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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운 세상은 결코 이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밖의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9년간의 의무교육, 3년의 고등교육, 그리고 4년의 대학교육에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언질조차 주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는 권선징악의 동화책을 읽으며 자라났고 주인공이 비겁한 놈을 물리치는 만화를 보며 커왔습니다. 당연히 그런 세상일 거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쁜 놈은 벌을 받고 비겁한 놈은 뉘우치는 그러한 세상. 그런데, 내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인지. 아님 내 눈이 이상한건지. 이젠 모르겠습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말하라고 배웠는데, 정작 사회에선 부속이 되라 가르칩니다. 너의 신념과 사상, 가치관 따위는 잊고 그저 시스템의 한 부속이 되라 소리칩니다. 스위치에 따라 명령을 수행하는 부속. 저항 없이 수명이 다 할 때 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그런 나사 같은 인간이 되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상아탑에서 자주적으로 정의를 위해 봉사하는 대학생이 되리라 다짐했는데, 그 4년의 결과물은 나사 한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답답합니다. 그러나 답답하다고 말하기엔 상처가 너무 큽니다. 돌아갈 수 없는 어딘가의 흐름에 던져진 기분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눈에 띄지 말고 조용히 살아. 대통령 함부로 욕하지마 잡혀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엄마를 비웃으면서, "요즘 대통령 욕한다고 잡아가? 그런 세상 아니야" 라고 웃었던 제가 민망해질 지경입니다. 학생들에게 안녕을 물었을 뿐인데 정보과 형사들이 그의 안부를 물으러 옵니다. 장난으로 "정원이가 잡아가면 우야지 ㅋㅋㅋ"하던 시절이 까마득합니다. 정말 그럴까봐 무섭습니다. 저는 잘나지도 않고 뛰어난 것도 없는 지방사립대 4학년. 아무 권력도 없는 취업준비생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어떠한 위치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이 저를 부끄럽게 하고, 이 자리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 자리도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 위치와 자격을 가진 사람들마저 그 자리를 내버리고 입을 여는 마당에, 저 같은 사람이 지킬 것이 뭐가 있다고 숨죽이며 두려워하겠습니까. 잃을 것이 없기에 저는 나서야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두렵고 겁이 납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안녕을 물을 때.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할 용기는 있습니다. 아니 있어야 합니다.
나는 끓는 심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 SNS가 기업 채용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까봐 숨죽이는 학생들과, 사회에서 불순분자로 낙인찍힐까봐 겁먹은 어른들과,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칠천 명의 철도 노동자들과,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국회의원에 말에 섬뜩함을 느낀 재외 동포들 사이에서. 우리는 정말 안녕합니까?
나를 위해 싸워준 수많은 사람들을 등지고 무시한 채, 우리는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20대 개새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우린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취업이, 토익이, 인적성과 자격증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고, 벚꽃 아래 통기타를 치마 낭만을 즐기던 7,80년대 대학생의 여유 같은 것은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나설 수 없는 수많은 ‘나’들을 이해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니까요. 그렇지만 ‘안녕하냐’는 물음에 ‘안녕하지 않다’고 말할 작은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네. 저는 공교롭게도 안녕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내 아픔에 사로잡혀 더 큰 상처를 보지 못한 죄가 너무도 큽니다.
거리로 나설 용기도 잃은 채, 끓는 심장과 자유로운 날개를 잃은 우리들은 이제 결코 안녕해서는 안 될 시점을 지나왔습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셈입니다.
제가 용기 낸 이유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말고도, 저의 뉴스피드에 현 시국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공유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 대자보를 처음 시작한 고려대와 연세대와 서울대, 한양대, 부산대, 대구대, 목포대, 등등 수많은 타 대학의 학우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대자보를 읽는 여러분 중에 저와 의견에 동감하는 학우 여러분이 있다면, 저는 이 말만큼은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나와 당신 말고도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과 같이, 엊그제까지 ‘안녕’했던 평범한 대학생들입니다. 그러나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를 시작으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한 다수를 위하여 우리의 안녕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안녕하지 않은 세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미친 세상에서 행복해야합니다.
우리는 이제, 안녕을 포기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미친 세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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