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시판] 위병소 담장의 비밀
공포게시판을 보다가 문득 나도 군생활 하다가 겪은 실제 이야기가 있어 써본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실제 내가 겪은 실화임을 먼저 알린다.
나는 2003년경 9사단 박격포 소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내가 있던 1대대는 사면이 천주교 공동묘지로 둘러싸인 희한한 곳이었다.
위병소 앞에는 작은 차도가 길게 있고 그 옆에는 산이 있었다.
멀리 차도 끝에는 큰 미루나무가 있고 바로 뒤에 안 쓰는 담장이 서 있었다.
내가 복무하던 당시는 마침 구타 금지가 시작된 때라 반대로 언어폭력이 장난 아니게 심했다.
또 군생활이 2년 2개월에서 2년으로 줄어가던 때라서 줄고 나서 입대하려는 애들 땜에 신병도 안 들어 왔다.
따라서 소대에서는 이등병이 들어오면 완전 갈구려고 벼르고 있던 터였다.
2004년 겨울이 되자 드디어 이등병 2명이 들어왔고 소대원들은 원래 100일 휴가 다녀올 때 까지는 갈구지 않는 원칙을 깨고 이등병을 갈궜다.
100일 휴가 가서 미복귀하는 이등병이 있기 때문에 100일 휴가 전 까지는 텔레비전만 보게 하지만 중대에 일병이 없는 터라 이등병 갈구기가 심했다.
처음부터 교통사고 때문에 대퇴부 뼈가 부서졌다며 가부좌를 못 트는 원이병은 갈굼의 대상이었다.
결국 100일 휴가 나갔던 원이병이 안 들어 왔고 우리는 원이병을 잡으러 나갔지만 못 잡았다.
말년이던 권병장은 “이등병이 엿 지대로 먹이네. AB형은 탈영하면 죽어도 안 잡혀.”라고 투덜댔다.
그 후 어느 날 정말 추운 새벽에 나는 말년 권병장과 위병소에 야간근무를 나갔다.
위병소에 가 보니 전번 근무자인 정상병과 임병장이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미루나무아래에 누군가 앉아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보고해 놨다며 알아서 하란 듯 허겁지겁 돌아갔다.
말년 권병장과 나는 뭘까 하고 있는데 근무가 끝날 즈음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소리인가 싶어 야간투시경으로 보니 미루나무아래에 웬 군인이 쭈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앉아 있었는데 얼굴에 형상이 없어 보였다.
신음 소리가 계속 들리자 말년 권병장과 나는 너무 떨었고, 근무 끝나고 나서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그 후 새벽 3시에서 4시에 위병소에서 얼굴 없는 군인을 본 사람들이 늘어나고 위병소 새벽 근무를 피하는 사람이 많아 말년 권병장의 요구로 결국 짬밥 안되는 박상병이 새로 온 이이병과 함께 새벽 3시 4시 근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속으로 빡 돌던 박상병이 이이병을 시켜서 미루나무를 확인해 보고 오라고 했고 그 다음날 점호 후 이이병은 전투화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그것 때문에 사단 헌병대에서 감사도 나와 괴롭기도 했지만 결국 김일병은 가혹행위로 육군교도소에서 수감돼서 군생활 이등병부터 다시 하게 됐다.
그 후 새벽에 나타나는 얼굴 없는 군인을 잡으려고 5분대기조까지 매복해서 있었음에도 그때마다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얼굴 없는 군인은 위병소에 딱 2명이 있을 때만 나타나곤 했다.
때문에 근무자 들은 떨었고 어이없어 하던 대대장님께서 “말년 뺑끼 쓰려고 그런 소문 만들면 영창 갈 줄 알아.”라며 농담을 했고, 직접 확인 하기 위해 위병조장 대신 위병소에서 잤다.
다음날 대대장은 격심하게 화를 내며 미루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했고, 그날 낮에 말년 권병장은 미루나무를 베고 나서야 집으로 전역했다.
하지만 얼굴 없는 군인은 미루나무가 없어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계속 목격되는 바람에 새로 오는 신병들은 취사병이나 이라크 파병에 지원해서 소대를 나가버렸다.
얼마 안가 대대장이 바뀌었다.
새로 온 대대장은 착시현상이라며 미루나무 뒤 산에 있던 보루코 담장도 철거하라고 했다.
그래서 담장을 뜯으러 나갔는데 보루코가 장난 아니게 많았다.
그때 함께 간 송하사가 나한테, “김병장, 보루코 하나하나 언제 다 뜯냐? 담장 밑에 얇게 땅을 파고 거기다 담장을 넘어뜨려 흙으로 덮어.”라고 지시했다.
나는 지시대로 담장 밑을 파다가 전투화가 나와서 옆에 찍힌 제조 년도를 보니 04년 거였다.
가끔 부대 안 땅을 파다 보면 96년 같은 폐급 전투화가 나오긴 하는데 이건 첨 봤다.
나는 이상한 느낌에 더 파보려 했지만 송하사가 그냥 담장을 위에 넘어뜨리고 묻었다.
하지만 담장까지 치웠어도 얼굴 없는 군인은 계속 목격 되었고, 자살한 이이병을 위해 돼지고기 삶아 놓고 굿까지 벌였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그 후 상당히 어수선한 부대에서 나는 무사히 전역했다.
전역 후 3년 뒤에 나는 정상병을 통해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박상병은 이이병이 자살하기 전날 새벽 3시에 같이 야간근무를 하다가 이이병에게 미루나무 아래에 가서 귀신을 확인해 오라고 했다.
이이병이 미루나무 아래에 갔다가 갑자기 담장이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가기에 근무지를 이탈하여 탈영한다고 생각했다.
30분만 더 기다려도 안 돌아오면 상부에 보고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30분 후 이이병이 빙의에 걸린듯한 창백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이병은 총구를 자신에게 겨눈 상태로 다리를 절고 있었고 엄마가 아프다, 휴가를 보내달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박상병은 너무 무서워서, 정신차리라고 자기 총으로 이이병의 화이바를 내리쳤다.
이 일로 이이병이 자살 후 박상병은 폭행죄로 육군교도소를 갔지만 박상병은 폭행한 것이 아니며 이이병이 얼굴 없는 군인귀신이 씌어서 자살했다고 진술했다.
사회에서 만난 박상병은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길 바랬다.
얼굴 없는 귀신 때문에 부대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 자살한 병사가 2명 더 생기자 결국 부대는 다른 연대로 이사를 했다.
부대가 있던 자리에는 프레임 공장이 들어섰는데, 땅에 그대로 파묻은 담장을 다시 꺼내서 치우던 과정에서 탈영한 줄 알았던 원이병의 사체가 나왔고, 조사결과 야삽으로 안면부를 심하게 맞아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누가 원이병을 살해한 것일까?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