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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danzi.com/ddanziNews/1806802 (딴지일보)
2013. 12. 19.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지난 대선을 지나며 우원은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대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ㅂㄱ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걸까. 이 여성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과 나이에 비해 피부관리를 잘 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다. 정치를 시작한지 오래 되지도 않았고 실제적인 사회 경험이 없으니 능력이 검증된 바도 없는 데다가 이 나라에서는 명백한 마이너리티인 여자이기까지 하다. 상황이 이런데 아무리 향수니 뭐니 해도 일국의 대통령으로까지 뽑는 게 말이 되냐는 거다.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하니 뒷북치고 앉았다는 열분들의 투덜거림이 들린다. 안다 알아. 젊어서 고아가 되고 황궁에서 내쫒긴 공주님에 대한 동정심, 기득권 세력과 조중동의 계략과 모략, 종북 음모론의 창궐, 침묵과 무위로 일관한 본인의 천재적 이미지 관리 등이 다 맞아 떨어진 결과다. 그런데 그게 다였을까?
물론 더 있다. 나이 먹고 무식하고 가진 것도 없는 꼰대들이 세상이 리버럴해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던 게지. 노무현같은 고졸이 대통령이 되는 꼴도 아니꼽고, 평생 믿어왔던 수구적 가치를 공고히 할려고 지들은 기득권층도 아닌 주제에 대단결을 이뤄 낸 거지.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말이다, 걍 그렇게 생각하고 끝내 버리기에는 좀 찜찜한 게 있지 않냐는 거다. 실은 그 ‘꼰대’ 세대도 4.19, 부마, 서울의 봄, 광주, 6,10을 다 겪은 이들이라는 점 말이다. 사실 긴 세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일궈 낸 주역은 우리가 아니라 최소 40대 후반부터 70대 까지인 ‘그들’ 이다. 심지어 과거 신세대의 대명사였던 386도 이제 슬슬 그 또래에 들어서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민주화 역사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의 역사고, 우리 대부분은 막판에 잠깐 끼어들었거나 그저 그 열매를 얻어 먹으며 자랐을 뿐이다.
근데 그래 놓고 이 어른들은 왜 변절한 건지, 그 생각을 좀 해 보잔 말이지.
지금보다도 훨씬 엄혹한 시절에 목숨을 걸고 거리에 나선 이들,
그들이 바로 지금 박근혜를 뽑은 꼰대들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지금의 현상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불가능할 터.
일단 인정하자. 그들 대부분이 ㅂㄱㄴ를 대통령으로 뽑은 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부터. 그들 자신조차 그녀가 신묘한 능력을 발휘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이 나라를 영광된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 놓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거다. ㅂㄱㄴ가 되면 자기한테 이득이 될거라는 계산을 한 이도 그리 많지는 않다. 단지 감정으로 뽑은 거고 원래 이런 것에는 복잡한 설명이 의미가 없는 법이다.
다만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의문은 이거다. 그 사랑은 정확히 뭘 향한 걸까. ㅂㄱㄴ라는 피부 좋은 미혼 여성? 비운에 간 조국 근대화의 영웅과 ‘금오산 혈통’을 이어받은 그 장녀? 머 당연히 그런 것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그 긴 세월을 지나 이제 와서 이러는 걸 보면 뭔가 다른 게 또 숨어 있을 거다.
그건 뭘까.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넘어, 독재에 대한 용서를 넘어 생전에도 드물었던 개인의 반신반인 우상화에 다다르게 만든, 그리하여 결국 30년 세월을 격한 세습마저 가능하게 한 그 사랑이 찾아가는 진짜 종착점은.
…그건 다름아닌, 그들 자신의 청춘이다.
신장 5미터의 거인.
원래는 좌대 높이 2.7 미터 포함해 전체 크기 10.7 미터로 만들 예정이었지만
김일성 동상과 똑같다고 욕 먹고 줄였다. 아래는 원 안과 김일성 상과의 비교.
이런 모습들이 단지 약삭빠른 자들이 ㅂㄱㄴ 에게 아부하기 위해 벌이는
행태라고만 여긴다면 그거야말로 착각이다. 저들의 맘은 사람들이
반대쪽 사람들의 노무현에 대한 공감과 애정 이상으로 진심이다.
지금 6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 사이는 1963년부터 79년까지의 박정희 집권기에 20대와 30대의 한창 때를 지낸 세대다. 당시에는 대학가는 사람이 드물었으니 그 또는 그녀는 아마 신발공장의 여공이던가 철공소의 시다던가, 운이 좀 좋았다면 작은 회사에서 펜대 정도 잡고 있었을 거다. 그들은 쥐꼬리만한 임금을 위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노동량을 감내해야 했고, 권위적인 고용주와 상사의 전횡, 폭력, 성추행과 성희롱에 시달렸으며,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하인처럼 집안일과 잔심부름에도 군말없이 나서야 했다.
그렇게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여유를 추구할 돈도 시간도 기회도 없이 미친 듯 일만 했던, 영육의 고통과 압박에 시달리며 부모님 부양하고 어린 동생들 공부시킨 세대들이 점점 늙어 이제 노년에 이른다. 사회적으로 이들은 착취당한 노동계급이며 개발독재에 희생된 세대고, 90년대 민주화 시대 이후 그런 모습으로 정의되어 왔다.
하지만 실상이 어찌 되었건, 그들은 당대에는 ‘산업역군’으로 불렸었다. 주말도 없이 하루 18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진폐증에 걸리고 허리가 휘고 불임이 될지언정, 납기를 맞추고 회사가 커지고 수출이 증대되고 GDP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걸 실시간으로 지켜 보던 세대가 또한 그들이었던 거다.
그럼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가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아냈다면 지금 어떻게 기억되고 싶을까. 정부에 속고 부자에 이용당하고 고용주에 착취당한 불쌍한 노동계급의 일원일까, 아니면 박정희를 리더로 함께 희생하며 이 나라의 부흥을 이끌어낸 산업화와 근대화의 이름없는 영웅일까.
그 당시에야 불만도 많고 부조리도 많이 느꼈지만 머 이제는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사형당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해 분개했지만, 그것도 결국은 남의 일일 뿐이다. 나는 내 한번 뿐인 젊음을 바쳐 열심히 일했고 그 시대 그 곳에는 박정희라는, 헤진 난닝구에 늘어난 허리띠를 두르며 솔선수범하는 캡틴이 있었다. 그와 나, 우리는 그렇게 ‘동지’로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청춘을 불사르고 목숨을 바친 거다.
이제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들은 자신의 젊은 날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거다. 안 그렇겠냐?
우리 그때 같이 열심히 일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좋았던 때였습니다.
물론 이런 감상은 상당부분 청춘이라는 다시 오지 않는 시기의 향수와 오버랩된 노년의 환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미화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을 마냥 비난만 하기는 어렵다. 생각해 보면 그 시대의 끝과 민주화 시대의 시작은 불과 10여년 정도 차이날 뿐이다. 너무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중요한 가치들이 뒤바뀌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가 뭔지 모른채 나날이 변하는 옳음과 그름을 눈치 봐 가면서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그나마 젊음의 불길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때라면 개인사를 부정하면서라도 세상이 나아진다는 데 더 큰 희망을 걸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힘없는 노인이 돼 가면서는, 게다가 핵가족화 등 예상치 못한 변화로 사회와 가정에서 대접조차 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 시절을 불의가 난무하는 독재 시대로, 박정희의 죽음을 거악이 쓰러진 경사로, 나를 유린당한 순진무식한 노동자로 재정의한 민주화 시대가 내게 남겨 준 것은 대체 뭐냐…?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면 이제 분노와 회한, 고집이 생긴다. 내가 젊어서 살아낸 세상을 몽땅 부정한 시대가 바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15년 아니던가. 내가 하지 못한 공부와 갖지 못한 기회를, 나의 피땀을 통해서 쉽게 얻은 자들이 그 잘난 척 하던 386부터 지금까지의 세대 아닌가. 이 나라의 역사 속에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민주화라는 거대한 명분과 흐름 속에서 이런 개인적인 상실감을 구체화하거나 표면화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물꼬를 이제 ‘종북’이라는 개념이 확 터 준 거다. 지금은 물론이고 옛날의 노무현 김대중, 그리고 그 시대의 바탕을 만들었던 운동권, 재야, 386 학생 등이 전부 종북 빨갱이였다는 거잖아? 순수한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더니 우리가 그 세월 동안 속은 거구나!
이제 그들은 대 반전의 흥분에 빠져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거다.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일이 남아 있었군. 저것들을 무찌르고 이제 내 자리를 도로 찾아야겠어.
그래서 이런 애도 종북이란다.
이렇게 이제 일종의 어버이연합적 마인드가 아래 연령으로 내려오면서 대중적으로 확산돼 나간다. 그렇다고 가스통 들고 난리 칠 열정까진 없지만, 젊음을 바친 리더의 21세기적 현현인 금오산 혈통에 한 표를 행사함으로서 내 청춘에 존중을 표할 수는 있다. 설사 그 시절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건 아니더라도 자칫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 보단 낫다는 명분도 있다. 더불어 그 시절과 함께 했던 내 인생도 이제 복권되는 거고.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다카키 마사오를 까발리고 ㅂㄱㄴ의 자격 없음과 무능을 성토해도 전혀 먹혀들 수가 없는 거다. 아니, 까발리고 깔수록 애정은 되려 강해지는데 이유는 이 사람들이 박정희와 그 언저리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논리적으로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해 봐야 감정만 더 상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모습을 '노인네 괴팍'이라고 마냥 몰아붙이는 것도 좀 부당한 면이 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이 과거에 정체성을 의탁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것, 그리고 노무현의 당선 전후로 노년층의 주장이나 감성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점, 또 명퇴 등 중년과 노년들의 가정적, 사회적 불안감이 그간 크게 가중된 것 등 여러 문제들이 중장기적으로 겹쳐서 그들을 흔들어 놨고, 여기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 놓기는커녕 제대로 감싸주는 이도 없었던 게 사실이니 말이다.
정리해 말하자면, 지금의 금오산 혈통에 대한 감정적인 애정과 선호는 결국 번개같이 변화돼 온 이 사회에서 그들 세대의 소외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된다. 이런 소외에 대해 우리가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민주화 시대를 역행할 정도로 강한 정치적 힘의 형태로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기실 이런 그들의 심리 자체는 인간적이고 소박한 것에 가깝지만, 문제는 기왕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이해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들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ㅂㄱㄴ 라는 상징물과 종북 이데올로기를 동원,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조장하고 조작하면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예전 이인제가 내던 박정희 흉내는 그저 유치한 향수 놀이에 가까울 뿐이었다. 이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지한 숭배의 형태로 바뀔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지점에는 고연령층의 심리를 예민하게 읽은 수구기득권 세력의 전략이 작용하고 있다.
자,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의 고민이 남았다.
아쉽지만 당장 쓸 수 있는 즉효약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다고 머 유신의 가치가 되살아나는 지금의 가공할 상황에서 박정희와의 화해를 모색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따라서 지난 시간에 등장한,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민주당 의원 박정희 생가 방문 따위는 정말 곤란하다. 그게 만약 거대 여당화의 포석이 아니라면 두뇌와 양심이 공히 모자라는 바보짓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정체성을 채워 주면서도 박정희 및 전체주의에의 향수와 분리해 낼 수 있는 새로운 논리와 세계관의 창출이다. 대선 전에 안철수를 만나보고 그가 심중에 둔 것이 그런 뭔가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결국 건너지 않는 지나친 조심스러움 속에서 그가 조만간 뭔가를 끌어 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론을 논하기에 앞서 이런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이, 정치적 도식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지금 이 나라에는 ‘적과의 동침’으로 표현될 수 있는 기묘한 사회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을 넘어 반민주 세력의 주구로 전락하고 있는 국면인데 이건 박정희 시대나 5공 때와도 또 다른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며칠 전 유시민이 장성택과 이석기를 동일시하고 문성근이 민란 운운하는 발언을 한 것은 다소 유감스럽다. 이런 언행은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종북 프레임에 의거한 국민의 의심과 반감을 부채질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쪽 진영의 분노를 우리끼리 재확인하는 것 보다는 아직도 ㅂㄱㄴ를 지지하는 50% + 알파를 설득하는 일이다. 구오산 혈통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게 된 부모 선배들을 저런 말들로 돌아서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은 노태우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 퇴진이 거론되는 엄혹한 시국이다. 허나 시대는 변해 학생운동권은 사라졌고 재야도 소진됐으며 수구 기득권 세력은 치밀하면서도 더욱 뻔뻔해져 있다. 따라서 ㅂㄱㄴ를 지지하는 저 국민 절반의 마음 자체를 서서히 바꾸지 않으면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안녕하십니까 운동(?) 등도 결국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지금 이 나라가 빠져 있는 질곡은 과거의 민주화 투쟁 관점과 방식으로는 해소될 수 없으며, 그걸 알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우리는 저들의 프레임 속에서 계속 끌려다니며 끝없이 패배하게 된다. 그러다 정신 차려 보면 거대 여당 생겨나고, 다시 눈 깜짝 하고 나면 내각제 세상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가면 정말 방법이 없다. 다 같이 이민 가는 거 말고는.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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