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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내가 무릎을 꿇자 철민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뭔데 그래? 우슨 안으로 들어와.."
나는 부축받듯이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번역본이 없다면 ..
미련도 별로 없었다.
"...."
한참을 조용히 듣던 철민이는 내가 설명을 다 마치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번역본이 있어"
나는 나도 모르게 철민이의 손을 움켜잡을 뻔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건 철민이기 때문에 섯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그런데 너.. 정말 해볼생각인거야? 너는 원래..."
"알아.. 철민아.. 그런데.. 방법이.. 다른방법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철민이를 바라보았다.
"....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철민이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부들부들'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살릴수도 있다는 환희인지, 다른 무엇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참이 지나도 철민이는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참지 못하고 서재로 따라 들어가려는 찰나, 철민이가
서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에는 연습장 몇권과, 어떤 물건이 들려있었다.
"이건.. 뭐야?"
"아.. 내가 이 책을 번역하다가 말야.. 주술사들이 의식에 쓰는
단검이 있다고 하는걸 봤거든.. 실제로 쓰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나서 우연히 골동품점에서 발견해서는.. 사서 가지고 있었어."
".... 크흑.. 철민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런짓을 했던 나에게.. 도움을 주다니...
나에게 책과 단검을 건네주다 말고 철민이는 말을 하였다.
"네가 워낙 그러니까 준다마는.. 이제 너와 나는 모르는사이다"
... 그렇다 내가 책을 보고 따라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범죄일것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하지는 않길 바란다... "
이 책의 내용을 알고있는 철민이가 냉정하게 쳐다보며 말하자
나는 일순 움츠러 들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아.. 알았어. 아무튼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으마.."
어짜피 이게 없었으면 곧 없어질 목숨이었다.
나는 번역본을 꽉 쥐고 차로 향했다.
.
.
.
그 책의 내용은 내 생각보다도 훨신 이상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나를 죄어오는건 시간이었다.
필요한 물품을 거의 다 모으는데 이틀이 꼬박 걸렸다.
그나마도 돈을 엄청나게 뿌려댄 결과였다.
"자.. 그럼.. 이걸 그리고..."
사실 의식 자체는 간단했다.
책에있는대로 어떤 주문식같은 것을 따라그리고나서,
그 위에 시체를 놓고, 예의 그 단검을 박아넣은 제물을 옆에 놔두고
밀실을 만들어 주면.. 되는것이다.
단지 그에 해당하는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갓잡은 닭의 생 피를 물감으로 쓴다던지, 제물에게는 동물의 내장과 여러
향신료, 독이 뒤섞인 걸죽한 스프를 먹여야 했다.
사실 여러가지 의문점이 마구 샘솟았지만 의구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친뒤, 우리에 들어있던 토끼 한마리를 꺼냈다.
우선 주사기를 꺼내 스프를 한가득 머금었다. 그리고나서 토끼에게 천천히
먹이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했다.
여러가지 독이 들어있을뿐더러, 정체를 알수 없는 액체였으니까..
어느정도 스프를 먹이자 토끼를 잠시 발광을 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그리고 나서 받은 단검을 주워들었다.
손잡이가 마치 태아처럼생긴.. 섬뜩하고 뭉툭한 단검이었다.
그것을 토끼에게 찔어넣은후, 사랑하는 그녀 곁에 놔두었다.
"...."
우선 일차적인 준비는 다 끝났다.
긴장의 끈이 조금 풀렸을까.
'내가.. 왜 이런걸 하고 있지?'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서.
하지만 그것은 물에 빠졌을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랄까.
막상 준비를 마치고 방안의 모습을 보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물에 빠져서 지푸라기를 잡다가 결국 물속 깊에 빠져들어가는 사람처럼..
"욱..."
갑자기 토악질이 밀려왔다.
나는 급히 방을 나와서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웨엑...!!!"
최근 먹은것이 없어 위액만 계속 흘러나왔지만, 토악질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변기를 붙잡고 있다가 일어났을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까드득.. 까드득..."
반사적으로 그녀가 있는 방쪽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문은 닫혀있었다.
'내가 문을 닫고 나왔었나?'
라는 생각을 할 정신도 없었다.
온갖 생각이 머리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설마... 설마....'
책에서 말하길 밀실이 된 후 1시간 후에는 들어가도 좋다고 나와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거실로 나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알수없는 환희와 두려움이 속이 아프다는것은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다.
이윽고 한시간이 지나고,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가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맙소사...'
토끼는 온데간데 사라져있었다.
그 자리엔 단지 피자국이 있을뿐.
그 피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그녀의 입이 보였다.
'하....하하하하.....'
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정말.. 정말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게 사실이라는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 책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러고 있을대가 아니야'
나는 서둘러 외출준비를 한 후에 차 키를 잡았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하고, 잡기 힘든 제물을 잡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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