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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오르자 다시 취기가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짝! 짝!"
아직 알딸딸한 기운을 떨쳐내고자 뺨을 두번세게 쳤다.
얼얼한 느낌이 밀려오자 조금 정신이 맑이지는듯 했다.
"....."
휴대폰을 잡고 자그시 바라보던 나는, 다시 휴대폰을 보조석에 던져놓고
시동을 걸었다.
김철민...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이런저런 짓들을 많이도 했었다.
부유한 가정, 왕성한 호기심등.. 조건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우리는 통하는 것이 많았고, 그것으로 인해 첫만남부터 십년지기 친구처럼
친해져서는 항상 붙어다녔다.
철민이의 아버지는 무역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거의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어릴때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그게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 역시 부보님 두분이 거의 외국에 나가 계시기 때문에 철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철민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랑 틀렸던 점은 집에 어쩌다가 올때는 자신이 수집하는
고서를 몇 박스나 가지고 온다는 점이었다.
철민의 집은 나와 마찬가지로 2층으로 된 주택이었는데, 서재만큼은 2층까지
뚫려있는 구조로 아주 컸다. 그 큰 서재를 책들이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2층높이까지 책이 쌓여있기에 위에 있는 책을 보기 위해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난 그날도 철민이의 집에서 둘이 아버지의 양주를 몰래 따서는 홀짝홀짝 먹다가
심심해서 서재로 들어섰다.
"야.. 이건 언제봐도 정말 장관이다.. 언제 이렇게 모으셨대냐.."
"어휴.. 물어보는게 벌써 몇번째냐? 그래봐야 읽을것도 별로 없는데 뭐"
말 그대로 세계 곳곳의 고서들이 모여있는 책장이기에 우리 읽을만한 책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가끔씩 책을 뒤지다 보면 그림만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책도 간간히 있었다. 방중술 따위의.. 그리고 난 그 서재가 웬지 마음에 들었으므로
자주 들어오는 편이었다.
"흐음.. 오늘은 저 위에 칸을 검사해 보실까?"
난 눈에 띈 책장을 보며 사다리를 가져와 올라갔다.
철민이 녀석은 이런 내 행동을 하도 봐서 질리는지 딴짓을 하고 있었다.
"....어? 이건 뭐지.."
천천히 책장의 책들을 둘러보던 나는 기묘한 책을 발견했다.
책표지가 붉은 색이었는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붉은색이 아니었다.
무언가 기묘한.. 난 그 기분에 이끌려 그 책을 꺼내 들었다.
'흠칫'
그 책의 표지는 가죽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냥 일반 가죽이 아니었다.
뭔가 폭신폭신한.. 한번도 만져본적 없는 가죽이었다.
"철민아~ 이거봐봐"
난 딴짓을 하고 있던 철민을 불렀다.
"야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음.. 글쎄.. "
"이거 봐봐.. 가죽도 좀 특이하고.. 이 빨간색도 특이하잖아.. 히히'
기묘한 느낌.. 그것은 불안함과 호기심이 섞인 것이리라.
나이가 나이인 만큼 호기심이 앞선 나는 농담을 섞어 철민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아무래도 책에 써있는 문자는 영어도 아니고,
알아볼 수 없는 언어였다.
"야 근데 이거 어느나라 말이냐.. 알아볼수가 없네"
"흠.. 이거 프랑스어 같은데.."
"오~ 잘됬다. 너 제2외국어 불어잖아~ 한번 읽어보자~ 흐흐"
난 워낙 오컬트나 괴담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 책이 나에게
즐거움을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구나 영어가 아니라 읽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침 철민이
공부하고 있는 프랑스어라니.. 더 기분이 좋았다.
"음.. 잠깐만 있어봐"
철민은 금세 호기심이 동했는지 프랑스어 사전을 가지러 갔다.
난 그 사이에 책을 대충 넘기며 구경을 했는데, 책 사이사이의
그림속의 사람들은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좀비같은...
'뭐야.. 옛날에도 공포소설 같은게 있었나보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동안 철민은 어느덧 사전을 가지고 와선
내 옆에 앉았다.
"자 이리 줘봐"
철민은 이내 집중을 해서는 정신없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난 철민이 이런식으로 집중하면 몇시간이고 꿈쩍 않는걸 알기 때문에
잠시 시켜보다 거실로 나왔다.
이번에는 어떤 재밌는 내용이 나올지 기대하며..
얼마나 지낫을까..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나는 서재에서 나오는 철민을 발견했다.
시계를 보니 한시간이 채 안지난 시간이었다.
"철민아 잘 안돼?"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는 것은 일찍 끝났거나, 잘 안되었거나 둘중에 하나일텐데,
프랑스어를 생각보다 일찍 번역했을리가 없으므로 나는 이렇게 물었다.
"응.. 앞에 조금밖에 번역못하긴 했지만.. 한번 볼래?"
난 OK를 외치며 서재로 쪼르르 달려갔다.
번역한 것을 보니 한시간을 매달린것 치고는 분량이 없어보였다.
내 눈빛에서 그 생각을 읽은듯, 철민은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이게 프랑스어이긴 한데.. 뭔가 좀 이상해.. 오래되서 그런지.."
머쓱하게 웃는 철민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번역을 한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완벽한 문장이라기보단 해석이 된 단어 위주로 말을 짜맞추어
놓은듯 했다.
이것은... 아이티... 일주일안에.. 시체.. 주술... 소생...방법...
소생?
"야 그럼 이거.."
철민은 눈빛을 빛내며 내 말을 받았다.
"그래, 이거.. 소생술을 알려주는 교본같아"
난 아까 전에 보았던 삽화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래.. 좀비같은것들.. 그게 시체 였나?
"아.. 바보같아"
원래 괴담이란 즐길수 있는 한도내에서 즐겨야 재밌는 법이다.
괴담을 해주는데 강의처럼 해준다면 과연 재미가 있을까.
이내 흥미가 떨어진 나는 말을 돌렸다.
"그런데.. 아이티?"
"응, 아마 프랑스의 식민지 였던 모양인데.. 그쪽에 이런 주술이
발전해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서 책으로 만들어
진것 같아"
"에휴.. 이걸보느니 차라리 좀비영화를 몇편보는게 낫겠다"
"그래? 난 재미있을것 같은데.."
"아 됐고, 우리 다른거나 하자"
내가 고집을 부려 이내 서재를 정리하곤 또다른 것을 하러 갔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많은 것이 비슷했기에 친해졌지만..
비슷해선 안되는 것이 겹쳐버렸다.
바로 이상형이었다.
철민은 내가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를 오랜동안 짝사랑했던 모양이다.
결국 내 여자친구는 철민에게 가버렸고,
그것을 나에게 조용히 고백하던 철민을 한대 후려치고는 내 앞에서
사라지라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 지금 그녀에 비한 내 마음에 비하자면, 먼지같은 사랑이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그게 정말 화가 났었고,
매일 붙어다니듯이 친했던 우정은 균열 하나로 인해 붕괴되고 말았다.
다시 철민을 보게 된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미친듯이 문을 두드려 대는 어떤놈때문에 밖에 나가보니,
철민이 울부짖듯이 말했다.
내 여자친구였던 여자.. 아니 철민의 부인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심하게 다쳤는데, 7일이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평생 장애인으로 살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
난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을듯이 이야기하는 철민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과연 그 액수는 상당히 많았다. 철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친구에게 얼핏 듣기로는 가업이 좀 기울어져 다른 재산도 모두 정리했고
남은 것은 집뿐이라고 했으니.. 아마 그 금액을 만들수 없었으리라.
"제발.. 부탁이다.. 동욱아..."
사실 우리집은 그 사이에도 꾸준히 재산을 늘려왔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그순간,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너의 부인..? 내 여자였는데.. 네가 뺏어간 여자잖아...!!!
"미안하다. 요새 우리집도 사정이 좀 안좋아서.."
난 귀찮다는듯이 날 붙잡고 있는 철민을 떼어내고는 이내 문을 닫아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후 나는 우연히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현재까지 다다른 것이다.
"......."
"끼익"
과거를 추억하다 보니 어느덧 철민의 집에 도착했다.
10여년만에 찾은 철민의 집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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