에 주위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그의 동공에는 검은깨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이름 그대로 얼굴에는 주근깨와 여드름이 알알이 박혀 있어 흉측해보였다. 검은 깨 옆에는 별 이상한 머리를 한 귀 큰 남자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간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붉은 색으로 이렇게 써져 있었다.
혁명 대머리? 웃기는 군! 빡빡이 주제에!
민두는 분한 감정을 넘쳐 노하고 있었다. 평소에 혁명 대머리의 행동 방식에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에 대한 욕을 써놓은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아니! 어떻게 위대한 혁명대머리님을 욕할 수 있지? 이 개만도......”
“입 다물어. 혁명 대머리는 개뿔! 그 놈은 독재정치만 몇 십년 넘게 해왔어! 말로만 위대해 보이지. 그 놈은 죽어야해!”
곱실 거리는 머리에 키가 큰 남성이 말했었다. 검은 깨는 손을 들어 제지하고 또박또박 말하였다.
“이보게나. 자네는 지금까지 환상 속에서 살아왔어.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도 대머리에 관한 것이라고! 아니, 지금 이 세계는 대머리에 관한 것만 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미친 것이지! 자네는 이게 왜 그런 줄 아나?”
그 말을 끝으로 아까 그 남자가 주머니에서 텔레비전 수상기 비슷한 걸 꺼내어서 검은 깨의 손에 넘겼다. 그 크기는 손바닥 안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 작은 수상기에는 혁명대머리의 로고가 찍혀 있지 않았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아나?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 물론 대머리들 세계에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것들은 죄다 빌어먹을 혁명대머리 로고가 박힌 것뿐이지! 한 낱 기계에 불과한 이것도 자기의 순수함이 있단 말이다!”
스마트폰에는 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빛이 민두의 동공에 들어왔다. 그가 본 첫 장면은 인큐베이터 속에 있는 아기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너희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화면이다.”
검은 깨의 쭈글쭈글한 손가락이 화면 속 인큐베이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기는 잠시 후 어떤 중년에게 안겨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아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민두가 궁금해 하며 검은깨에게 물었다.
“이제 알게 될 것이야.”
아기는 어떤 밝은 장소에서 중년 여성의 품 안에 있다가 빛을 발하는 원 속으로 들어갔다. 몸이 아니라 머리 부분만 들어갔다.
“뭐하는 짓이야!”
당황한 민두는 몸을 떨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검은 깨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이른 바, 모공 제거 수술이라고 하는 것이지.”
“모공 제거 수술이라고?”
“머리카락을 평생 기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대머리로 살아가게 하는 짓이란 말이다!”
민두의 대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러 콧등을 지나 턱밑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우리들은 태초부터 대머리였단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거야.”
검은깨는 웃긴다는 듯이 비웃음을 지었다.
“이거, 이거. 빡빡이들의 세뇌교육이 너무 잘 되어 있는군. 정말 놀라워!”
검은깨는 감탄을 하며 빨리 감기 버튼을 눌렀다. 그랬더니 화면 속의 아기는 급속히 성장해 7살이 된 모습이 되었다. 화면 속에는 학교의 모습이 나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7살이 있었다.
(검두! 대머리의 삼계명을 말해 보거라!)
대머리 남선생이 혁명대머리의 사진이 걸려있는 교탁 앞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키 작은 대머리가 일어났다.
(넵! 대머리의 삼계명은 첫째, 대머리로서 혁명 대머리님을 존경하는 것. 둘째, 대머리로서 혁명 대머리님을 사랑하는 것. 셋째, 대머리로서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훌륭하군. 훌륭해!)
검은깨의 검지가 빨리 감기버튼을 다시 한 번 눌렀다. 그러자 7살은 16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머리는 우리들의 긍지
우리들은 혁명대머리님의 동지
대머리는 찬란한 것
대머리는 위대한 것
우리들도 혁명대머리님을 본받자
대머리는 인민들의 우상
인민들은 혁명대머리님의 긍지
대머리는 찬란한 것
대머리는 위대한 것
우리들도 혁명대머리님을 본받자
16살의 대머리는 합창단에서 세련된 인민복을 입고 합창한다. 앞에는 열정적인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고서는 현란한 움직임을 표한다.
관객석에는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 혁명대머리의 모습이 보인다.
"끔찍한 꿈이었군."
40대의 중년 남성은 우지끈 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안 돼!"
졸린 눈으로 거울을 보던 중년 남성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머리를 더듬거린다.
"이럴수가!"
중년 남성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풀썩 주저 앉는다.
"내가 대머리가 되었다니...... 마지막 머리카락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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